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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비평》통권 20호를 내며


2011.10.18



본지가 창간된 지 이번 20호로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본지는 매호 발행될 때마다 특집 편을 마련하여 종교학계가 주목할 만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힘써왔다. 종교학의 고전적 문제뿐만 아니라, 시사성이 짙은 종교적 이슈가 특집의 주제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특집 주제를 일별해 보면 한 가지 의아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단 한 번도 신화가 특집의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화는 종교학의 고전적 분야 중에 하나이고, 대학 교과목 편성 시에도 빼놓지 않는 주제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게다가 2000년 이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문화현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신화 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몇 가지 사정을 감안하면 신화는 한 차례 정도 특집으로 다루어볼 만한 주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본지의 특집에 신화가 주제로 채택된적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본지는 그동안 종교학의 다양한 연구 주제에 대하여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그 중에는 신화를 주제로 기술된 일반 논문도 여러 편 포함되어 있다. 다만 신화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주제라서 별도의 장을 마련할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고, 최근 종교학 이외의 분과 학문에서 신화에 대한 논의가 워낙 활발하다보니 신화를 특집으로 다루는 일 자체를 진부하게 여긴 까닭도 없지 않을 듯싶다.

그동안의 사정이 어떻든 이번 20호 특집 주제를 ‘한국사회 신화담론의 어제와 오늘’로 정한 것은 때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신화 개념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한국사회 내부에서 형성되어 온 신화담론들을 성찰하는 것이 이번 특집호의 목적이고 보면, 지금까지 종교학계 안팎에서 진행된 신화에 대한 논의들과 변별되면서도 그러한 논의들 자체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마저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특집에서 이러한 목적이 충분하게 구현되지는 않았다. 부족한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정진홍의 기조발제로 문을 연 특집은 총 4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었다. 하정현의〈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 개념의 형성과 전개〉는 신화 개념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메타 연구에 속하는 글이다. 이 글은 한국사회의 신화 개념이 일본 사학자들에 의하여 개진된 단군부정론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하정현은 당시 한국사회에 유입된 서구의 ‘myth’ 개념과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神話’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육당 최남선과 유물론자 등 각 진영이 어떻게 한국사회의 ‘신화’ 개념을 형성하고 확장, 발전시켰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임현수의〈2000년 이후 한국의 중국신화학: 신화연구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는 2000년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진 중국신화학의 흐름을 검토한 글이다. 이 글은 중국신화학의 성과 전반을 다루고 있지는 않으며,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특히 중국에서 진행된 신화연구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성과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므로 이 글의 성격은 중국신화 연구에 대한 연구를 재검토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의 중국신화학자들이 중국의 신화학과 중국신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일단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형찬의〈신화와 전통: 한국무속의 맥락에서〉는 인지과학의 성과를 바탕에 깔고 신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늘 언급되는 무속전통이나 무속신화가 흔히 생각하듯 유구한 시간성을 지닌 과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새롭게 ‘발명’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인식은 새로울 것이 못 된다. 가령 우리는 모든 역사와 전통은 현재의 관점이 투영된 발명품이란 견해에 얼마나 익숙해 있는가. 이 글은 이와 같은 발명품으로서 무속신화와 전통이 어떤 인지적 조건 하에서 형성되고 유통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들과 차별성을 보여준다.

이창익의〈신화로 그리는 마음의 지도〉는 레비스트로스 신화학을 약간 색다른 관점에서 조명한다. 지금까지 레비스트로스 신화학에 대한 연구가 주로 구조주의의 맥락에 집중되었다면, 이 연구는 그런 ‘구조’가 작용하는 바탕으로서 ‘마음’에 대한 관심으로 이행한다. 신화는 이러한 마음의 작용이 세계를 사유의 질료로 삼아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신화에는 마음이 남긴 흔적이 이곳저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신화학은 이처럼 신화에 남겨진 마음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신화가 그려내는 마음의 지도를 완성할 것이다.


