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호-폭력, 사랑과 카타르시스의 다른 이름인가
폭력, 사랑과 카타르시스의 다른 이름인가 news letter No.767 2023/2/28 최근 르네 지라르에 관한 글을 써야 할 일이 있어 오랫동안 먼지 쌓인 『폭력과 성스러움』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들었다. 불문학자 김현이라는 탁월한 독해자로 인해 이미 30여 년 전에 한국의 지라르 읽기는 상당한 수준에 달해 있었다. 자신의 지라르 연구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 김현은 “폭력이 과연 어디까지 합리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주지하듯이 지라르 사상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폭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막는다는 이른바 ‘희생양 메커니즘’이 바로 『폭력과 성스러움』의 핵심어이다. “욕망은 폭력을 낳고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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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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