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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 피정의 집에서‘십자가 고난 길’을 체험하다

2010.3.9



지난 2월 27일 연구소는 제1차 유교의 소수서원과 제2차 불교의 대흥사에 이어 제3차 종교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종교문화탐방은 일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감성을 함양하기 위해 시행하는 체험프로그램이다. 이번 탐방에는 연구소 회원 13여명이 강원도 인제에 있는 ‘천주교 천주섭리 수녀회’의 ‘다물 피정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 막달라 수녀님으로부터 피정 지도를 받았으며, 박문수 선생(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의 ‘한국 천주교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한 대중강좌를 듣고 토론을 하였다.

피정지도에서 수녀님은 피정의 개념부터 소개하였다. 피정이란 기도와 묵상을 중심으로 믿음의 깊이를 견고히 하는 것이라며, 동 수녀회 신앙 초보자로서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만 소개해주었다. 먼저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의 종류를 살펴보고, 십자가를 진 예수고난의 길을 체험한후 기도의 중심인 묵상기도를 체험해보기로 하였다. 수녀님은 기도를 내용과 형식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며 먼저 내용에서는 청원기도, 탄원기도, 통회기도, 감사기도, 흠숭기도 등으로 구분하고, 형식에서는 각종 기도서에 따른 연경기도, 성경의 내용에 따른 묵상기도, 절박하게 필요한 자유기도인 화살기도, 하느님과 직접 대면(직관)하는 관상기도 등으로 구분하여 친절한 설명을 하였다.

다음은 십자가의 길을 체험하는 순서였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중요한 장면을 14개처로 나누고, 그 각 장면마다 관련 묵상과 기도, 찬양을 드리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음, 십자가를 지심,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성모님을 만나심, 시몬이 십자가를 짐, 베로이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두 번째 넘어지심,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세 번째 넘어지심, 옷 벗김을 당하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시신을 내리심, 무덤에 묻히심, 부활하심 이다. 우리는 각처에서 관련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 경배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며 야외 산기슭 길을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1시간정도를 경건하게 순례하였다.

그 다음 우리는 묵상기도를 실습했는데 신약성서의 산상수훈을 읽고 관련 내용 중에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과 연결하여 깊이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산상수훈을 읽고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누구인지, 온유한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나라가 왜 그들의 것인지 등을 15분간 기도 자세로 곰곰이 묵상하고 그 묵상의 체험을 서로 소개하였다.

마지막으로 대중강좌를 맡은 박 부원장은 종교사를 보면 종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큰 위기가 배출된다고 하면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한국 천주교가 크게 성장하고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말로 한국 가톨릭의 위기담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하였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발생한 위기담론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였다. 하나는 예비자의 입교율 둔화와 기존신자의 냉담율 증가를 들며 한국교회가 장래 서구교회와 같이 공동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였고, 또 하나는 개신교와 비슷하게 중간층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인하여 천주교의 진보적 성향이 퇴색되고 교회문화가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보수적 성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80년대 이후 지속된 양적인 성장은 결국 교구 성직자인 사제 수만 증가시켜 수도회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평신도의 공공 영역까지도 침범하고 있다고 한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교회에 성직자의 헤게모니만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성사중심의 교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을 그는 크게 우려하였다.

최근 교회는 정치참여와 같은 국가권력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고 1990년대 이후 생명윤리나 환경문제와 같은 영역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회복지 영역도 양적으로는 크게 확대되었으나 대체로 국가의 사회복지사업을 위탁받아 하는 것이라서 가톨릭사회복지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도 본래의 봉사정신이 퇴색되고 있으며, 문화예술분야에서도 문화예술 활동 양은 많아졌으나 가톨릭 지성인으로서 역할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하였다. 또한 종교 간의 대화활동이 뜸해지고 필요한 영역에 시민단체나 이웃종교와의 연대행사 위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종교경험측면에서는 평신도의 성경 탐구와 영성 생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활동의 장인 심신단체들의 활동이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사의 참여율과 공동체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약회된 천주교의 종교성은 다른 종교의 외적인 가치나 이웃 종교의 가치를 손쉽게 받아들이는 토양이 되고 있어 한국 천주교가 문화에 대한 관용은 좋은데, 자기 정체성 없이 진행될 가능성을 위기라고 평가하고, 앞으로 한국 천주교는 청빈한 교회로서의 도덕적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 시민사회로부터 비판받는 종교권력의 문제, 성윤리의 변화에 따른 성폭력 문제, 청소년층의 축소와 노인층의 증가에 따른 교회대응문제 등을 고려한 향후 교회 쇄신의 문제들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한편 1990년대 중반이후 천주교 여러 수도회들이 이같은 피정의 집을 만들기 시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70여개나 된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피정은 단체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피정을 하려는 천주교 신자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종교계에 불어 닥친 영성수련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동안 피정의 집을 수도회에서 많이 운영해왔으나 최근에는 각 교구에서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기도와 묵상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수사나 수녀인 수도자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모든 참석자들은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는 모두 만족하는 환한 얼굴로 오늘 많은 은혜를 받았다며 즐거워하였다. 마침 교회 절기로 사순절이고 우리 민족절기로 정월 대보름이라 고난의 길을 체험하고 수녀원에서 보름 잡곡밥을 지어주어서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하였다. 오늘 하느님께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지 하루가 남은 보름달이 대보름 보름달 이상으로 유난히 밝은 빛을 밝혔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seyoyun@yahoo.co.kr


주요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최근 20년간 한국종교문화변동〉,〈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

방안〉등이 있고, 저서로《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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