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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28호-핵에너지의 공포와 매혹(유기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2. 3. 21:38

                        핵에너지의 공포와 매혹

                

    2014.8.19       

            
                              

 

 

        현대세계에서 인간은 모두가 핵에너지의 잠재적 영향권 아래 들어가 있지만, 핵에너지에 대한 일반인의 지식은 매우 추상적이다. 심지어 방사능에 피폭될 때에도, 인간은 방사능을 시각이나 후각 등 감각을 통해 파악할 수 없다.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시각화할 수 없고 정체를 알기 힘든 대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종종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1945년 미국 뉴멕시코에서 실시된 원폭실험의 별칭이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트리니티(Trinity)’였다거나, 1974년 인도에서 실시된 핵폭발 실험이 ‘미소 짓는 부처(Smiling Buddha)’로 지칭되었던 것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엄청난 힘(핵에너지)에 대한 인간의 감정적 반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일본에서 가장 “위험한” 원자로가 되어버린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시의 고속증식로를 지칭하는 ‘몬쥬(もんじゅ)`라는 이름도 불교 문수보살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점도 무심히 넘어가기 어렵다.

 

 

        현대 세계에서 ‘핵에너지의 사용’은 인류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로 여겨진다. 핵을 인공적으로 분열시켰을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는 유혹적이지만, 그 부산물인 방사능은 실제적이고 치명적인 피해를 남기기 때문이다. 핵에너지의 사용 방향은 크게 군사 목적과 산업 목적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강력한 핵에너지를 전쟁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후자는 원자력발전소를 세워 핵이 분열할 때 생성되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여론이 강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본의 경우를 잠깐 살펴보자. 인류 최초로 핵에너지의 끔찍한 위력을 경험한 뼈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건 이후 자연스럽게 핵무기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1968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3원칙을 표명하였고, 종교계에서도 핵의 군사적 이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 일본의 종단들은 자국의 핵발전소 등 핵시설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① ‘핵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할뿐더러 에너지 생산을 위해 효율적이라는 논리, ② 핵시설 관계자에 대한 배려, ③ 정교분리의 원칙과 정치적 중립 고수, ④ 지역의 이해관계 고려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핵시설이 위치한 지역의 일부 종교인들이 핵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지만, 그러한 흐름이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는 핵에너지에 대한 시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일본 학계에서 종교계의 움직임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소중한 생명: 3/11 이후 일본에서 불교의 츠나미 구제 및 반핵 활동(This Precious Life: Buddhist Tsunami Relief and Anti-Nuclear Activism in Post 3/11 Japan)』이라는 책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불교계의 대응 및 일본 불교계의 탈핵운동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또한 2013년 1월 9일에는 일본의 국제종교연구소와 종교인피해지역지원연락협의회(宗教者被災地支援連絡協議会)의 공동 개최로 대정대학(大正大学)에서 「3.11 이후 일본사회와 종교의 역할(3.11以後の日本社会と宗教の役割)」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대재난을 통해 다시금 ‘종교의 기능’을 고찰하면서, 종교와 국가/사회와의 바람직한 관계(정교분리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당시 도쿄대 교수이며 일본종교학회 회장이었던 시마조노 스스무(島薗 進)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원전의 안전성 및 방사능 피해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보였을 뿐 아니라 "종교인피해지역지원연락협의회"를 통해 종교들이 서로 연대해서 피해지역의 지원 활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처럼 최근 일본 종교학계에서는 종교학자가 종교계 탈핵운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뿐 아니라 종교계 탈핵운동의 흐름에 직접 뛰어드는 모습도 목격된다.

 

 

       한국 종교계는 어떨까? 1994년 12월에 결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전국반핵운동본부“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되고 핵시설 지역의 종교계를 중심으로 핵의 안전성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종교계 전반에 걸친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핵에너지가 핵심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부터다. 후쿠시마의 재앙을 목격하면서, 국내 4대 종단(개신교, 불교, 원불교, 가톨릭)의 반핵/탈핵지향 종교인들은 제각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각 종단의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하였으며, 특히 78년 설립된 노후 원전인 고리원전1호기의 수명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나아가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그리스도인 연대에서는 대만, 일본, 몽골, 인도, 필리핀 등 동아시아 종교인들의 탈핵 관계망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 종교계에서 극히 일부의 움직임일 뿐이다.

 

 

        시마조노 스스무는 『현대종교와 영성(現代宗教とスピリチュアリティ)』에서 3.11 이후 일본 사회에서 현대 종교는 어디로 가려하는지 물음을 던지면서, 원전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위한 종교계의 노력을 간략히 다룬 바 있다. 나도 묻고 싶다. 3.11을 목격하고 4.16을 경험한 한국사회의 종교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핵에너지의 엄청난 힘에 매혹되어 그 열매를 누리며 사는 삶은 쉽다. 문제는 현재로서는 그 힘을 통제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전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위한 선택은 그만큼의 고단한 변화를 요구한다. 한국사회의 종교는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ntolose@hanmail.net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등이 있고, 논문으로 <생태의례와 감각의 정치>,<인간과 종교,그리고 생태 -더 큰‘이야기’속으로 걸어가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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