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743호-점복의 조건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9. 6. 19:25

  점복의 조건


 news letter No.743 2022/9/6

 



      기독교 성서를 보면 점복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점복에 의존하는 사람이나 점복 전문가 모두 경고와 비난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사례가 성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와 달리 점복이 긍정적으로 언급되는 대목도 없지 않다. 점복에 대한 성서의 이중적 관점이 어디서 비롯하는가는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점복과 관련된 주체가 누구인지가 관건인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누가 점복을 행하는가에 따라서 어느 한쪽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또 다른 한쪽은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로 취급된다.

    구약 성서의 맥락을 참조하면 점복 전문가의 역할 중 하나가 해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는 이집트 왕이 언젠가 심란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요셉이란 인물이 해몽하여 갈등 상황을 해소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이집트 파라오의 꿈은 어지간히 난해했는지 주변 점술가들은 해몽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유대 민족 출신인 요셉이 등장하여 간단히 문제를 해결한다. 요셉의 능력은 아마도 파라오 곁을 늘 지켜주었을 이집트 점술가들보다 월등한 것으로 입증된다. 물론 요셉은 이러한 능력이 자신이 믿는 신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필자가 보기에 요셉의 이런 발언은 그가 점술가가 아니라기보다는 여타 점술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을 더욱 부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수호전을 읽다가 점복에 관한 언급이 있어서 흥미로웠던 적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막이 기억이 나지 않아 이번에 다시 살펴보았다. 송강이 북경에 사는 노준의란 인물을 양산박으로 영입하기 위하여 수하인 오용을 보낸다. 오용은 점쟁이로 꾸며 노준의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다. 노준의는 오용을 집으로 불러들여 점을 친다. 점을 치기 전 노준의는 오용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생, 군자는 재앙은 물어도 복은 묻지 않는 법이오. 권세나 재산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으니 그저 앞으로 어떻게 진퇴(行藏)를 정해야 할지 알려주기만 하면 되겠소.” 점을 치는 목적이 복을 구하는 데 있지 않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재난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자못 인상적이다.

    요셉의 해몽 이야기는 노준의의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집트 파라오의 꿈은 대체로 일곱 마리의 살진 소가 일곱 마리의 마른 소에 의해 잡아 먹히고, 잘 익은 일곱 이삭이 여물지 못한 일곱 이삭에 의해 삼켜지는 내용이었다. 요셉은 이에 대하여 앞으로 이집트가 7년 동안 대풍이 들지만, 그다음 7년은 대흉이 들어 국가적인 재앙으로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꿈이니, 이토록 비참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왕에게 충고한다. 다행히 파라오는 요셉의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과연 해몽대로 현실로 나타난 큰 재난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다.

     점복이 성립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삶이란 인간의 의지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없다면 점복은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이 힘의 실체는 신비하고 불투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점복은 전문가만의 특수한 방법을 통해서 이런 힘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작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삶을 좌지우지하는 미지의 영역에 주목하고 거기서 보내는 신호를 해독할 수 있다면 적어도 불행에 대비할 최소한의 태세를 갖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점복의 성립 조건으로 거론해야 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결정론이 지배적인 환경에서는 점복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점복은 인간이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전략이자 수단이기 때문이다. 만사가 결정된 상황에서 인간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면 점복이 들어설 자리는 무망할 것이다.

    갑골문에서 확인되는 몇몇 사례들은 이처럼 점복이 지닌 효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갑골문에는 국가적으로 특정한 사업을 앞두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점을 쳤던 경험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점복의 주체는 이 사업의 성패가 신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는 신들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서 점을 친다. 안타깝게도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온다. 회피는 소극적이지만 불길함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점복의 주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길한 점괘를 얻을 때까지 조건을 달리하며 계속해서 점을 친다. “~한다면”을 수차례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업을 추진하는데 가장 적합한 조합을 찾아낸다. 점복 주체가 보여준 적극적 대응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점복을 시간을 통제하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삶의 조건인 시간의 세계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점복은 거대한 시간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하여 인간이 발명한 여러 장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중국 고대 노인의 정체성과 권위에 관한 연구〉, 〈중국 고대 도시의 종교적 성격에 관한 연구: 대읍상(大邑商) 은허(殷墟)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