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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要注意)! 신비주의
2010.3.30
요즘 역주행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을 정치 탓으로 돌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말이 지닌 과거 지향적 방향 때문이다. 서로를 과거에다 비끌어매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한다. 나는 이 역주행의 긴장감을 종교/학에서 “신비주의”(Mysticism)란 말이 나올 때마다 느끼게 된다. 나는 이 말에 불만이 많다. 마치 내 귀중 한 것을 남의 값싼 물건과 뒤섞어버린 느낌, 그리고 내가 저축해 놓은 것을 인출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상실감을 갖게 한다. 아무쪼록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느낌이기를 바란다.
한때 종교/학에서 신비주의라는 말이 좋은 의도로 사용되었던 적도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들이 서로 포용하고, 각각의 차이를 없앨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은 용광로 같았다. 마이스터 에카르트, 샹카라, 그리고 불교의 선사들의 체험어린 말을 들으면, 아, 얼마나 멋지고 고양된 분위기에 빠지는가! 나 역시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이 무척 나이브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에는 정치(政治)성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고인이 된 나의 스승(이기영)이 읽어보라며 나에게 건네 준 책이 있었다. <<La Mystique et les mystiques>>
란 책이었다. 직역하면 “신비와 신비들”이라는 제목이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 해석하면 “위대한 신비”와 여타의 “자질구레한 신비들”로 뜻매김할 수 있는 제목이었다. 1970년대에 나온 책이다. 서문을 쓴 사람은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그는 가톨릭 신부로서 서구가 불교를 접한 것을 정신사의 전환으로까지 상찬한 인도학, 불교학의 석학이다. 필자로는 이 분 이외에 여러 종교전통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여기서 대문자로 표시된 신비는 기독교의 성(聖)삼위일체의 신비다. 반면 소문자로 표시된 신비는 요즈음도 불교계의 중심화제로 되어 있는 돈오점수 등 동양종교의 체험 세계를 말하고 있다. 이 제목은 암암리에 모든 종교가 기독교로 환원되리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집필자들과 서문을 쓴 사람이 유별난 기독교 편향주의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신비”와 “여타의 신비들”이란 제목을 창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신비주의라는 용어는 여전히 종교학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말은 동양의 종교를 대변하는 편리한 총칭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신비/주의 속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이루고, 동서종교의 대립과 차이를 해소할 실마리도 찾으려한다. 그런데 이 말은 기독교 전통 속에서 마저 변방에 위치해 있다. 영지주의(Gnosticism)가 기독교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주류에 속해 본 적이 없고 철저한 비주류 즉 이단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거스틴과 플로티누스는 영지주의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지주의를 품은 마니교를 비판하는 입장도 개진했다. 이들을 영지주의와 관련시키든 안하던, 신비주의의 기독교적 주변성이며 부정적 이미지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신비주의를 동양종교의 특성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런 맥락에서 즐겨 사용한다면 동서 비교론에서도 상당히 밑지는 거래일 수밖에 없다. 합리적 이성이나, 논리의 끝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 너머의 것을 신비/주의라 한다면, 우리 이성의 한계이거나 오히려 서구 중심주의의 한계를 인식하는 척도로 삼아야 될 듯싶다. 프리츠 슈탈(Fritz Staal)같은 인도학자는 신비/주의에 대한 논의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양비(兩非)이거나 즉비(卽非)가 더 이상 신비의 세계가 아닌 논증방식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신비/주의를 통해 무엇이 해결될 것을 기대하고, 그 영역 속으로 무작정 환원(reduction)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신비/주의란 말은 종교학에서 역주행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새 강좌 시리즈의 하나로 서구 신비주의를 첫 강좌에 넣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불필요한 긴장을 했다. 불필요한 긴장이었기를 바란다.
이민용_
영남대학교 minyonglee@hotmail.com
주요 논문으로 <불교학 연구의 문화 배경에 대한 성찰:구미 불교학 연구 동향>,<학문의 이종교배>등이 있고,역서로《성스러움
의 해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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