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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와 한국의 종교학계 news letter No.804 2023/11/14 필자의 지난 뉴스레터 -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잔상: 순례지가 된 어느 영국 축구 경기장〉2023/6/6, 781호 – 의 내용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염두에 둔 것이었듯이, 어느덧 반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이들 참사는 여전히 필자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그 이유로는 같은 시기를 사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그렇듯이, 예기치 못한 연이은 대규모 참사가 남긴 깊은 충격과 아픔을 비롯하여, 처벌 없는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애도 공간 구축의 어려움, 피해자 가족과 시민들의 연대를 저지하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 등에 대한 분노가 차곡차곡 쌓인 것도 한몫한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에게 한 가지 더 좌절감을 선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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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방식 news letter No.764 2023/1/31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살아있는 가족이나 죽은 자 모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는 전쟁이나 불의의 사고 등 불행한 죽음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미안한 마음 등을 전하고 싶고, 죽은 사람이 어떤지 알고자 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망자 역시 이승 삶에 대한 아쉬움이나 한스러움, 가족들에 대한 섭섭함과 미안함, 고마움과 당부 등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아마 어떤 죽음도, 그것이 아무리 밝고 행복한 죽음일지라도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직접적인 대화의 바램을 해소하진 못할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해 행하는 무속의 굿에는 죽은 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며 산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