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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새로운 신화를 만들다

2011.10.25


2011년 10월 3일 새벽. 56세의 나이로 애플사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행렬이 이어졌고 그가 좋아했던 비틀즈의 음악처럼 그도 ‘새로운 종교’로 다시 태어났다. ‘잡스교’(Jobs敎)는 잡스어록, 잡스평전, iPod, iPad, iPhone을 통해 미국을 넘어 세계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검은 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신상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며 혁신을 강조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잡스의 삶은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깊은 감동을 준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미혼모에게 태어나 5살 때 잡스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의 생부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리아인유학생이었고 그의 생모는 미국인대학원생이었다. 나중에 잡스는 그의 생모와 화해했지만 그의 생부와는 끝까지 만나지 않았다. 그의 성장과정은 일반 사람과달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잡스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휴렛팩커드회사의 방과 후 수업을 들었고 여름에 그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오레곤주의 리드대학교에 입학한 잡스는 한 학기 동안 철학을 공부했지만 양부모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여 결국 자퇴를 결심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만들 컴퓨터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서체수업을 18개월 동안 도강했다. 그 기간 동안 친구 집의 거실에 머물며 빈병을 팔아 생활했고 매주 일요일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사원에 가서 무료로 식사를 하였다. 그는 한 때 반문화적 히피들과 함께 사과농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잡스는 구도여행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비디오게임회사에 기술자로 취직했고 홀연히 인도를 향하여 떠났다. 그는 인도에서 깨달음의 수행을 마치고 불자가 되어 돌아왔다.


1976년 잡스는 부친의 차고에서 친구들과 함께 애플사를 창업했고 개인용 컴퓨터를 조립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2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0년 만에 2천명의 사원이 일하는 20억 달러규모의 기업으로 급성장하였다. 잡스는 “당신은 여생을 설탕물이나 팔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하는가?”라고 설득하며 펩시사의 전문경영인 스컬리를 애플사의 최고경영자로 영입했지만 나중에 스컬리와의 마찰로 애플사를 떠나게 되었다.

30세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잡스는 좌절하기보다는 1985년 새로운 컴퓨터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했고 다음해 그래픽회사 픽사(Pixar)를 세웠다. 그리고 1991년 선불교 승려 코분 오토가와(Kobun Otogawa)의 주례로 로렌 포월과 결혼하였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Toy Story)를 비롯하여 5차례 아카데미수상작이 된 애니메이션영화들을 제작했다. 1996년에 애플사가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애플사로 귀환했고 2004년 픽사를 인수한 월트디즈니사의 최대주식을 보유한 이사가 되었다.

그러나 잡스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반문화운동을 상징했던 <전지구(全地球)카탈로그>(The Whole Earth Catalogue)를 일종의 성서처럼 여기며 “늘 갈망하고 계속 우직(愚直)하라.” (Stay hungry. Stay foolish.)는 문구를 인생의 지침으로 삼았다. 췌장암과 오랜 사투를 벌여 온 잡스는 무척 수척해진 모습으로 삶을 마감했다. 문화비평가들은 애플사의 사과 로고를 창세기의 선악과(善惡果)와 뉴튼의 사과에 이어 세계를 변화시킨 세 번째 사과로 평가한다.

지금 뉴욕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도시들에서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거센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있다. 잡스가 만든 세계가 이 흐름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했던 잡스의 혁신과 꿈은 한국 사회에도 필요하다. 한국의 대표기업이 유럽과 호주에서 애플사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획의 신’과 ‘IT의 신’으로 불렸던 잡스가 사회의 규범으로 변하는 기이한 현상은 혜성과 같이 나타나 한국의 정치권과 대선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안철수 현상과 맥을 같이한다. 종교학자의 자리에서 바라볼 때 경제와 정치에 실망한 대중들은 ‘종교적 인간’의 본성에 따라 삶의 의미와 미래의 희망을 회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영웅신화와 새로운 종교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신_

배재대학교 종교학 교수


shinahn@pcu.ac.kr


주요 논문으로〈엘리아데와 반 델 레에우의 종교현상학 비교연구〉,〈기독교 선교와 이슬람 다와의 비교연

구〉, 주요저서로 <세계 종교의 이해>, <세계 기독교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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