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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권 비법은 인문학 공부에도 적용될까?

 

 

news letter No.906 2025/10/28

 

 

 

 

백학의 춤처럼 우아한 자태,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는 동작, 모남 없는 구름처럼 자연스러운 변화 속에 고요함과 집중...” 태극권(太極拳)을 시작한 지 올해 10년차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부터 부사범이 되어 태극권을 가르치는 날에는 신기하다. ‘내가 운동을 가르친다고?’ 체육은 학창 시절 교련과 더불어 제일 싫어하면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 과목이었다. 100미터 달리기 20, 매달리기 0. 체력장에서 던지기를 할라치면 스스로 던진 공이 정수리를 가격하지 않도록 뒷걸음질 쳤다.

 

책상에 앉아 글을 읽는 직업을 택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버릇은 고착되었다. 돌아다니면 쉽사리 피곤해지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또한 연구 시간을 잃게되니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줄이는 방식으로 생활했다. 쉴 때는 공부했던 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연구와 관련 없는 주제의 미디어 소비를 하고, 국내외 정치에 오지랖을 넓히기도 한다. 이러한 습관은 여전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지만, 10년 전 시작한 태극권은 그사이 믿는 구석이 되었다. 그동안 도관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입문자의 99.98%는 중간에 그만둔다. 중도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고, 나도 가끔 그런 위기를 겪는다.

 

태극권 도장에 가면 스포츠적 성취라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기 힘들다. 수련자들은 중년과 노년의 평범한 체형들이거나 멸치, 배불뚝이 등 요즘의 이상적신체와는 거리가 멀다. 멋진 몸매, 뿌듯하게 흘리는 땀, 체중 감소, 즉각적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가시적 성과를 단기간에 체험하지 않고, 화려한 중국 무술의 기법도 없어보인다. ‘대체 이게 무슨 운동일까?’ 아리송해하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좋은 운동이라고 느껴도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수련 방식이 마음이 들지 않아 나오지 않는다. 몇 달간 아무런 지도를 받지 못하다가 사범이 기분 좋을 때 허리 더 돌려!” 한 문장을 들을 때도 있으니까.

 

내 경우에도 입문 후 처음 몇 년이 고비였다. 일주일에 두 세 번씩 2시간,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을 이 정도 빼는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동작의 별 거 없어 보이는 운동이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될까? 무엇보다도 우연히 찾아 들어간 이 태극권 문파가 제대로 가르침이 전수되는 정통파일까? 이런 의심들에 더하여, 인생에서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바보라는 놀림과 꾸지람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못한다고 핀잔 들으면 욱하고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며 배워야 하지?’ 이 감정의 실체를 생각해 보았다. 머리로는 반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을 추구하지만 배움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방식을 체화했다. 치르는 가격에 합당하게 매끄럽고 친절한 가르침 서비스를 주고 받는데 익숙해졌던 것이다. 물론 무술 세계는 아직 권위주의가 팽배하고, 언젠가 못 버티고 나간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몸쓰기와 거리가 멀고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인간이 몇 년간 의심이 가득한 상태에서 온갖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열심히 도관을 드나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공부처럼 이 운동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오래 지나가는 기분이다. ‘지금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정말 좋다는 확신이 없었으면서도 놓지 못한 데에는 움직임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희미한 느낌, ‘이렇게까지 하면 뭐라도 나오겠지’, ‘공부에 담금질 당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 정도로 포기하랴?’ 같은 고집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어떨 때는 전공 공부를 진작에 이렇게 했더라면...!’ 후회가 되기도, 태극권과 글쓰기가 비슷하게 보일 때도 있고, 거창하게는 인생 원리가 엿보이기도 한다. 태극권 수련 10년차의 열두 가지 핵심과 소회를 공유한다. 독자들도 인문학 공부, 글쓰기, 더 나아가서 인생과 맞닿은 지점을 발견할지 궁금하다.

 

 

1. 태극권을 시작하며 가장 기본은 심신방송(心身放鬆)’이다. 온 몸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 느슨히 한다. 힘이 들어가면 어떠한 동작도 태극권이 아니다. 느긋하게 힘을 빼지만 동시에 요결에 맞는 정확한 동작을 구현한다.

 

2. 정확한 동작을 하려고 수련 초기에는 사범을 흉내낸다. 처음에는 어느 부분을 따라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무작정 하다가 점차 그 을 알게 된다. 순서를 익히고, 동작에 정확성을 가하다가 나중에는 전체 투로에 수련자 고유의 느낌과 동작의 정취가 묻어난다.

 

3. 태극권 동작은 하는 사람의 성격과 닮아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무게 중심이 단단하게 아래로 뿌리내리고 있는 수련자들은 평소의 성격이 그런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외적으로 노력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무술 연마 후 15년 정도 지나면 기술보다 마음가짐이 고수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태극권 고수와 인품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경우를 보아왔다. 오랜 수련자들에게는 참을성과 자기절제가 있지만, 이 또한 타인과 세상에 대한 도덕성과는 다르다.

 

4. 그럼 고수들은 어떻게 하나? 원리를 알고 정확한 동작을 하면서도 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동작을 연결시킨다. 그런 편안한 동작을 완성하기까지 수십만 번의 반복이 있음을 아는 후배들은 간단한 투로라도 존경심을 가지고 본다. 같은 권가를 연습한 경험자들에게는 설렁설렁해 보이는 동작에 얼마나 오랜 기간의 무공이 쌓여 있는지 간파하는 안목이 생긴다. 수련자가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했을 때만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안목과 실제 무술을 잘하는 것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안목은 태극권과 관련된 시간과 비례하고, 무공은 실제 수련력과 동행한다.

