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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종교를 향한 21세기 아쇼카 선언


-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을 평가한다 -


2011.9.27


"우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와 안락을 얻고자 하듯이

이웃종교인들도 그들이 믿는 종교를 통해 평화와 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길은 다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의 서원」 中)


지난 8월 23일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 본부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스님)'는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21세기 아쇼카 선언(초안)〉(이하 약칭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초안) 발표는 종단 안팎의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계종은 10월까지 교계안팎의 의견을 받아 최종안을 낼 것이라고 한다.


2009년 11월 출범한 조계종 총무원 제 33대 집행부는 '신 봉암사 결사'로도 불리는 '자성과 쇄신결사'를 천명하고, 이를 위해 2011년 7월 5일 이를 전담할 결사추진본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이 선언문은 이후 이 본부가 내놓은 가시적 결과물이다.


이 결사와 선언문의 배경은 선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도법 스님의 설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다. 지금은 종교 때문에 국민이 근심하고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선언은 「총론」,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의 입장과 실천」,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의 서원」'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은 공고한 종교적, 철학적 기반을 지니고 있어 주목할 부분이 적지 않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총론에서 개진하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불교적 해석이다. 총론은 이 세계의 다양성을 긍정하면서 그 다양성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성은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과도 맞다고 말한다.


'날짐승이 물짐승에게 하늘을 고집하지 않듯이 누구도 자신의 세계를 다른 생명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다른 것의 조화가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이며 최선이다'라고 선언한다.


이런 다원적 종교관은 자연스럽게 '열린 진리관'으로 연결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이 부분은 '불교 밖에도 진리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불교는 ‘나만의 진리’를 고집하지 않으며 불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진리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열린 진리관은 이웃종교를 대하는 기본 원칙이며 대화와 소통을 위한 출발입니다.”

('열린 진리관'의 내용 中)


이 ‘열린 진리관’은 다른 종교들이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동반적, 상호보완적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전법의 목적은 상대방을 개종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전법의 원칙'中).


또한 특징적인 것은 이 선언이 종교는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의 종교 활동은 민주적 이념과 시민적 상식과 부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자신의 믿음을 전하기 위해 공적 지위나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공적 권력이 신앙전파의 수단이 되거나 공적 장소가 신앙 전파의 무대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라고 경계한다.('공적 영역에서의 종교활동'中).


이 선언에 대한 시중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조계종의 통렬한 자기반성이며 종교의 권력화에 대한 참회'(중앙일보), '종교들의 평화로운 공존, 종교내부개혁을 통해 세상을 구제하는 종교본래의 소임’(조선일보 사설), ‘큰 종교라면 의당 갖춰야 할 지극히 정상적인 덕목'(경향신문 사설) 등 긍정적 평가 일색이다.


그러나 조계종 내부에서는 비판도 만만치 많다. 이 선언이 '종단 집행부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발표됐다'(불교닷컴)는 절차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지만, 중심적 비판은 '열린 진리관', '포교', '아쇼카'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열린 진리관'은 상대 종교 교리의 진리성을 인정하여, 결국 불교의 포교를 무력화 하고 불교인으로서의 신심을 없앨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쇼카 왕은 형을 살해하고 주변국과의 살육 전쟁을 치른 다음 참회하는 선언을 한 만큼 이 언을 대표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조계종의 이번 선언은 한국의 종교사에서 종교간의 평화적 공존과 협력을 주장하고 그에 따른 입장과 실천을 자율적으로 제정, 공표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하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종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물신화, 독선, 배타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종교계의 위기상황에서 발표한 이번 선언은 단순히 불교 자신의 성찰이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의 종교 전체에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 선언이 이 처럼 불교의 차원을 넘어 종교계 전체의 성찰로 이어져 가톨릭교회의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선언(1962-1965)에 필적할 역사적 선언문이 되기를 희망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현대화라는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쇄신과 민주화, 지역화 등을 추진했으며, ‘익명의 그리스도인’과 같은 포용적 구원관을 설파하여 그 영향력이 지대하였다. 이번 선언이 이 같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열린 종교'의 가치를 지닌 불교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songcloud@naver.com


주요 논문으로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현대 한국불교에불의 성격에 관한 연구>등이 있고,저서로《봉

암사결사와 현대 한국불교》,《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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