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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907호-『사탄탱고』를 읽고

한종연KIRC 2025. 11. 4. 17:26

사탄탱고를 읽고

헝가리의 두 번째 노벨문학상 작가 크로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의 대표작

 

 

 

 

news letter No.907 2025/11/04

 

 

2025109일 스웨덴 한림원은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헝가리의 소설가 크로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를 선정했다. 크로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필자가 헝가리에서 공부하던 1992년에도 이미 꽤 알려진 작가였다. 그의 첫 데뷔작품이자 노벨상 수상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탄탱고는 그가 31세가 되던 1985년에 쓰여 졌으니, 그의 천재성은 이미 그때부터 발하기 시작했나 보다.

 

노벨상 발표가 나던 그날 바로 『사탄탱고를 주문했으나, 일주일이 지나서야 책을 손에 쥘수 있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필자가 특별히 노벨상 작품이라고 해서 더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급히 책을 주문하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한 이유는 평소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2002년 헝가리에 첫 번째 노벨상을 안겨준 작가인 케르테스 임레의 대표작 『운명과 비교해 보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다. 케르테스 임레의 소설 『운명은 유대인인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아우슈비츠의 일상을 너무나 평범하고 서정적으로 묘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어느 문학 비평가가 아우슈비츠 같은 곳에서도 인간의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그래서 인간의 삶의 보편성을 보여줬다는 그럴듯한 평을 할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유학 시절 생계 수단을 위한 아르바이트로 관광 가이드를 했던 덕분에 아우슈비츠를 적어도 열 번은 가보았던 필자에게는 아무리 좋게 봐 주려해도 아우슈비츠가 보통평범한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헝가리 평단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있었다. 헝가리 비평가들은 케르테스 임레가 아우슈비츠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식을 덜어내는데 일조하였고, 이에 대한 보상쯤으로 독일작가협회가 그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였다고 적절하게 심술궂은 소리를 했던 것이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벨상은 문학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비판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이런 삐딱함에서 크로스너호크커이 라슬로가 헝가리인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상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를 주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노벨상 위원회가 어떤 정치적 고려를 하면서 수상자를 결정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면서.

 

다행스럽게도 『사탄탱고는 아우슈비츠가 아니라 헝가리의 소도시 쥴러(Gyula)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헝가리 지명을 하나하나 구글 어스 지도로 찾아보며 확인한 결과 소설가가 이 소설을 어떠한 의도로 쓰게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쥴러는 헝가리 동남부 얼푈드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소설에 나오는 지명인 너지로만바로시, 포시텔레키 거리 등은 현재 쥴러의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 중반의 어느 날 이 도시를 방문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단숨에 이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움직였던 동선들, 즉 마을 사람들을 인솔하여 지나갔던 거리들과 상징화 장소들(무너진 성, 폐허가 된 저택)을 떠올리며, 이 소설이 1980년대의 암울하고 패배적이며, 희망이 없어 보이는 분위기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중반은 1989년 헝가리가 사회주의로부터 시장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이루어 내고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줄러 같은 소도시는 사회주의 시절의 폐허 같은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탄탱고를 읽으며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던 사회주의 시절 협동농장의 생경하고 스산했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특히 국경도시의 스산함과 그에 걸맞은 몰골의 사람들을 만났던 그 장면이..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훌륭하다!

 

크로스너이호르커이 라슬로는 이 쥴러라는 소도시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다.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처의 대도시인 세게드 대학에 진학하였고, 1976년 부다페스트로 옮겨 부다페스트대학(ELTE)에서 1983년까지 법학과 문학을 공부하였다. 아직 헝가리가 사회주의 시기였던 시절에 문학 수업을 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그의 대표작인 『사탄탱고1985년에 상재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에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는 평단의 평가는 일견 타당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특히 쥴러라는 지역이 갖는 특성 루마니아와의 국경도시로서 헝가리의 비극적인 역사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때문에 산만하고 정돈되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는 약간 뜬금없기는 하지만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명제와 묘하게 어우러져, 헝가리의 체제 전환을 합리화 해주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이런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인간의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기대감들, 특히 패배와 절망, 실망이라는 인류 보편의 우울한 감정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절대자가 나타나길 바라는 그 기대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인생사가 그렇듯이 마을 사람들이 원하던 결과와는 정반대로, 그 절대자마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블랙코메디와 같은 수사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와 불멸성이 노벨상에 적합하다는 찬탄을 자아내게 했다.

 

작품의 주인공 절대자 이리미아시는 우리가 아는 종교의 절대 신일수도 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서기장, 그 반대 선상에 있는 나라들의 지도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이 특히 도탄에 빠진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도덕적 정의감과 우월감을 내세워 우리 앞에서 외치는 정치가들의 모습과 이리미아시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들 지도자가 사기꾼, 밀고자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거짓 선지자가 구세주를 참칭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종교적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읽은 헝가리의 두 번째 노벨상 작품은 첫 번째 수상 작가의 대표작인 『운명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헝가리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감히 내린다. 헝가리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도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번 겨울 헝가리에 머물게 되면 짬을 내어 다시 줄러를 방문하여 소설 속에 나오는 장소들을 찾아가 보아야겠다. 그 시절의 스산함과 생경함을 다시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어렵사리 구한 헝가리어 원본으로 소설을 읽어보니,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중역한 판본이 훨씬 부드럽게 잘 읽힌다는 인상을 받았다. 헝가리어로 쓰여진 원작은 독일어 중역본 보다 공격적이고, 헝가리적인 향기가 물씬 나는 강렬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만약 나에게 이 소설의 번역(헝가리어-한국어) 의뢰가 들어온다면 거절할 것이다. 중역도 너무나 훌륭하여 그만큼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김지영_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논문으로 〈미국과 영국의 트란실바니아 문제 해결 방안: 1941-1947〉, 〈헝가리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기억 논쟁〉, 〈헝가리 백과사전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서술: 1833-1930〉등이 있고, 저서로 《메타모포시스의 현장: 종교, 전력망, 헝가리》(공저), 《헝가리 현대사의 변곡점들: 역사의 메타모포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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