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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22호-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이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6. 16:12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2010.9.7


이상적인 자연현상 또는 인위적인 사고로 인하여 발생하는 물적 인적 피해를 재난이라고 한다. 과거 재난은 그것의 발생의 원인에서부터 치유에 이르기까지 자연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지만 결코 사회문화의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현상이다. 재난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 대응과 감응의 결과물이자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재난에 대한 인간의 대응을 대개 과학과 기술의 측면에서 고찰해온 반면 그에 대한 종교적인 대응은 주로 미신으로 간주하여 학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난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반응은 종교적 측면을 벗어나 이해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창비, 2009)는 조선시대 국가 의례를 ‘재난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한 연구서이다.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물리치기 위한 각종 의례를 기양의례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기양의례 변화를 기양의례의 유교화(儒敎化)로 간주하고 이를 기양의례의 관권화(官權化)로 재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에서 거행한 기우제(祈雨祭)와 여제(祭)를 중심으로 기양의례의 실행과 그에 따른 논의를 고찰하였다.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조선시대 국가 사전(祀典)의 이념과 재난의 현실이 빚어내는 갈등과 융합이다. 나라에서 길이 섬기고 기념할 대상과 그 방식을 결정하는 ‘사전’은 유교 이념을 전제로 한 규범적인 제사 체계이다. 이런 규범성 속에서 기양의례가 어떻게 정착되는지, 그리고 재난의 상황이 이 규범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우제에서 용신(龍神)의 등장, 여제에서 원혼(魂)의 수용 등이 이러한 변용의 유산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이고 다이나믹하게 보여주는 의례 요소가 ‘공간’이었다. 이 책에서는 단묘(壇廟)의 구체적인 구조보다 특정한 공간이 제장(祭場)으로 형성되는 계기와 그 의미를 주로 다루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영험처(靈驗處), 전몰처(戰歿處), 남교(南郊) 등이 있다. 이러한 제장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조선시대 새로운 신을 찾는 것은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은 이미 존재하였던 국가의 공식적인 단묘와 대비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였던 문화요소였다. 조선 재난에 대한 의례적 대응은 결국 위 세 가지 공간의 조성으로 드러났는데, 여기에는 민의 종교적 감수성과 국왕의 정치적 행보가 결합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유교 기양의례가 신의 영험성이 아니라 국왕의 사회적 권위에 기초하여 기양의 효과를 창출하였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기양 의례를 통한 힘의 발현이 신들의 신화적 사건의 재연보다 국왕으로 표상되는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사회적 관계의 재정립을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근대 이후 농경사회에서 벗어나면서 자연과의 직접적인 대면 역시 줄어들었다. 아울러 기양의례 역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재난은 종류를 달리하면서 늘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재난은 인명과 재산을 빼앗고 그 자리에 아픔과 절망을 남긴다. 기양의례는 이러한 아픔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이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조선시대 기양의례를 통해 절망을 표현하고 기대를 놓지 않는 삶의 편린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뉴스레터 편집자의 요청에 따라 <<조선시대 재난과 기양의례>>의 서문을 토대로 필자가 가필 수정한 것이다.

이욱_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leewk99@paran.com

주요 논문으로 <대한제국기 환구제에 관한 연구>, <조선후기 전쟁의 기억과 대보단 제향> 등이 있고,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한국종교교단연구 IV>>(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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