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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98호-순례와 일본의 불교문화(허남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0. 15:04

순례와 일본의 불교문화

2010.3.23



오래 전 일본불교를 공부하면서 맨 처음에 부닥친 문제는 저것도 불교야 하는 것이었다. 불교는 불교 같은데 도저히 불교 같지 않아서 많은 애를 먹은 것이 일본의 불교였다. 내가 알고 있던 불교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뿌리는 같은데 참으로 다르게 전개된 것은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의 불교문화였고, 그 다르게 생긴 것이 저것이 과연 불교일까 하는 의문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질문의 방향이 일방통행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을 알기 이전에 굳어진 불교에 대한 나 자신의 기존의 이해, 기존의 개념이 요지부동의 전제가 되어 그 위에서 일본의 불교문화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갖고 있었던 불교이해란 한국의 불교문화에 뿌리를 둔 불교 이해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의 불교전통에서 보면 일본불교의 많은 부분은 불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방향을 반대로 하여, 일본불교의 입장에서 한국의 불교문화를 보면 그 모습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상하고 신기한 것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 중에 한국의 산사를 찾아보고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눈에 익지 않고 정서에 녹아있지 않은 현상은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시각은 상대적인 것이고, 이해의 폭은 그 상대적인 시각의 질곡에 갇히기 쉽다.

나의 일본불교 연구의 출발점에는 한국불교라는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행운이었다.한국불교에 대한 정서적 친밀감이 있었기에 위화감의 렌즈를 통해 일본불교의 특징을 보다 잘 볼 수 있었고,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경험이 쌓여지면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한국불교의 한국적 특징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교통이 양방향이 되면서, 불교문화에 대한 연구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 되어갔다.

요즈음은 한국, 일본을 안가리고 기회만 있으면 불교사원을 찾아 나선다.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아하 이것을 연구하면 재미있겠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많이 생겼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불교에 있어서의 불상과 불교사원의 건축물이다. 일본의 불교는 어떤 면에서는 서로 각기 다른 불상으로 현현되는 불교적 신들에 대한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에는 절도 많지만, 각기 개별성을 갖는 불상 또한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전국의 사원의 수가 10만에 이른다 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원은 자기 고유의 불교적 신들을 갖고 있고, 그 신들은 각기 역사와 형태를 달리하는 온갖 불상에 의해 표현된다.

많은 불상은 그를 안치하는 건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불상과 이를 안치하는 건물은 하나하나 각기 나름의 장구한 역사가 있으며,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 뒤에는 개성있는 버팀목 집단이 여럿 있다. 옛날에 특정한 불상을 만들었다는 승려 혹은 불상에 대한 전설로부터, 불상을 안치한 건물을 짓고 이를 대대로 수리 보전해온 목수집단, 그리고 그 불상과 건물에 애착을 갖고 신앙심을 발휘해 온 일반인들의 집단이 있다. 나아가 신앙집단의 뒤에는 이를 잉태한 정치경제 구조가 있으며, 사회문화 전통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 모든 구성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빚어내는 종교문화는 일본적일 수 밖에 없다. 신앙집단, 사회정치 구조에까지 가기에 앞서 불상과 그 불상을 안치하는 건물이 걸어 온 발자취만 해도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이다. 불상과 건물로 대표되는 불교사원은 교토에만 국한하여 보아도 13곳이나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증을 받고 세계각지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의 불교는 전국을 통틀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증받은 곳이 석굴암과 불국사, 그리고 해인사 장경판전의 두 곳에 불과함에 비교한다면, 일본은 가히 불상과 건물에 심혈을 기울여온 불교문화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상, 불전에 흥미를 갖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이 관서지방의 33곳의 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불교사원들을 순차적으로 일주하는 순례신앙이다. 지금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예전에는 그리 쉬운 순례가 아니었다. 전부 돌아야 하는 거리가 약 1000킬로였으니 말이다. 융성했던 서른 셋의 관음신 순례에 얽힌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근세일본에 있어서의 불교순례의 종교사회사라 할까 그것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테마이다.


허남린_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 namlin@nichibun.ac.jp

주요 논문으로 <종교와 전쟁: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일본에 있어서 불교와 불교학의 근대화>등이 있고,저서로

《Death and Social Order in Tokugawa Japan: Buddhism, Anti-Christianity, and the Danka System》,《日本人の

宗敎と庶民信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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