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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복의 조건 news letter No.743 2022/9/6 기독교 성서를 보면 점복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점복에 의존하는 사람이나 점복 전문가 모두 경고와 비난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사례가 성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와 달리 점복이 긍정적으로 언급되는 대목도 없지 않다. 점복에 대한 성서의 이중적 관점이 어디서 비롯하는가는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점복과 관련된 주체가 누구인지가 관건인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누가 점복을 행하는가에 따라서 어느 한쪽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또 다른 한쪽은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로 취급된다. 구약 성서의 맥락을 참조하면 점복 전문가의 역할 중 하나가 해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는 이집트 왕이 언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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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경험한다는 것 news letter No.719 2022/3/1 언젠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1장을 읽어가던 중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셨는지를 묻는 사람들을 향하여 지옥을 준비하고 계셨을 거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아우구스티누스식의 유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나만의 경험일 뿐 읽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인물로 평가된다. 앞의 예도 시간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그에게 시간은 신의 창조물에 불과한 것이라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던 창조 ‘이전의’ 일을 묻는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시간을 거론한 배경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