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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952호-다시 페티시

한종연KIRC 2026. 9. 15. 18:06

다시 페티시

 

news letter No.952 2026/9/15

 

 



1.

《종교학의 비평적 개념》(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 1998)은 종교학계의 새로운 연구 흐름을 안내하고 이끈 책이다. 2025년에 새 필진과 새 개념들로 구성된 이 책의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개정판을 훑어보던 중 이전 책에는 없던 개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페티시(fetish)다. 오래된 개념이지만 심심치 않게 학자들이 다시 소환하고, 내 연구 목록에도 들어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2020년대의 새 종교학 개념 목록에 등장한 것일까? 새로운 관심의 가장 큰 계기는,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서는 주장을 펼쳐 주목받고 있는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가 페티시를 다룬 저서를 낸 것이다. 나는 페티시 개념의 학문적 배경을 간단히 정리한 후, 라투르의 저작을 계기로 이 개념이 다시 소환되게 만든 매력 포인트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2.

애니미즘(animism)이 다시 떠오르듯이 페티시즘도 떠오르고 있다. 애니미즘과 마찬가지로, 페티시즘은 종교학 역사에서 폐기된 이론으로 보였으나 다른 분과에서 재조명받아 생명력 있는 개념으로 돌아왔다. 다만 페티시즘에 얽힌 사연이 조금 더 복잡하다. 우선 이 말에 대한 선입견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페티시’라는 말은 대부분 성적인 의미로 쓰인다. 아마 독자는 페티시라고 하면 음란물에서 접할 수 있는 성적 도착의 한 형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프로이트에서 시작된 페티시의 성적 의미가 이 개념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 말에 대한 학문적 고찰은 비교종교학적 논의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상적 맥락을 포괄한다.

(1) 이 말은 16세기 포르투갈 상인이 서아프리카 연안 사람의 신앙과 그 대상을 일컫는 말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상인은 타자의 신앙을 ‘페이티소’(feitiço, 주술적 대상이나 행위)라고 지칭했다. 상인들은 자신들도 가톨릭 교인으로서 묵주, 십자가, 성상 등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타자의 비슷한 행위에 새 이름을 붙였다. 이 개념은 여행기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고, 계몽주의 사상가 샤를 드 브로스의 저서 《페티시 신 숭배》(1760)를 통해 이론화되었다. 19세기 초에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가 인간 정신의 발전을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 단계로 제시했을 때, 그중 신학적 단계는 페티시즘, 다신론, 유일신론의 순으로 구성된다. 이로써 페티시즘은 종교 발달의 최초 단계, 즉 원시적 단계로서 자리매김한다.

(2) 19세기 말 종교학의 태동기에, 초기 종교학자들은 페티시즘에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막스 뮐러와 에드워드 타일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기존의 종교 이론인 페티시즘을 격렬히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초기 종교학사에서 페티시즘은 퇴물이 된 옛 이론으로 취급받았다. 1894년에 로버트슨 스미스는 “페티시즘은 그저 유행하는 말일 뿐 정확한 의미라곤 없는 말”이며 “단지 매우 야만적이고 경멸적인 무언가를 의미할 뿐”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었다. 종교학계에서는 퇴출당했어도, 페티시즘은 당시 담론장에서 여전히 언어로서 생명력을 지녔다. 이른바 ‘페티시즘의 유령’이 빅토리아 시대 내내 배회하였다. (Tomoko Masuzawa, “Troubles with Materiality: The Ghost of Fetishism in the Nineteenth Century”)

(3) 한편 선교지에서는 20세기 내내 선교사들이 타자의 종교를 지칭하는 말로 페티시즘을 계속 사용했다. 페티시즘이 생명력을 얻은 대표적인 분야는 경제학과 심리학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내 상품의 속성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로 페티시즘을 사용하였다. 원래 상품은 인간 노동의 산물인데, 이것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생명을 부여받고 독립적인 관계들을 형성한다. 즉 페티시즘[물신숭배]은 노동생산물이 본연의 가치(사물 간의 관계) 대신 전도된 가치(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부여받아 상품이 되는 현상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성적 욕망의 차원에서 전도된 가치를 지칭하기 위해 이 말이 사용된다. 그는 남자아이가 상상 속에서 어머니에게 있다고 믿었던 남근의 대체물을 페티시[절편음란물]라고 불렀다. 다만 대중적 차원에서는 프로이트의 복잡한 용법이 단순화되어, 성적 욕망이 주변의 다른 물건으로 옮겨 간 것, 즉 전도된 성적 가치 정도로 이해된다.

