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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63호-도교와 불교는 무엇을 논쟁했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1. 24. 17:25

 도교와 불교는 무엇을 논쟁했나?


 news letter No.763 2023/1/24


      




     저명한 중국학자인 앤거스 그레이엄이 쓴 고대중국철학사의 제목은 『도의 논쟁자들(Disputers of the Tao): 중국 고대 철학 논쟁』이었다. 제자백가로 불리는 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 등은 저마다 도(道)를 주장했고, 자신들이 말하는 도야말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올바른 방법(way)이 될 수 있다며 논쟁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도는 중국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크게는 자연의 운행에서부터, 작게는 인간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우주 전체를 각자의 길을 가는 하나의 도(道)의 시스템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도(天道)나 인도(人道), 효도(孝道)나 사도(師道) 같은 개념들은 이러한 중국적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제자백가가 활동했던 춘추전국 시대가 진시황의 통일로 마무리되고, 이어서 400여년 동안 중국을 통치한 한나라가 들어서자, 도에 버금가는 새로운 사상 범주가 등장하게 된다. 교과서에 나오는 “한나라 때에 유교가 국교화되었다”고 할 때의 교(敎)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교는 오늘날 religion의 번역어로서의 ‘종교’와는 다른 범주이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중국 정부에서 인정한 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한나라 초기에 유학자들은 제자백가의 여러 도들(many daos) 중에서 공자가 설파한 도만을 “세상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는 성인의 가르침”으로 인정하였고, 이런 맥락에서 유학을 ‘교’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유도(儒道)는 유교(儒敎)로 승격되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제자백가 시기의 유학, 즉 공자나 맹자 또는 순자가 생각하는 유학도 지금으로 말하면 종교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시의 중국 지식인들은 유학을 ‘유교’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교(敎)가 중국적 사상 형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로 접어들자 중국의 지식인들은 유학을 덕교(德敎)나 명교(名敎) 또는 예교(禮敎) 등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공자가 주창한 덕(德), 명(名), 예(禮)의 철학과 체계야말로 “세상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이라는 범주는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른 범주이다. 가르침[敎] 안에 철학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가 들어있을 수는 있어도, 가르침으로서의 교가 종교나 철학이라는 범주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한나라 때에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천사도(天師道)는 당시만 해도 아직 ‘도교’로 불리지 않았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그것을 ‘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이 볼 때 천사도는 천하 사람들을 모두 구제할 수 있는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신선술[道]의 일종에 불과하였다. 마찬가지로 한나라 때에 중국에 전래된 Buddhism 역시 불도(佛道)로 인식되었지 불교(佛敎)로 인정받지는 못하였다.

           한나라 때에 ‘교’라고 하면 오로지 유교 하나만을 지칭하였다. 그래서 일교(一敎)니 이교(二敎) 또는 삼교(三敎)와 같은 개념은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교가 다원화되지 않았고, 유교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다교 시대가 아닌 일교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중국에 종교가 하나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철학과 종교 중에서, 즉 여러 도들(many daos) 중에서 오직 유도(儒道)만을 중국의 공식적인 지도 이념(guiding discourse)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교(二敎)’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4~5세기부터의 일이다. 동진에서 유송에 이르는 위진남북조 혼란기에 불도나 신선도가 각각 불교와 도교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헌이 『홍명집(弘明集)』 제6권에 수록된 명승소(明僧紹)의 「정이교론(正二敎論)」이다. 5세기 후반에 쓰여진 이 글은 ‘논(論)’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논쟁서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논쟁했을까? 그것은 부제로 달린 “道士有爲「夷夏論」者, 故作此以正之.”라는 말로부터 추측할 수 있듯이, ”불교에 대한 도교의 우위를 주장한 고환(5세기)이 쓴 「이하론(夷夏論)」에 대한 반론이다.

          도사(道士) 고환은 「이하론」에서 “도교와 불교는 ‘교’라는 점에서는 같지만(道則佛也, 佛則道也.), 중국 태생의 도교가 외국 전래의 불교보다 우월하다(優劣之分)”고 하면서, 불교에 대한 도교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불교 측 입장에 있던 명승소가 불교가 결코 도교보다 열등한 교가 아니라고 반박한 글이 「정이교론」이다. 고환의 「이하론」이나 명승소의 「정이교론」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이교(二敎)’이다. 이것은 이 무렵부터 유교에 필적할만한 ‘교’로서의 불교나 도교가 성립했음을 시사한다. 이때부터 중국사상사는 일교(一敎) 시대에 삼교(三敎)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조성환_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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