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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테미즘에 관한 단상
news letter No.858 2024/11/26
최근 중국 상대(商代) 토테미즘 설을 검토하는 중에 국내 사정이 궁금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보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동양철학 관련 학회지에 실린 어떤 논문에서 지적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굳이 이 논문의 서지사항을 밝힐 필요는 없을 듯싶고,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윤리나 한국사 교과서에서 한국사상의 연원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거기서 도출된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 글이었다.
흥미롭다고 여긴 대목은 다름이 아니라 이들 교과서를 보면 동양사상의 연원은 유불도 삼교에서 찾고, 서양사상의 연원은 그리스 사상과 헤브라이즘에서 찾으면서도 한국사상의 연원은 단군신화에 근거하여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에서 찾는 관점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해당 논문의 저자가 보기에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은 전 세계 어디서나 나타났던 원시종교인데 유독 한국사상의 연원을 따질 때만 거론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상의 특수성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그 위상을 원시종교의 수준으로 격하한 우를 범한 것이었다.
해당 논문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이 양측, 즉 중고등학교 교과서 집필진과 이를 비판하는 연구자 모두 공통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글의 관심사인 토테미즘에 한정해서 말하면 토테미즘에 관한 고정된 지식에 매몰된 상태에서 각자의 생각을 다듬고 있었다. 원래 종교학사를 보면 토테미즘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 종교기원론의 하나로 등장하였고, 나중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론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토테미즘을 어떤 구체적인 현실에 직접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종교학자라면 처음부터 경계의 태도부터 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유효기간이 만료된 토테미즘 이론이 학계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심지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면서 이렇게 된 배경이 조금 궁금하기도 하였다. 시시각각 변화의 과정을 거쳤던 토테미즘 이론을 그때그때 민감하게 살피지 못한 학자들의 게으름 탓인지 아니면 한국학계에서 종교학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데다가 학문적인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풍토 때문인지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사실 토테미즘에 관하여 우리 학계에서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편견이 깨진 것은 서구에서 진화론이 여전히 위력을 발하고 있었던 20세기 초였다. 그동안 토테미즘은 몇 가지 필수 요소가 모여서 구성된다고 보았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러한 필수 요소로서 족외혼을 하는 집단(씨족)의 존재, 토템을 집단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현상, 토템에 대한 종교적 태도, 토템을 죽이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금기, 해당 집단이 토템에서 탄생했다는 믿음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학계가 지닌 토테미즘에 관한 지식은 이러한 범위 안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요소들이 원래는 토테미즘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에 불과하며, 상호 필연적인 관련성도 없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기존 관점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각 요소의 존재 이유가 토테미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관점이 무너지게 되면서 토테미즘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희박해진 것이다. 이를 받아서 아예 토테미즘을 환상이라고 주장한 학자가 레비스트로스였다. 그에 따르면 ‘신화(myth)’ 개념처럼 토테미즘은 학자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사유 범주이다. 토테미즘은 학자들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지 실재에 대응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에게 토테미즘이 종교와 같은 하나의 제도적 실체로서 인정되는 대신 사유 형식이나 분류 현상의 일종으로서 용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토테미즘은 레비스트로스에 의해서 완전히 해체된 것일까. 요즘 학계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주시하면 역설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토테미즘은 목하 ‘진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애니미즘이 종교기원론이라는 과거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재활용되듯이 토테미즘도 그런 경로를 밟고 있다. 기존 개념을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현상은 과거의 용법과 연속성 및 불연속성을 동시에 감지하는 학적 감수성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토테미즘에 관한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국내에서 토테미즘 연구는 해방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토테미즘은 건국신화로서 단군신화의 가치와 고유성을 부정하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는 이론적 도구이기도 하였다. 최남선은 토테미즘에 근거하여 단군신화가 민족 기원의 단계를 반영한 산물임을 논증할 수 있었다. 해방 후에도 토테미즘은 신석기 시대나 단군신화처럼 기원과 결부되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등장하여 마치 만능 해결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토테미즘 논의에 대한 불만이 앞으로 어떤 변화의 물꼬로 이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서주 금문에 나타난 長壽와 宗法의 관계에 관한 소고〉, 〈상대 갑골 점복의 복조 해석에 관한 소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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