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재고(再考)
news letter No.859 2024/12/3
지난 11월 30일 한국종교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탈종교 시대의 종교, 그 의미와 역할’로, 이와 직접 관련해서는 ‘탈종교 시대와 한국의 종교’ 제1 분과와 ‘한국 사회와 종교의 공공성’ 제2 분과의 발표가 있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 두 분과가 – 다른 두 개의 분과와 함께 - ‘문화체육관광부 특별 분과’로 소개된 것이다. 물론 문체부 종무실이 본 학술대회를 지원하였다고 하나 보기 드문 경우로, 이는 사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 학술대회의 제1 특별 분과 첫 발표에서 “종교가 오늘 겪고 있는 위기는 종단에서 그치지 않고, 종교학, 정부 조직, 시민단체 등 종교와 관련된 모든 분야로 파급될 것”이고, “이런 급격한 변화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종교계, 학계, 중앙/지방 정부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며,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중앙/지방 정부는 공적 재원을 통해 종교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에, 결국 “종교가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 제고를 달성할 수 있도록 종교계, 정부, 종교학계가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왔기 때문이다(성해영, 한국종교학회 추계 학술대회 전체 자료집, 2024, 32-33). 이는 탈종교 현상이 당사자인 종단의 문제를 넘어 종교학계와 관련 문체부 부서에도 자신들의 존재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일종의 위기 상황으로 읽히면서 이 둘의 연대가 모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학계의 ‘종교의 공공성’ 논의는 사실 코로나19의 확산과 더불어 빠르게 증가하여, 포스트 팬데믹 시기에는 기후 위기 극복 및 생태 담론이나 관련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논의가 확장되면서, 현재 학계의 하나의 지배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학과 신학에서 공공성 논의는 이미 2014년을 기점으로 활발해지는 추세를 보였으며, 여기에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2014년 ‘종교와 공공성’이란 주제로 상반기 학술대회를 주최한 것도 한몫한다. 또한 2014년 한국 신학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용어 중 하나는 ‘공공신학’ - 즉, ‘복음’에 기초하여 교회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신학적 입장 - 으로, 이전에도 기독교와 교회의 공공성은 자주 논의되는 주제였으나, 같은 해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관련 논의를 급증시켜, 교계 지도자들의 관련 발언이 일반 언론 및 대중에게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와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종교 조직이나 공동체가 동시대에 내부적으로 부상한 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자기성찰로부터 출발하였다기보다는, 일차적으로는 외부적으로 예상치 못한 지역적 참사나 전 지구적 재난을 통해 한국 사회가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거치면서 이에 대한 교계/학계의 반응이자 생존 대책을 강구하면서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학계에서 그간 진행된 ‘종교의 공공성’ 논의는 서구의 그것과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학계에서 그간 진행된 종교의 공공성 논의는 일련의 서구 학자들의 이론 – 카사노바(José Casanova)의 종교는 동시대 여전히 공적 종교(public religion)로서 기능한다는 주장, 아렌트(Hannah Arendt)의 사적 영역과 공적/공론 영역 구분과 후자의 재의미화,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공공성 혹은 시민사회에서 종교의 (도덕적) 역할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 등 – 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물론 이글에서는 이들 이론이 현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위상이나 미래를 설명 혹은 예측하는데 과연 긍정적인 통찰력을 제공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진행하지 않는다. 단지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사회와 학계에서 종교의 공공성 담론이 등장하고 확산한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에 주목하는 지식사회학적 분석이 진지하게 시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와 관련하여 규범적 담론이 성행하면서, 누가 공공성의 주체이고, 공공성의 대상은 무엇이며, 무엇/누구를 위한 공공성인가 등의 여러 물음이 불가피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언급할 것은 한국 종교학계의 공공성 담론에서 현 탈종교 사회를 살아가는 개별 종교의 신자들이나 소위 무종교인은 논의에서 배제되고, 대신 종교의 사회참여나 종교기반 시민사회 활동 등을 공공성 실천으로 보아 이를 현 탈종교 흐름에 대한 종교의 적합한 대응 방법이며, 동시에 돌파구로 적극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공공성’ 주제는 적어도 한국 종교학자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연구생태계를 조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개별 종교, 특히 ‘민족종교’를 중심으로 근대 이후 이들 종교가 표방한 사회개혁이나 세계관 그리고 이들이 실행한 사회복지/구호/교육 활동 등을 공공성의 시각에서 재발견 혹은 재평가하는 광범위한 연구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근대문명 수용과정에 나타난 한국종교의 공공성 재구축”(2016~2018)과 “한국종교운동의 시민적 공공성의 세계적 확산”(2020~2022)을 연구주제로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을 연이어 수행하였으며, 결과물로 ‘종교와 공공성’ 총서 5권 - 『근대 한국개벽종교를 공공하다』(2018),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2019),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읽다』(2020), 『근대 한국종교, 세계와 만나다』(2021), 『근현대 한국종교의 생태공공성과 지구학적 해석』(2022) - 이 나온 것이다. 