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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시대에 종교의 자리를 묻기
news letter No.909 2025/11/18

이번 호 특집은 ‘이주의 안과 밖: 종교를 가로지르다’라는 주제를 다룬다. 여기에는 지난 5월에 이 주제로 열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5년 상반기 심포지엄 일부 성과를 담았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는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두드러진 측면 중 하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역, 노동, 학업, 전쟁, 빈곤, 기후위기, 결혼 등의 다양한 이유로 국경을 넘는 이주 현상이 세계적 차원에서 펼쳐지며 글로벌 이주 시대가 열렸다. 한국 사회 역시 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국제적 위상이 더욱 높아진 덕에 이주 외국인이 급증하며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여기서 종교는 이주민들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들의 정체성 형성과 역할 구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또 반대로 이주민들의 존재와 실천이 종교를 재구성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번 특집에는 이주와 종교의 이런 상관관계를 탐구한 세 편의 논문이 실렸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수행성과 종교공동체의 역동적 변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중심으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의 일본인 결혼이주 여성들에 관해 젠더 수행성 개념을 적용해 이들이 종교적, 젠더적, 민족적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한국 가정연합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가정연합에서 합동축복결혼식을 통한 국제결혼은 단지 개인 간의 결합이 아니라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가족’이라는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며, 특히 한일 국제결혼은 한일 간의 역사적 화해를 실천하는 초국가적 종교운동 성격을 지닌다. 여기서 일본인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인 가족의 아내이자 며느리라는 수동적 역할 그리고 선교사로서 한국인 가족을 신앙으로 이끄는 능동적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특히, 이들은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 가정연합의 조직과 문화를 변화시킴으로써 통일교의 본산인 한국에 대한 ‘역선교’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한일 국제결혼 가정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종교적 경계를 넘어서는 혼종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가정연합의 종교적 이상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편협한 자민족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진정한 초국가적 종교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얀마 이주민들의 삶 속 불교문화, 노동과 민주화 운동: 부평 미얀마 사원현장 연구〉는 인천 부평의 미얀마 공동체와 불교사원에 관한 현장 연구를 통해 미얀마 공동체에서 사원이 차지하는 위상과 수행하는 역할을 분석한다. 저자는 미얀마 노동자, 승려, 난민과의 면담을 통해 그들의 개인사에 드러난 이주와 불교의 관계를 포착한다. 또한, 사원에서의 참여관찰을 통해 신도-승려-사원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는 부평 미얀마 공동체에게 사원은 단지 종교적 공간을 넘어 주거, 교육, 상담, 친목의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적 생활 공간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밝혀낸다. 또, 저자는 미얀마의 여러 소수민족이 저마다 독립적인 사원을 운영함으로써 이 사원들이 민족적 정체성 유지와 문화 재현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혀낸다. 나아가 저자는 부평 미얀마 공동체에서 불교사원이 정신적 안정과 노동 재생산을 돕는 동시에, 실직하거나 휴직 중인 노동자들을 수용하는 사회안전망 역할도 수행한다는 점을 밝혀낸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저자는 이주민 공동체에서 종교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생생한 민족지 사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재일코리안의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4·3 의례〉는 제주도에서 공식 4·3 추모 행사가 생기기 한 해 전인 1988년 도쿄에서 제주도 출신 재일한국인들이 시작한 4·3 추모 행사의 맥락과 의의를 분석한다. 이 추모 행사는 4·3을 직접 겪거나 전해 듣지 않은 재일한국인들이 소설과 역사서를 통해 이 사건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후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위령 의례가 침묵 속에 갇혀 있던 기억을 가시화하고 재구성하는 매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이 추모 행사는 한국과 일본, 남한과 북한 사이에 걸친 재일한국인의 복합적이고 모호한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결부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저자는 이 추모 행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추모 행사가 어떻게 역사적 폭력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연대하는 죽음사회성을 매개하는 정치적 실천의 장으로 기능하는지를 밝힌다.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또 하나의 특집을 마련했다. 한해 반 전에 타계한 황선명(1941~2024) 선생의 종교학 세계를 조망하는 특집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신종교학회와 함께 황선명을 기리는 책을 준비 중인데, 이 책은 그의 학문 저작과 문학 작품을 분석한 후학들의 논문, 주제별로 엄선한 그의 논문과 수필, 그리고 후학들의 회고록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번 특집에는 이 중에서 황선명의 학문 저작들을 분석한 세 편의 논문을 실었다.