이번 호에는 특집 논문 이외에 3편의 일반 논문이 마련되었다. 박규태의〈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 연구〉는 저자가 2년에 걸쳐 실시한 현지답사를 토대로 작성한 글이다. 일본 오사카 지역에 남아 있는 백제계 신사와 사원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 지역 더 나아가 일본 내 한반도 도래문화의 영향력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좋은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선은 이 연구를 진행한 저자의 의도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규태는 지금까지 지역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일본문화연구가 종교문화를 정치의 종속변수 정도로 여겨왔던 태도에 한계를 느낀다. 한일 관계사에 대한 양국의 해묵은 오해와 인식상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종교문화가 지닌 독립적 위상에 기초한 새로운 설명 모델을 서둘러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욱의〈조선시대 왕실 제사와 제물의 상징: 혈식(血食)·소식(素食)·상식(常食)의 이념〉은 왕실 제사의 성격을 제물의 차이를 중심으로 논한 글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왕실 제사는 세 가지이다. 종묘, 왕릉, 문소전(원묘 중 하나)에서 거행되었던 왕실 제사는 다른 무엇보다도 진설 제물의 차이로 말미암아 각각에 내재한 이념 및 역사성을 드러낸다. 혈식, 소식, 상식은 이욱이 각 제사별 제물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이 개념들은 각각 유교 정통주의 예 이념을 구현한 종묘 제사, 불교의 영향을 받은 왕릉 제사, 일상적 효의 실천을 이념으로 한 문소전 제사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진구의〈한국 개신교 해외선교에 나타난 종교적 군사주의: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중심으로〉는 해외선교 전문단체 인터콥을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 해외선교의 특성을 살펴본 논문이다. 이 글은 인터콥의 선교활동을 백투예루살렘 운동으로 규정한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역사적 배경, 전개 과정, 신념, 의례 등이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이 글은 인터콥 선교활동을 지배하는 이념으로서 종교적 군사주의를 결론으로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종교적 군사주의가 인터콥 선교활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진구는 한국 개신교 해외선교 전반에 드리워진 종교적 군사주의의 그늘을 매우 우려스런 눈길로 마주하고 있다.


〈이미지 기행〉편에는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박종천의 글을 실었다. 박종천의〈이야기에서 이미지로, 이미지에서 의례로〉는 이야기, 이미지, 의례의 긴밀한 상호관련성을 보여주는 글이다. 이 글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가 이미지로 표현되는 양상과 이미지가 의례로 구현되는 양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박종천의 말대로 이 삼자가 서로 순환 관계에 놓여 있다면 종교문화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위해서도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글을 종교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론으로도 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번〈설림〉 편에는 오랜만에 재불 종교학자 김대열의 글을 실었다. 김대열의〈성현으로서의 중국 표의 문자와 도교의 상징〉은 평면적이고 일의적인 우리의 일상 언어에 대비하여 상징 언어의 심오함을 그리워하며 서술한 글이다. 김대열은 중국문화가 지닌 상징의 세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의하면 중국문화는 고대부터 문자 중심의 시각 상징을 발전시켰다. 도교는 이러한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종교이다. 상징으로 가득 찬 중국문화가 파열되기 시작한 것은 ‘말’ 중심의 구술화 및 선형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이러한 사태의 변화를 초래한 계기와 그 결과에 함축된 의의는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류제동의〈《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을 읽고〉는 카렌 암스트롱의 저서를 평한 글이다. 카렌 암스트롱에 대해서는 그동안 몇몇 저서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형편이라서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저자라 할 수 있다. 저자 소개란에 ‘대중적’이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붙이고 다니는 종교학자라면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는 뜻이리라. 류제동은 이번 서평의 대상이 된 역서의 내용보다는 역자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류제동의 지적은 원문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창간된 지 1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종교문화비평》은 종교학과 종교문화 발전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을까. 이 학술지를 바라보는 사계의 전문가들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이 책을 간행하는 데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던 내부 구성원들은 이 물음에 대하여 스스로 어떤 답변을 마련하고 있을까. 권위 있는 학술지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본지의 취약점은 무엇이고, 시급히 보완해야 할 사안은 무엇인가. 10년 전 첫 발을 내디딜 때 가졌던 마음 속 다짐 위로 이 지면으로는 못다 할 무수한 질문들이 쏟아져 내린다. 여태껏 아무도 던지지 않았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종교문화에 대한 앎의 새 차원을 여는 학술지로서 《종교문화비평》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원한다.



*이글은 <종교문화비평>20호(9월30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temps82@hanafos.com


주요 논문으로〈조나단 스미스의 비교이론과 방법: 이해와 비판〉,〈중국전통시기《산해경》의비교학적 맥락과 위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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