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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20호-스포츠, 대체종교를 꿈꾸다(전명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6. 16:05

스포츠, 대체종교를 꿈꾸다

2010.8.24


지난 2010 월드컵을 올 여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보거나, 같은 옷을 입은 거대한 집단 속에 들어가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스포츠가 이제 단순히 오락이나 시간보내기의 도구가 아님을 느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민족주의적 정서가 개입된 월드컵의 경우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를 찾는 관중들 중에는 경기가 없는 겨울이 가장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홈팀이 역전패를 당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역전승을 거두었을 때는 거의 종교적 희열에 가까운 기쁨을 드러낸다. 응원팀의 승패가 삶의 활력소가 되거나 상실감에 빠지게 할 정도로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올해 16경기 연패를 기록한 기아 팀의 팬들이 선수단의 버스를 가로막고 항의한 행동이 충분히 이해된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스포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을 넘어 종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학문분야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스포츠가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분야와는 달리 종교는 스포츠와의 속성의 유사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미 40여년 전부터 많은 신학자, 종교학연구자, 종교사회학자들이 ‘스포츠 종교’(sport religion), 또는 ‘종교로서의 스포츠’(sport as religion)라는 개념을 설정한 것은 바로 종교와 스포츠가 본질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사회학자 해리 에드워드(Harry Edwards)는 종교의 성자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는 스포츠맨들, 대주교와 코치 및 매니저 그룹, 神들과 스포츠 슈퍼스타, 종교회의와 미국올림픽위원회와 같은 스포츠관련 기관, 율법학자와 스포츠 방송기자, 하늘나라 왕국을 찾는 사람들과 스포츠 헌신자 및 추종자, 신전과 명예의 전당, 예배하는 집과 경기장, 신앙의 상징과 트로피 등등을 상호 대응 관계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유사성의 나열은 좀 지나치거나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어 유사마니아(parallelomania)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적어도 스타디움을 종교적 신성공간으로, 경기를 우리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함축한 의례로 간주하는 관점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스포츠 스타를 종교적 성자로 보는 시각도 보편화되어 있다. 그들이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수행하는 훈련은 종교적 ‘자기부인’(self denial)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승부의 세계에서 탁월함을 보여준 슈퍼히어로의 삶은 이미 하나의 본보기가 되면서 그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열광하는 많은 추종자, 말하자면 신도들을 거느리게 된다는 것이다. 스포츠 마니아에게 종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가 아닌, 야구, 축구, 농구이다. 그들은 삶의 의미와 방향, 방법을 제도종교가 아닌 스포츠로부터 부여받는다. 무엇보다 종교와 스포츠는 의례와 경기에서 창출되는 감흥을 토대로 해서 국민과 사회를 통합시키는 뼈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포츠와 종교의 거리를 보여주는 요인들도 상당히 많다. 골프 황제로 불리는 타이거 우즈의 도덕적 타락은 성자로 불리기에는 스포츠 스타의 허상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스포츠 팬들의 변덕도 눈여겨 볼만 하다. 2002년 때의 슈퍼스타의 하나였던 한 한국 선수는 남아공 월드컵 한국과 나이지리아전에서 상대방 팀에게 페널티 킥을 허용한 실수 때문에 국내 팬들의 분노와 조롱을 받았다. 경기장 내에서 선수간, 또는 관중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포츠 종교’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 역시 종교적 특성으로 파악한다. 모든 종교가 도덕적 가치를 고양하는 것은 아니며,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바로 그를 추종하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스포츠 행사는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더욱 다채로워지고, 스포츠 마니아들은 수적으로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생과 사, 인간의 운명에 관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으며, 월드컵 때 느꼈던 행복감도 얼마 후면 그때 참 ‘행복했었지’라는 과거의 희미한 추억으로 남게 될 뿐이다. 과거 스포츠 스타들 중 여전히 종교적 성자처럼 추종 받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스포츠는 종교의 본질이나 기능 중 일부를 담당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종교 자체를 대체하는 기능적 등가물에는 이르지 못할 것 같다.

전명수_

고려대 사회학박사,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54mschun@hanmail.net

주요 논문으로 〈정보화사회와 종교문화의 변용〉, 〈한국의 경제발전과 개신교의 역할에 관한 고찰〉등이 있고,

저서로는 《뉴에이지 운동과 한국의 대중문화》, 《한국의 종교와 사회운동》(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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