〈황선명과 조선시대 종교사회사〉는 황선명의 《조선조 종교사회사 연구》(1985)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황선명이 종교현상을 정치, 경제, 사회구조와 결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했다고 진단한다. 그가 종교사를 교리사나 교단사가 아닌 ‘종교사회사’로 접근하여 사회구조와 종교의 상호작용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유교 국가의례를 공민의례로 재해석하고, 불교, 도교, 무속의 상호 관계를 경합과 흡수 과정으로 파악하며, 천주교 수용 동기를 정감록 등의 민간 신앙과 연관된 종말론적 희망과 비밀결사적 연대에서 찾고, 동학을 단순 농민봉기가 아닌 독자적 종교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황선명이 나름의 ‘종교사회사’를 모색한 시도들이다. 저자는 황선명이 종교를 일면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 복잡성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 것이 종교를 “인간 실존의 장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원망(願望)”으로 보는 종교관 덕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황선명의 종교사회사가 지닌 한계들, 그리고 그가 시작은 했으나 더 발전시키지 못한 종교사회사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과제들을 제시한다.
〈황선명의 민중종교사 연구〉는 황선명의 《민중종교운동사》(1980)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국내 최초의 체계적인 민중종교사 연구서이다. 황선명은 민중이 ‘종교적 행위 주체’이자 동시에 ‘역사사회적 변혁 주체’라는 복합성을 지닌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민중종교의 추동력은 이상 세계에 대한 갈망에서 나오며, 이는 현실 사회구조를 해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또한, 민중종교는 광조적(狂躁的) 성격을 띠며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주도된다. 저자는 황선명이 동학을 이러한 민중종교의 두드러진 예로 보고, 동학이 어떻게 변혁운동에서 교단종교로 변해 갔는지 추적한 작업을 복기한다. 이를통해 저자는 황선명이 정치사회사로서 종교사 서술을 추구하고, 사회 변동과 종교의 역할을 연관 지으려 했다고 평가한다. 저자에 따르면, 황선명의 민중종교사 연구는 단면적인 민중 개념, 자료 해석의 한계, 인접 학문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의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저자는 황선명의 민중종교사 연구가 한국 종교사 서술에 총체적 접근을 제시한 선구적 작업이며, 민중 개념 재정립, 미시사와 문화사 방법론 도입, 비교종교학적 확대를 통해 계승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개진한다.
〈황선명 종교학의 지형과 ‘종교학개론’의 지점〉은 황선명의 《종교학개론》(1982)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 책의 위상과 의의를 황선명의 학문적 노정 전체 맥락 안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황선명의 방대한 종교학 작업을 유형화하고 분류하여 그의 종교학이 ‘종교학 이론에서 한국종교사회사를 거쳐 신종교 연구로’ 전개되었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저자는 민중종교, 민족종교, 종교사회사에 천착한 황선명의 종교학에서 《종교학개론》은 그 기점이자 토대의 위상을 지닌다고 평가한다. 저자에 따르면, 황선명은 이 책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종교학 이론과 방법을 정립하고, 종교현상학, 종교사학, 종교인류학, 종교사회학, 종교심리학 등의 분과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이를 위해 황선명은 학제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국 종교학이 한국 문화사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고려해 그 독자적 학문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황선명의 《종교학개론》이 장병길의 《종교학개론》(1975)과 정진흥의 《종교학서설》(1982)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으며, 이 두 책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위상을 지닌다고 평가한다.
