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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행위성을 넘어 종교적 감각으로
news letter No.911 2025/12/2
지난 11월 15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이화여대 미술사학과와 공동으로 ‘근대문물의 수용과 종교문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각 발표는 근대적 물질의 사료를 바탕으로 소거된 물질사의 빈틈을 메우는 풍부한 서사들이 펼쳐졌다. 이 심포지엄을 특히 인상 깊게 만든 것은 물질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물질의 행위성에 대한 반론과 물질종교가 ‘수사적 장난’이라는 비판은 심포지엄 전체의 문제의식을 흔드는 핵심적인 문제 제기였다. 이에 대해 두 번째 발표 「중국으로 주문된 성상: 상해 토산만 공예품의 유입과 성상화」(남소라)에 대해 논평을 한 최화선 선생은 논평문과 개인 SNS에서의 긴 포스팅을 통해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최화선 선생의 두 글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글들을 계기로 나는 물질의 행위성과 물질을 통해 형성되는 종교적 감각을 다시 사유할 필요를 느꼈다. 이 글은 그 사유의 한 파편이다.

사물이 대상에서 비켜서는 순간은 원래 의도되었던 기능성이 퇴색될 때이다. 더러워져 뿌옇게 변한 창문을 바라볼 때, 투명한 매개로서 ‘저기’를 보여주는 object로서의 기능이 사라지면 유리창은 낯설고 이질적인 ‘저것’, 곧 thing으로 돌출한다. 이때 인간은 창을 '통해'(through) 세계를 보던 관성을 멈추고, 처음으로 ‘그것’(thing) 자체를 직면하게 된다. 사물성(thingness)이란 바로 object가 낯선 기이함의 감각으로 다가올 때 포착된다.
사물은 인간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늘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었다. 다만 object의 기능적 투명성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관성적으로 지나쳐 왔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물성은 친숙한 대상이 기이하게 변형되어 나타나는 ‘낯섦’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이 낯섦은 단순한 인식론적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적 위치를 재발견하고, 가까이 놓인 대상의 위치성을 새롭게 사유할 때 나타나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그래서 사물성(혹은 물질성)의 시각은 존재론적 성찰의 산물이며, 인간과 사물 사이의 관계적 배치를 다시 사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물질의 행위성은 인간처럼 행위하거나 반응하는 패러디가 아니다. 근대적 물활론처럼 물질을 인간화하는 방식은 물질 행위성에 대한 깊은 오해이다. 물질은 자체의 행위성을 갖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행위성과는 다른 차원의 작동 방식이다. 길가에 놓인 돌조차 끊임없는 운동성 속에서 그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돌은 중력의 압력 속에서 진동하고, 바람과 햇빛의 강도에 저항하며 풍화된다. 기류 속에서 미세하게 흩날리는 먼지와 함께 돌은 지금도 쉬지 않고 변화의 미세한 순간들을 발산한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은 이러한 물질의 지속적 행위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장면의 미세한 프레임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정지된 프레임을 연속시켰을 때에야 비로소 처음 장면과 최종 장면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인간의 감각 범위는, 물질이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변화의 운동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물질은 인간 감각의 범위를 벗어난 기이한 변동이며, 끊임없이 발생하는 미세한 ‘소음’이다.
그러나 물질의 행위성이 인간에게 감각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물질이 우연히 근접 배치될 때 발생하는 사건이다. 누군가 길가에 돌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돌은 그 존재의 강도를 인간에게 감각하게 만든다. 그 감각은 통증이나 불편함, 때로는 분노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돌을 다시 걷어차는 행위로 표출되거나,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돌을 옮겨두는 배려로 이어진다. 이는 돌과 인간이 특정한 배치 속에서 생성한 사건이며, 물질적 행위성이 인간의 감각 반응을 통해 새로운 인간 행위로 전환된 것이다. 물질과 신체의 우발적 접속이 인간의 감각을 바꾸는 방식은 종교적 경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질의 작동은 종교적 경험 속에서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물질에 대한 감각적 반응이 종교적 신앙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나 섭몽고메리(Jenna Supp-Montgomerie)는 「정동과 종교학」(Affect and the Study of Religion)의 첫머리에서 미국 감리교 부흥사 피터 카트라이트(Peter Cartwright)의 자서전에 기록된 1800~1801년 켄터키 캐인 리지(Cane Ridge) 야영 집회(camp meeting)를 주목한다. 섭몽고메리는 수일 동안 이어진 집회에서 사람들이 ‘자비’를 구하며 흘린 눈물과 절규, 그리고 수백 명이 신의 권능 앞에서 엎드려 쓰러지는 집단적 신체 반응을 강조한다. 그녀는 이 감정적 에너지의 충만함이 미국 제2차 대각성운동의 기원이 되었으며, 교파 분열과 새로운 개신교 교단의 탄생을 촉발한 동력이라고 평가한다.
섭몽고메리의 평가는 물질적 조건에 대한 감각적 반응이 어떻게 새로운 종교적 형식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당시 캐인 리지라는 공간의 물질적 조건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캐인 리지는 정착이 막 시작되던 미개척지였으며, 여러 면에서 ‘부재의 공간’이었다. 정비되지 않은 숲과 울퉁불퉁한 길, 부족한 사회적 인프라는 집회 참가자들의 신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감정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여기에 야생적인 숲의 음향, 차가운 밤 공기, 거친 흙의 감촉 등 자연적 요소는 참여자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자극했다. 밤낮없이 이어진 설교와 예배는 이러한 신체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며,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결핍과 부재를 ‘자비’라는 감정으로 공명하게 만들었다. 신체와 신체가 서로 접속하며 만들어낸 감정의 파동은 집단적 에너지로 응집되었고, 이는 기존의 교리 중심·이성 중심의 신앙을 넘어 감정과 체험, 회심을 중심으로 한 New Light movement 라는 새로운 종교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사례는 종교적 감각이 특정한 물질적 환경의 구성과 신체적 배치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종교적 감각은 교리나 신념에서 비롯된 사유 이전에, 물질과 신체가 서로를 횡단하며 만들어내는 파열과 진동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참고 문헌⟩
- Bill Brown, “Thing Theory”, Critical Inquiry 28:1, 2001.
- Jenna Supp-Montgomerie, “Affect and the Study of Religion”, Religion Compass 9:10, 2015.
- Peter Cartwright, Autobiography of Peter Cartwright: with an introduction, bibliography, and index, New York, N. Y.: Abingdon Press, 1956.
도태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근대적 문자성과 개신교 담론의 형성>, <근대 소리 매체(라디오, 유성기)가 생산한 종교적 풍경>, <물질종교, 신유물론으로 접근하기>, <정동경제를 통한 불교 ‘뉴진스님’ 현상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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