3.

이상의 학문적 맥락 위에 라투르의 논의가 얹혔다. 그는 저서 《근대의 팩티시 신 숭배》(On the Modern Cult of the Factish Gods, 2010[1996])에서 페티시즘을 재조명함으로써 우리가 근대라고 믿는 것을 재서술하였다. 여기서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할 공간도 내 능력도 부족하다. 그 대신 이 저서를 계기로, 페티시즘이 숱한 사상가들에게 호출되어 지금도 핵심 개념의 자리를 지키게 한 매력 포인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지금 페티시를 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 페티시즘은 서구와 비서구의 만남의 맥락에서 탄생한 최초의 비교종교학 이론이다. 나는 이 개념의 고유한 매력은 바로 첫 만남의 순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라투르는 그 순간을 드라마처럼 재연하며 서양인의 문화적 전제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포르투갈인들이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이 경배하는 이 돌, 진흙, 나무의 우상들은 당신들 손으로 만든 것입니까?” 기니인들은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그 돌, 진흙, 나무의 우상들이 진정한 신들입니까?” 흑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답했다.

 

기독교인에게는 모순인 두 대답이 아프리카인에게는 둘 다 당연한 것이었다. 만들어진 것이 진실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서구의 뿌리 깊은 생각이다. 라투르는 여기서 더 나아가 페티시(만들어진 것)와 사실(발견된 것)의 구분이 근대를 지탱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만남의 순간에 드러나는 문화적 전제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하여, 서구 근대의 토대라고 여겨진 이분법을 해체하는 거대한 작업에 착수한다.

(2) 페티시 개념에 담긴 다른 중요한 주제는 창조자와 창조물 사이에 생기는 괴리다. 페티시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 물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 물건에 독자적인 성스러움이나 생명력이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런 신비화 과정은 마르크스 페티시즘의 핵심이다. 마르크스는 인간 노동이라는 기원의 망각을 ‘소외’라고 불렀고, 이 망각을 통해 상품에 전도된 가치가 부여된다. 프로이트 페티시즘에서 상실된 성기라는 기원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것으로, 페티시의 망각된 근원이 된다.

라투르는 가치의 전도에 의한 신비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페티시의 망각된 근원을 폭로하겠다는 근대인의 태도를 ‘반페티시즘’이라고 부르는데, 이 태도는 근대인의 자기 믿음에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투르에게 페티시즘은 근대인을 비판하는 유력한 도구가 된다.

(3) 가장 중요한 매력은 페티시 개념이 물질에 대한 주목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종교학사에서 페티시즘이 격렬한 비판 속에서 폐기된 것은, 그간 종교의 본질을 내면적 신념으로 보는 태도가 주류가 되었던 사정과 무관치 않다. 이제 물질종교(material religion)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라투르의 이론이 그 흐름과 결합하면서, 페티시는 종교학의 주요 용어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페티시즘을 통해, 그리고 페티시즘이 오해받아 온 쟁점을 통해, 우리는 물질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 얽혀 종교를 구성하는지 새롭게 이야기해야 한다.

 

 

방원일_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종교문화에서 만남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내용을 발전시켜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2023)을 출판했다. 현재 물질종교의 관점에서 근대 한국 종교사를 새롭게 서술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저술로는 ≪메리 더글러스≫(2018), ≪근대 전환기 문화들의 조우와 메타모포시스≫(2021, 공저), ≪메타모포시스의 현장≫(2023, 공저), ≪조너선 스미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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