 

5. 부드러움 가운데도 세밀하고 날이 서 있게 한다. 몇 년 만에 만난 사범이 얼마 전 내 투로를 보면서 혼냈다. “왜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냐?” 딴에 동작들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한다고 몇 년간 수련했는데, 그 결과 세부 동작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게 된 난감한 상황. 마찬가지로, 한 동작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부분을 대비하며 얼버무려도 문제다. 이 동작을 하며 그다음 준비를 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태극권 동작은 대나무 마디 같아야 한다는 옛 책의 구절이 그 뜻이었던가? 1초간의 짧은 동작이라도 제대로 끝맺은 후 그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태극권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두루뭉술하게 보이지만, 유연함 속에서도 맺고 끊음, 허와 실이 분명하다.

 

6. 한번 태극권 하는 투가 생긴 후에 바꾸기 쉽지 않다. 20년 정도 수련의 연차가 쌓이면 자연히 도관의 선배가 되어 사범이나 주위 사람들이 잘못된 점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래서 오래 도관을 다니는 수련자들이 부정확한 방식으로 고착된 경우가 입문자보다 더 지도하기 어렵다. 자유 스타일로 마음대로 한 습관이 오래 굳혀진 사람이 가장 고치기 힘들다. 오랫동안 그러한 방식으로 해 왔기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도 연차가 높기에 교정해 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키지 않더라도 가끔 사람들 앞에서 시연하고 동작 교정을 받아야 한다.

 

7. 수련 입문자가 수십 년 배운 사람들보다 가끔 더 태극권을 잘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간혹 있다. 어떤 날 정성스럽게 동작을 구현할 때면 미숙해도 태극권의 진가가 느껴진다. ‘마음을 움직임에 어떻게 담아내는가?’에서 감동이 온다. 정성스럽게 하면 다른 사람도 그 진정성을 느끼고 잘했다고 엄지 척을 해준다. 그러나 간혹 너무 잘하려고 신경 쓰면 동작에 힘이 들어가면서 망친다. 오늘 수련이 안될 때는 내일의 나를 믿고서 미진하더라도 접는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잘하게 될 테니까.

 

8. 아플 때 하면 더 효과가 있다. 평소와 달리 기력이 없는 걸 느끼고, 불편한 부분을 세밀하게 알게 된다.

 

9. 태극권에는 크게 진가, 양가, 오가, 무가, 손가의 오대 문파가 있다. 다양한 분파 사람들은 서로 존중하는 것처럼 얘기할 때도 있지만 자신들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양가 위주의 도관에 있다가 진가 계열로 바꾸면 도루묵이다. 이쪽에서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요결이 다른 문파에서는 쉽게 깨진다.

 

10. 불필요한 동작은 과감히 뺀다. 화려하고 기교가 있는 동작은 대련에서 방해가 된다. 그러나 오른팔을 위로 올려 검을 빼 들었으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들어지게 하늘로 뻗어 올린다.

 

11. 애써서 마음으로 기()를 돌리려고 하면 병이 든다. 정신으로 나를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대련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이기려고 어깨를 밀치지 않으며 오히려 내가 밀쳐지며 지는 법을 먼저 배운다. 승리는 간절하게 원한다고 주어지지 않고,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계획한 동작으로 이겼다고 좋아할 때 오히려 대련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게 된다. 밀치고 내팽겨지는 과정에서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12. 마지막으로 태극권의 비결이다. 왕가위 영화 일대종사(2013)’의 명장면은 눈 오는 날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궁이(장쯔이)와 마삼(장첸)의 대결이다. 생명을 담보한 싸움에서 궁이는 한 가지만 물어본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알려준 비결은 무엇이더냐?” 마삼은 피를 토해가며 말한다. “‘뒤돌아보라...”. 목숨까지 걸면서 알고 싶어하는 그것이 무술의 비법이다. 그런데 이제 공짜로 10년 태극권 수련의 비결을 알려주려고 한다.

 

 

꾸준하게 하라!’

 

내공(內功)’은 꾸준함의 다른 이름이다. 전해 내려오는 태극권 수련의 3대 조건은 전수득법(傳受得法), 천자과인(天資過人), 지구유항(持久有恒). ,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법, 타고난 자질, 그리고 꾸준히 계속함이다. 그 중에서 세 번째가 모든 것을 이긴다고 하였다. 체육에 자질이 없는 사람이 끈질기게 한 결과 부사범이 된 에피소드가 그 증거 아닐까? 태극권 요결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허리가 모든 움직임을 주재한다는 원리도 신체를 사용하는 방법론에 불과할 뿐 비법은 아니다. 비법은 평범하면서도 가장 어렵다. 단기간 이루어지지 않고 유유자적 인생을 건다. 일상의 시간이 쌓이면 인생 아닌가. 좋은 태극권은 요결에 맞는 동작을 하며, 물이 흐르듯이 이어지고, 생동감이 있으면서도, 같은 속도로 천천히 나간다. 우리의 공부가 이 비법을 적용하여 멋진 태극권 투로처럼 단단하게 표현될 날이 올까?

 

 

 

 

최정화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종교학 이론과 역사를 공부했다. 현재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종교, 재개발지역 점집을 연구 중이다. 올해 논문으로 미얀마 이주민들의 삶 속 불교문화, 노동과 민주화 운동. 부평 미얀마 사원 현장 연구(종교문화비평48, 202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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