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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64호-애도의 방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1. 31. 19:19

애도의 방식


news letter No.764 2023/1/31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살아있는 가족이나 죽은 자 모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는 전쟁이나 불의의 사고 등 불행한 죽음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미안한 마음 등을 전하고 싶고, 죽은 사람이 어떤지 알고자 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망자 역시 이승 삶에 대한 아쉬움이나 한스러움, 가족들에 대한 섭섭함과 미안함, 고마움과 당부 등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아마 어떤 죽음도, 그것이 아무리 밝고 행복한 죽음일지라도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직접적인 대화의 바램을 해소하진 못할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해 행하는 무속의 굿에는 죽은 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며 산 자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있다. 무속에서 이뤄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는 무당의 신내림을 통해서든 또는 대내림 같은 방식을 이용하든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직접적인 대화이다.

     굿에서 죽은 자와 산 자는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소통함으로써 서로 간에 못다 한 말과 회포를 나누며, 얽혔던 감정을 풀고, 죽은 자의 명복(冥福)과 산자의 길복(吉福)을 빌며 화해로운 관계를 갖는다. 이런 과정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두려움・슬픔 ・상실감・죄책감 등을 벗어나서 죽음을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심층심리적인 효과를 지닌다.

    어느 망자나 자신의 죽음을 쉽게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망자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아쉬움과 미련, 안타까운 심정 등 하고 싶은 이야기와 못 다한 이야기를 토로하게 마련이다. 살아있는 가족들 역시 망자의 심정에 공감하며 망자의 죽음을 함께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대화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죽은 자나 살아있는 가족은 모두 망자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의 과정을 통해 죽은 자가 어떠한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가 드러난다. 무속에서 인간의 죽음은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은 동일하지 않다. 성격이 다른 복수의 죽음이 존재할 뿐이다. 죽음은 동일하면서도 다르다. 이러한 죽음의 개별성이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특히 무당을 매개로 한 죽은 자의 자기 이야기는 그것을 통해 죽은 자의 개별적 삶과 존재의 고유한 빛깔과 무게가 표현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산 자든 죽은 자든 자기 이야기,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그것을 통해 자기 삶 나름의 빛깔과 무게 즉 자기 삶의 개별성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무속에서는 죽은 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산자가 거기에 공감하며 소통하는 대화의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의 죽음과 그 죽음이 내포한 그 나름의 특수성과 개별성이 확인되고, 굿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된다. 그리고 이것은 죽은 자의 삶이 가진 개별성과 고유성에 대한 인정, 확인으로 연결된다. 어떤 삶이나 죽음도 그 나름의 무게와 빛깔을 갖고 있다. 무속의 죽음의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직접적인 대회를 통해 망자의 삶과 죽음의 개별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죽은 자 개인의 존재 인정으로 연결된다.

    죽음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무속의 굿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장면이 아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보통의 자리에서 경험하는 일반적 모습이다. 예컨대 상가집에 모인 가족과 친지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삶과 죽음의 개별성을 확인한다.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위패나 영정 역시 죽은 사람 개개인의 존재를 나타내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삶과 죽음의 개별성을 기억하는 것이 죽음을 애도하고 수용하는 일반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형식의 죽음의례에서든 죽은 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확인하는 절차나 상징이 구성 요소의 하나로 자리잡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는 죽은 자를 위한 진정한 애도의 공간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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