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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 성모와 토착 영성의 재해석: Celidwen‘Kin’ 개념과 니칸 모포와의 접점에서

 

 
 

                                                                                                                                                                             news letter No.912 2025/12/9 

 

 

2025년 11월 22일 미국종교학회(Academy of American Religion)에서 열린 “Author Meets Critics: Flourishing Kin” 세션은 강렬한 순간을 남겼다. 발표가 끝나는 즉시 청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종교학회는 대체로 냉철한 분석과 비판적 토론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지만, 이 시간 동안에는 학문적 담론이 공동체적·영적 공명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공개적으로 목격되었다. 이 감정의 진동을 일으킨 중심에는 토착 여성·토착학 연구자이자 관상(Contemplative Studies) 연구자인 Yuria Celidwen이 있었다. 그녀는 저서 <Flourishing Kin>을 바탕으로 기존 서구 관상 전통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Celidwen의 비판은 명확했다. 서구의 관상 실천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내 영혼의 구원’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영적 자기애’(spiritual narcissism)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공동체·대지·타자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영성의 사회적·생태적 함의를 축소시킨다. 이에 비해 그녀가 제시하는 토착적 관상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땅–공동체–조상–비인간 존재”로 구성된 관계망 전체를 자각하고 돌보는 실천이다. 토착 관상에는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추상적 통합이 아니라, “관계의 끈적거림”(stickiness), 즉 실제로 얽혀 있는 관계적·윤리적 책임성에 응답하는 자세가 중심에 자리한다. 이러한 접근은 서구 전통과 토착적 실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어려운 작업이며, 그렇기에 많은 동료 연구자들이 Celidwen을 ‘전사(warrior)’로 묘사한다.

세션 말미에 형성된 눈물과 연대의 분위기는 토착 영성이 단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학문·종교·생태적 사유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혀주는 개념적·정서적 자원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Celidwen의 관점이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해석에 어떤 조명을 던지는지, 특히 토착 여신 톤안친(Tonantzin)과의 접점, 나우아틀어 텍스트 ‘니칸 모포와’(Nican Mopohua)에서 드러나는 원주민 사유 구조를 살펴보겠다.

 



‘니칸 모포와’는 과달루페 성모 발현을 기록한 문헌으로, 멕시코 원주민의 상징과 기독교적 메시지가 교차하는 신학 텍스트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신학자 로뻬스 에르난데스와 미겔 레온 뽀르띠는 이 문헌에 대해 “원주민의 신학적 사유가 그리스도교와 만난 가장 복합적이면서도 정교한 증언”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원주민 신학자들이 말하듯,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그 어떤 민족보다도 종교적이며” 세계를 관계적으로 이해하는 영적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그들에게 신은 세계 바깥의 초월적 존재가 아닌, 대지·식물·동물·조상·비인간 존재를 통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생명적 관계망 안에서 경험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가 유입되었을 때, 원주민은 자신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재해석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과달루페 성모의 의미를 살펴보겠다.

1531년의 과달루페 성모 발현은 ‘텁야악 언덕’이라는 장소성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언덕은 본래 아즈텍 대지의 여신 톤안친(Tonantzin)을 기리는 성지였기 때문이다. 스페인 가톨릭은 이 장소를 그리스도교화하기 위해 성모 발현을 강조했지만, 원주민에게 과달루페 성모는 새로운 “가톨릭의 여신”이 아닌, 톤안친의 모성과 보호·대지적 상징이 다른 형식으로 재등장한 존재다. 다시 말해 과달루페는 원주민의 관계적 세계관을 지속하게 한 영적 통로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칸 모포와’의 상징 해석은 의미가 있다. 등장인물은 모두 상징적 구조를 형성하며 식민 상황 속 원주민의 현실을 표현한다. 조영현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신학에 대한 연구: 원주민 문화와 신학의 만남”(2013)에서 ‘니칸 모포와’의 상징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안 디에고는 정복 이후 삶의 의미를 잃은 원주민 공동체를 대표하며, 역병을 앓는 백부 베르나르디노는 스페인 식민 통치가 초래한 고통을 상징한다. 주교는 승리자 권력 체계를 상징하며, 그 수하들은 식민 체제를 유지하는 중간 관리자다. 이러한 상징적 배치는 원주민의 역사적 경험을 신학적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특히 성모 마리아가 요청한 “성전 건립”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원주민의 고통을 듣고 치유하는 공간, 공동체의 절망을 넘어선 유토피아적 희망의 장소로 재해석된다. 조영현의 과달루페 성모 발현 신화의 분석은 그리스도교 상징이 원주민의 세계관 안에서 “관계적 재구성”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니칸 모포와’의 사유 구조는 Celidwen이 말한 ‘kin’ 개념과 맞물린다. 양자 모두 존재를 분리된 개체가 아닌 ‘관계적 연속체’로 이해하며, 땅을 생명·기억·조상이 깃든 존재로 본다. 윤리 역시 관계를 돌보는 행위로 정의되며, 식민적 폭력 속에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영적 복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교는 과달루페 성모가 흔히 혼합주의(syncretism)의 대표적 사례로 설명되어 온 방식이 충분치 않음을 드러낸다. 혼합주의는 종교 요소 간의 ‘섞임’을 강조하지만, ‘관계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면 과달루페 성모는 토착 영성이 그리스도교 상징을 매개로 다시 살아 움직인 사건이다. 이는 관계적 세계관의 지속, 즉 원주민이 세계를 이해하던 방식이 식민 체제 안에서도 소멸하지 않고 변형된 형태로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은 더 넓은 토착 전통과도 연결된다. 예컨대 호주 원주민의 드리밍(Dreaming)은 인간·동물·땅·조상·시간이 상호 연속성을 이루는 존재론을 보여주며,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kin’ 개념과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Celidwen의 ‘kin’ 개념과 ‘니칸 모포와’에 담긴 원주민의 사유를 함께 바라보면, ‘과달루페 성모’는 식민 상황 속에서 원주민이 세계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영적 상징으로 토착 영성·그리스도교 신앙·식민사의 폭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관계적 존재론의 회복과 재구성의 표지였다.






 

 

 

 

 

 

최현주_

성균관대학교

종교철학 전공자로서 한국철학 전공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유학과 한국철학 분야 번역을 주 작업으로 하며, 오랫동안 연구 외 활동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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