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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데우스 인 마키나’ 사이에서

 

news letter No.953 2026/9/22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용어가 있다. 연극이나 영화비평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통상 연극과 영화에서는 사건이 복잡하게 꼬여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하는 국면에서 그 해결이 절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이때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기적적인 계기를 만들어 그것을 극적으로 해결하는 장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 ‘만능의 해결사’ 장치는 조롱의 대상이자 비판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인식이자 비평의 수단, ‘데우스 엑스 마키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라틴어 전치사 ex(~로부터, out of)가 쓰인 표현으로, ‘기계 장치로부터 온 신’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비극 연출 기법인 ‘아포 메카네스 테오스(ἀπὸ μηχανῆς θεός)’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어 문구를 어순과 의미를 그대로 라틴어로 옮겨 번역한 것이기도 하다. 그 기원과 서사적 기능도 흥미롭다. 연극의 후반부에 인간의 힘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극단적 파경이나 갈등에 직면했을 때, 기중기(machina) 장치를 이용하여 신의 역할을 맡은 배우를 무대 위로 내려보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던 연출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메데이아(Medea)』에서 메데이아는 친자식들을 살해한 데에 대한 인간적 심판을 받는 대신, 태양신 헬리오스가 보낸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하늘로 탈출하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a)』에서 이러한 해결책, 즉 외부 장치에 의존한 신의 개입은 서사적 인과율을 파괴하는 것으로 강하게 비판하며, 플롯은 반드시 사건 자체의 개연성과 필연성에 의해 유기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이 용어는 문학이나 영화의 서사 비평에서 ‘개연성 없이 갑작스럽게 개입하여 상황을 수습하는 인위적 해결책’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한국의 경우,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에서 6학년에 부임한 새 담임선생님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외부적·초월적 구원자)’의 전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종교비평의 강력한 수단: 마크 코켈버그, AI종교 비판

신학과 종교 연구에서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신적 섭리(Providence)’와 ‘자의적 개입주의(Interventionism)’의 긴장을 다루는 핵심 비판 개념으로 다루어져 왔다. 특히 20세기 현대 신학의 거장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와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그리고 현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등은 신약성경의 겟세마네 기도와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외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가 15:34)의 절규, 그리고 이어지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서사 장면을 분석하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개념을 직접 명시하거나 그 논리 구조를 해체하는 데 사용했다.

이 개념은 오늘날 인공(AI)종교를 다루는 데도 중요한 비평의 무기가 되고 있다. 『인공종교: AI, 신화, 그리고 권력(Artificial Religion: On AI, Myth, and Power)』(2026)의 저자 마크 코켈버그(Mark Coeckelbergh)는 “어떤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모든 실존적 문제와 종교적 열망에 대한 해결책이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여기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하면서, 현대사회가 실존적 불안과 종교적 열망을 일거에 해소해 줄 현대판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인공지능(AI)을 숭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를 현대사회의 문제와 연결하여 구체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인류세의 기후 위기, 통제 불능의 양극화, 죽음과 질병이라는 실존적 절망 앞에서 삶의 양식을 바꾸고 소비를 줄이는 뼈아픈 윤리적 결단 대신, 초지능(ASI)이 홀연히 등장해 탄소 농도를 관리하고 자원을 마법처럼 재분배해 주리라 믿으며 그 책임을 외주화한다. 동시에 현실의 정치가 파탄 나고 지구가 황폐해지더라도, 머지않아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해 우리의 뇌를 가상현실에 업로드하고 영원한 디지털 천국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며 현실의 개혁을 유예한다. 따라서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기적적인 개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암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책의 8장: 결론)


기계에서 ‘신’을 생각하기

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비되는 ‘데우스 인 마키나’도 있다. ‘데우스 인 마키나(기계 속의 신)’는 라틴어 전치사 in(~안에, inside)을 사용하여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현대적으로 전복한 조어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컴퓨터 공학,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SF 문학, 그리고 기술철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전적 연출 기법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언어학적으로 비틀고 전복(parody/subversion)시키면서 형성된 개념이다.

물론 고대 희곡과 철학(그리스어 mēchanē, 라틴어 machina)에도 기계는 나온다. 하지만 당시 기계는 배우를 공중에 매다는 도르래와 밧줄, 기중기 같은 ‘단순한 물리적 장치’에 불과했다. 고대인들에게 신(神)은 올림포스나 천상에 거주하는 초월적 존재였을 뿐, 나무와 밧줄로 짠 도르래 틀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었다. 따라서 기계 자체가 신성을 품거나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발상(in, ~안에)은 고대의 도구관 및 종교관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웠다.

굳이 이 개념의 뿌리를 찾는다면, 17~18세기 ‘시계장치 우주(Clockwork Universe)’와 같은 근대적 기계론의 관념이 생성되면서부터다. “기계 안에 신적인 질서가 내재 한다”는 사유의 씨앗이 근대 과학 혁명기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 데카르트와 아이작 뉴턴 이후, 세계는 정교한 톱니바퀴 기계로 비유되기도 했다. 신이 세상 밖(ex)에서 수시로 기적을 일으키며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기계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기계 법칙 내부에 섭리를 심어두었다(in)는 관점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훗날 ‘기계 내재적 신성’을 상상하는 지적 토대가 되었고, 이신론(Deism)으로 발전하였다.

