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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시스템'으로 일본신도 읽기

2010.8.17


통상 신도(神道) 하면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 일본만의 순수한 전통이라고 말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학자들뿐만 아니라 서구의 일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해가 하나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영어권에서 나온 수많은 세계종교사 책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신도를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 신도라는 일본 고유의 순수한 전통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본질에 있어 변함이 없이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져 내려왔으며 그것이 지금도 일본정신의 토대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신도야말로 곧 일본전통=일본정신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본 신도의 역사를 ‘종교시스템으로서의 신도’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신도, 일본태생의 종교시스템>>(이노우에 준코 편, 제이앤씨, 2010)을 번역하여 한국의 학계와 일반독자들에게 소개할 필요성을 느낀 역자의 관심은 바로 이런 물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신도를 ‘종교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종교제작자(교조, 성직자 등)와 종교사용자(신자)로 구성된 <주체>, 하드웨어 측면(종교시설, 성지 등)과 소프트웨어 측면(종교제도, 성지순례 루트 등)으로 이루어진 <회로>, 그리고 교의와 의례 및 수행법 등 해당 종교가 전하는 메시지의 총체를 가리키는 <정보>의 세 가지 요소로 종교사를 서술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회로>라든가 <정보> 같은 용어 자체부터 종래 서구 종교학자들이 제시해 온 여러 분석틀과는 무언가 좀 다르고 신선한 느낌을 던져 주는 듯하다. 물론 전체 사회의 구조적 특질 및 그 변화과정과의 관계에서 종교사의 전개를 이해하자는 그 근본취지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것으로 다가설 만하다.

나아가 우리가 좀 더 주목할 부분은 ‘종교시스템으로서의 신도’ 역사에 대한 접근이 유기체 모델이 아닌 생태계 모델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입장은 신도라는 것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만 고유한 어떤 불변적이고 본질적인 특징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도를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종교시스템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일본 역사상 신도라고 부를만한 어떤 최소한의 연속성(神祇信仰의 요소)이 존재한다는 점까지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도의 역사에 있어 이런 신기신앙의 구체적인 표출이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는 사실의 확인에 있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다양성을 포착하는 한편 획일적인 서술을 견제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론이 곧 ‘종교시스템’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가령 이런 관점에 의하면, 상설 신전 등 건물을 갖춘 신사의 성립을 관료제와 부계제를 수반하는 율령제가 확립되고 우지가미(氏神) 제사가 출현한 8세기 중엽 이후부터 보아야 하며, 마찬가지로 율령제하에 고대 신기제도가 확립된 10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신도’와 관련된 명확한 종교시스템을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기제도의 확립 이전에는 종교시스템을 구성하는 삼요소 즉 <주체> <회로> <정보>의 형태 및 내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도의 기원과 전개과정은 매우 다양한 원천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일본 신도의 형성은 한반도 및 대륙의 샤머니즘, 조상숭배, 도교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흔히 말해지듯이 결코 자연발생적이지 않고 오히려 선택적, 조작적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야마토 조정이 대륙 왕권사상의 영향하에서 태양숭배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거기에 아마쓰가미(天神) 사상을 결부시켜 만들어낸 것이 다름 아닌 신도라는 말이다. 한편 신도의 기본적 특성으로 흔히 거론되는 다신교적, 애니미즘적 형태는 사실상 거의 모든 종교의 원초적 형태이며 결코 일본만의 특징은 아니다. 특히 신도는 음양오행설, 신령숭배, 신들림, 점, 기도, 탁선, 다신숭배, 신크레티즘 등에 있어 동아시아 민속종교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불습합(神佛習合)의 결과로 오늘날의 신도의례와 도덕에는 불교에서 유래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종교시스템’의 관점에서의 신도사 서술이 던져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신도란 결코 “초역사적이고 불변적인 일본인의 기층신앙이 아니”라는 통찰력에 있다고 보여진다. 거기서 신도를 “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이라고 말할 때, 이는 결코 신도가 순수하게 일본적인, 일본만의 고유한 종교임을 의도하는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일본열도 내외의 다양한 신앙전통과 문화적 요소들을 수합하여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 바로 신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따름이다. 어쨌거나 신도사는 차치하고라도 ‘종교시스템’이라는 일본 종교학자들의 새로운 개념틀 시도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자극이 혹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다.

*이 글은 뉴스레터 편집자의 요청에 따라 <<신도, 일본태생의 종교시스템>>의 역자 서문을 토대로 가필 수정한 것이다.

박규태_

본 연구소 편집위원장,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부교수 chat0113@hanmir.com

주요저서로 <<일본정신의 풍경>>,<<종교와 역사>>,<<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종교와 사상의 깊이에서 본 일본문화

론>> 등이 있고, <<일본사상사>>,<<국화와 칼>>, <<신도>>, <<세계종교사상사3>>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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