한편 경희대학교 종교시민문화연구소는 “사회진보와 공화적 공존: 개인, 종교, 공동체”(2013~2019)와 “포스트 팬데믹 시대 종교거버넌스 패러다임 연구: 종교생태 담론을 중심으로”(2021~2027)를 연구주제로 각각 한국연구재단의 사회과학연구 지원사업과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후자는 관련 연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요한 연구결과로는 현재까지 출판된 3권의 ‘종교거버넌스’ 총서 – 『종교와 공공성: 감염병과 기후 위기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2022), 『종교생태담론: 인식과 실천』(2023), 『종교거버넌스와 종교영성』(2024) - 를 언급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의 공공성’을 주제로 한 한국 종교학계의 그간의 활발한 연구 활동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부언하고자 하는 것은 학계에는 기존의 공공종교나 종교거버넌스 담론에 대한 분석적이고도 비판적 시각이 놀랍게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우선 필자에게 논리적 모순으로 들리는 것은 관련 담론을 관통하는 비현실적 서사이다. 즉 현 탈종교 상황, 다시 말해 사회영역 전반과 개인의 삶에서 제도종교와 관련 믿음들이 그 영향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는 불가역적인 상황에서 종교가 공적/공공 영역이나 정책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탈종교 상황과 전 지구적 (기후/생태) 위기 상황을 극복/해결하고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종교의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으며 찾아야만 한다는 유토피아적 설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 공공성 담론의 더 큰 문제점은 종교의 공공성이 현실화하면서 흔히 나타나는 부정적 측면 또한 부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종교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한다는 것이다. 정교분리 원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공공 영역이나 공공정책의 결정에서 특정 종교집단의 영향력 행사는 흔히 갈등의 양상으로 표출되어왔다. 최근 하나의 극단적인 예는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올해 10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와 여의도에서 옥외 집회 형태로 ‘동성혼·차별금지법 반대’ 대규모 기도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 연합예배에는 한국교회총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한국 교회 대다수와 120개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였고, 주말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목회자들과 신자들로 주최 측 추산 210만 명(온라인 100만 명 포함)이 집결하였다고 한다. 여의도에서는 광화문 현장이 생중계되었는데, 특정 집회 장소를 제외하고 이 같은 대규모 인원이 모여 연합예배를 드린 건 처음이라고 한다.(「개신교 ‘차별금지법·동성혼 반대’ 대규모 집회」, 『쿠키뉴스』 2024.10.27.)
한편 종교의 공공성을 변호하는 학자들은 한국 종교가 그동안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오면서 개인의 구원이라는 본연의 임무 외에도 공공선을 실현해왔음을 언급하며, 많은 종단/교단이 사회복지/병원/교육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종교법인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교육기관(사학) 등은 대부분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형식을 취하며, 이에 상응하게 운영비와 인건비를 국고로부터 받는다. 더불어 이들 종교(재단)법인의 일차적 목적은 ‘선교/포교’라는 점에서 공공성과는 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종립학교 혹은 종교 사학(私學)의 경우 현재까지도 관할청의 개입을 거부하면서 공공성보다는 사립학교의 특수성과 자주성을 주창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학계의 ‘종교와 공공성’ 논의는 한국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공공성의 뿌리를 추적하거나 탈종교가 가져온 위기의식 속에서 종교의 긍정적 사회참여의 가능성을 탐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그리고 어떤 기득권의 이해관계에서 공공성 담론이 점화되고 확장되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필자를 불편하게 한 것은 종교의 공공성을 마치 종교의 존재 이유인 양 거론하는 작금의 담론으로, 신종교의 존재 이유를 그 사회적 순기능 혹은 유용성에서 찾았던 고전적 신종교 이론과도 묘하게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재난연구와 한국의 종교학: 그 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순례와 ‘다크 투어리즘’의 교차지점에 대해서: 천주교 해미순교성지를 사례로>, <한국의 현 종교지원정책과 문화자본주의>, <한국 불교계의 ‘마음치유’ 사업과 종교영역의 재편성>, <한국 신종교의 조직구조>, 〈현대사회 성물(聖物)의 유통방식에 대하여>,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뉴스 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858호-토테미즘에 관한 단상 (2) | 2024.11.26 |
---|---|
857호-대중(大衆)의 시선으로 보는 수행(修行) (1) | 2024.11.19 |
856호-恨江은 흐른다 (3) | 2024.11.12 |
855호-폭력과 종교 (4) | 2024.11.05 |
854호-종교, 문헌, 목록, 공구서 (1)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