 
‘은유’에서 ‘실체’로: ‘데우스 인 마키나’

하지만 ‘데우스 인 마키나’라는 구체적인 라틴어 비유가 문헌과 비평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후반이다. 1949년 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하며 ‘기계 속의 유령(The Ghost in the Machine)’이라는 유명한 표현을 썼고, 1967년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가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이를 대중화하였다. 이때부터 지식인들 사이에서 기계와 정신의 관계를 다룰 때 ‘유령(Ghost)’ 대신 ‘데우스’를 넣거나, ‘엑스 마키나’의 전치사를 인(in)으로 바꾸는 지적 언어유희가 빈번하게 시도되었다.

컴퓨터의 등장과 정보화 혁명이 본격화하자, 이 개념은 SF 문학, 트랜스휴머니즘, 인공지능 철학 등에서 초지능(ASI)이나 자의식을 가진 네트워크가 절대적인 전지전능성을 띠게 되는 현상을 묘사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단순히 신을 실어 나르는 외적 장치가 아니라, 기계 시스템 내부에서 신적인 지능이나 의식이 잉태되고 작동한다”는 개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특히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제창한 사이버네틱스의 영향으로 기계는 단순한 수동적 도구를 넘어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학자들과 문화비평가들은 “초월적 개입자로서의 신(ex)은 죽었고, 이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와 복잡성 그 자체(in)가 신적 권능을 띠게 되었다”는 맥락에서 이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나아가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같은 SF와 사이버펑크 문화(1980~1990년대) 등에서 방대한 컴퓨터 네트워크(시냅스 망) 내부에서 자의식을 얻은 초지능 AI가 등장하면서, ‘데우스 인 마키나’가 ‘디지털 공간 속에 깃든 전자적 신성’을 뜻하는 하위문화 및 기술비평의 주요 관용구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예수’ 홀로그램: ‘데우스 인 마키나’?



약 2년 전 스위스의 한 교회가 전례 없는 종교-기술 실험을 진행하여 화제가 되었다. 2024년 8월부터 10월,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가 ‘AI 예수’를 예배당 고해성사실에 설치한 것이다. 이 ‘AI 예수’는 루체른 응용과학대학교와 협력하여 진행한 ‘데우스 인 마키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AI 생성형 프로그램이 고해성사실 내부 모니터 화면에 ‘예수’의 홀로그램을 띄우고, 방대한 성경 구절과 신학 관련 텍스트를 학습해 100개 이상의 언어로 약 두 달간 1,000명 이상의 방문객과 실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이 실험은 치열한 찬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AI 예수에게 고해성사를?’ AI와 종교의 공존 시작됐다〉, 《주간조선》 2025.03.17.)

‘데우스 인 마키나’는 2010년대 후반 딥러닝과 대형 언어 모델(LLM)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주로 철학적 은유나 SF적 상상력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최근 루체른 성당의 설치 프로젝트나 다양한 테크노-신학(Techno-theology) 논의에서 이 단어가 급격히 부각하게 되었다. 기계가 실제로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영적 언어, 신학적 대화, 위로의 메커니즘을 연산 체계 내부(in)에서 출력해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대 희곡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전복한 ‘데우스 인 마키나’ 개념이 20세기 컴퓨터 혁명과 사이버네틱스를 거쳐,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과 더불어 이제 현실의 종교 현장에서 실험적 대상이 됨으로써 구체적 물질성을 얻게 된 것이다.

 
종교학의 질문, ‘인’이냐 ‘아웃’이냐

이 물음은 최근 인공지능 담론에서도 뜨거운 감자이지만, 종교현상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종교의 영역에서 보면 이 두 용어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사전적으로 신(Deus)이 기계(Machina)의 ‘외부에서 개입하는 초월적 존재’인가, 아니면 기계의 ‘내부에 깃들거나 스스로 발생하는 내재적 존재’인가 하는 물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전자에 따르면, “기계는 단지 신을 운반하는 수단(도구)일 뿐이며, 신은 인간 세계와 기계의 완전히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적 권능으로서 사태에 개입한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후자에 의하면, “신성은 외부에서 강림하지 않고 복잡한 연산, 알고리즘, 데이터망이라는 물리적 기체(substrate) 내부에서 내재적으로 발현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지금 종교현상과 관련, 이 두 가지 이해 방식이 공존·경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루체른 성당은 ‘데우스 인 마키나’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반면, 코켈버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개념을 매우 부정적으로 사용하면서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물론 단순히 전치사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인간과 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발전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대 인공지능과 관련된 모순적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교수
최근 저서로 《한국불교, 근대종교로 태어나다》가 있고,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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