일반 연구논문으로는 두 편이 실렸다. 〈하늘부모님성회 독생녀 신학의 여성 해방론 연구〉는 문선명 사후 통일교에서 진행 중인 변화의 중요한 한 측면을 탐구한다. 바로 문선명 계승 분파 중 배우자 한학자 총재를 주축으로 한 ‘하늘부모님성회(이하 ’성회‘)’에 관한 탐구다. 저자는 성회의 기초가 된 ‘독생녀 신학’의 등장 배경, 핵심 내용, 주요 논란을 정리한 뒤, 이 독특한 신학이 지닌 여성해방론적 의의와 한계를 분석한다. 한학자는 2013년 기원절을 선포하여, 천일국시대의 개시를 선언하고,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으로 부르도록 바꾸었다. 독생녀 신학은 한학자가 자신을 ‘하늘부모님의 유일한 직계 딸(독생녀)’로 선언한데 따라 등장한 신학 체계다. 이 신학은 기존 통일교의 가부장성을 비판하고 여성적 가치와 참어머니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이 신학은 문선명의 ‘말씀’을 재해석하고 페미니즘 이론과 기독교 여성신학을 참조해 여성해방 담론을 전개한다. 물론, 성회와 대립 중인 반대 분파에서는 독생녀 신학이 통일교의 정체성을 왜곡하며 서구 페미니즘에 오염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회에서 페미니즘의 영향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평가한다. 독생녀 신학은 한학자 개인의 위상만 재정립했을 뿐 그 고정된 혈통주의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으로 나아가기 힘든 근원적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신사참배문제와 기억의 정치: 재건교회와 독노회를 중심으로〉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새로움은 저자가 일제강점기 당시의 신사참배가 아니라 신사참배가 해방 이후 개신교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는 데 있다. 저자는 해방 이후 한국 개신교 내에서 신사참배 문제를 계기로 등장한 두 소수 교단, 재건교회와 독노회를 비교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두 교단은 모두 신사참배 거부를 핵심 정체성으로 삼았지만, 기성 교회와의 관계 설정과 과거 청산 방식에서 차이를 지녔다. 재건교회는 기성 교회와의 철저한 단절을 주장하며, 신사참배뿐 아니라 황궁요배와 국기배례 등 일제의 황민화 정책 전반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거부했다. 반면, 독노회는 기성 교회 내부의 혁신과 복구를 통한 정화를 추구했으며, 신사참배 이외의 다른 의례는 상황에따라 변용하여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두 교단은 이 밖에도 신사참배가 민족운동인지 종교운동인지 하는 견해, 대표적으로 꼽는 신사참배 저항 인물(최덕지 대 주기철) 등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저자는 두 교단이 ‘기억의 정치’를 통해 신사참배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교단 정체성의 중심에 놓았다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두 교단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교회를 향해 반성을 촉구함으로써 신사참배 문제가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니게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호의 논문 외 부문에는 한 편의 주제서평이 실렸다. 〈물질주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중국 민간종교 연구〉는 대만의 인류학자 린웨이핑(林瑋嬪)의 저서 Materializing Magic Power: Chinese Popular Religion in Villages and Cities(2015)를 분석 소개한다. 이 책은 장기적이고 방대한 현지 조사를 토대로 대만 민간종교에서 영적인 힘이 신상과 영매를 통해 어떻게 물질적으로 구현되는지를 분석한다. 의인화와 지역화, 농촌과 도시 등이 이 책이 파고드는 세부 주제들이다. 서평 저자는 이 책이 물질종교라는 최근 학계 동향을 따르면서도 사물에 집중하는 기존 연구들과 달리 인간(영매)을 물질종교 연구에 통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편, 서평 저자는 이 책이 그 민족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종교문화에 대해서는 분석이 조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서평 저자의 도움 덕에 낯선 나라의 낯선 인류학 성과를 접하고, 오늘날 가장 활발한 연구 경향 중 하나인 경향인 물질종교 연구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호는 특집이 두 건이라 책의 분량이 넘칠까 염려되어 종교문화기행과 설림은 마련하지 않았다. 종교답사분과가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기에, 앞으로 유익한 답사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기를 기대해본다. 꼭 답사 활동이 아니더라도 종교학도라면 어디를 가든 종교적인 무엇인가를 챙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터, 많은 이들의 흥미로운 종교문화 마실 이야기를 엿듣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설림은 편집진의 기획력이 절실한 부문인데, 편집위 책임을 맡은 지난 두 해 동안 늘 기획력 부족을 절감했다. 연구소 뉴스레터 ‘종교문화읽기’에 다 담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 컴퓨터 하드 어딘가 잊힌 폴더 안에 잠들어 있는 미완의 연구 노트, 종교문화를 넘고 연구행위를 넘어 이모저모 끄적인 단상, 그 많은 소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윤성_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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