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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0호-죽음을 사고 파는 장사꾼들(박승옥)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6:57

죽음을 사고 파는 장사꾼들

2009.4.21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끝없이 이어지던 만장 행렬이 동네를 길게 휘감고 돈 다음 언덕을 넘어 이웃 마을까지 갔다가 이윽고 앞산으로 가던, 그 길고 긴 상여 길이.

할아버지의 죽음은 갑자기 며칠간의 시끌벅적한 잔치를 몰고 왔다. 아버지와 삼촌은 삼베옷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어이고 아이고 제법 음율있는 곡을 해댔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사람들은 화투판을 벌였다. 부엌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연신 전이며 찌개를 끓여 문상객들에게 날랐다. 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자체의 의미는 모른 채 그냥 사람들이 많은 것이 좋아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바빴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먼 친척도 오고 인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밤도 대낮처럼 환했다. 여기조기 호롱불이 달리고 화톳불이 지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새웠다. 상여가 나가면서 어화 어화 하는 상두꾼의 그 상여소리는 지금도 그 가락이 기억 저 깊은 곳에 남아 있을 정도로 참으로 구성지고 재미있었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한 편의 노래 속에 담겨 있었고 그렇게 길게 이어진 장례 행렬 속에 담겨져 있었다.

그랬다. 농촌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인간의 죽음은 마을의 잔치이자 한 인간의 삶을 존엄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는 산 자들의 의식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마을에서 먹을 것과 장사 의식에 필요한 모든 것이 조달되었다. 어떤 이웃은 쌀을, 어떤 이웃은 호박을, 어떤 이웃은 배추를 가져왔다. 가난한 이웃은 그냥 맨몸의 일꾼으로 와서 일을 도왔다. 비록 규모는 작을지라도 망자에게 최대한의 예를 다 갖추어 보내는 것이 인정이고 관습이었다.

그랬던 인간의 죽음이 오늘날은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의 죽음은 이제 돈이다. 이제 사람들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 병원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계산한다. 장례 사업은 병원의 가장 큰 수익사업이다.

우리는 누가 죽었다고 말하면 부주돈 액수부터 계산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부주돈을 내고 이름을 적고 일회용 음식을 먹고 그리고 끝이다. 망자에 대한 예란 그저 형식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휴지보다 못한 소모품으로 전락한 현대 사회에서 죽음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도 많은 인간의 죽음을 그저 일회용 컵 버리듯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는 중이다.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철저히 파괴했다. 공동체가 없는 사회에서 죽음의 문화는 그저 이윤이 많이 나는 시장일 뿐이다. 여기서 사는 우리는 사막에서 살고 있는 모래알들이다. 그냥 모래알이 아니라 현대 산업문명의 풍요로움에 취해 덕지덕지 무엇인가 잔뜩 움켜쥐고 있는 배불뚝이 모래알들이다.

지금 다단계 사기 사업인 상조사업이 전국에서 우후죽순으로 창궐하고 있다. 텔레비전 광고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상조회사들이 자본금도 마이너스이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 이런 죽음의 문화를 바꿀 때가 왔다. 나 자신부터 존엄하게 죽고 싶다면 장례의 형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공동체의 재형성이고, 공동체 사회의 재건이다. 마침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가 이런 죽음문화를 바꾸는 상조공제회 설립 운동을 벌이겠다고 4월 28일 화요일, 낮 2시부터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경제에서 공제로: 한국 상조사업의 현황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 자리는 공동체 재건운동의 다짐 자리이자 자본주의 사회의 죽음 문화를 성찰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화창한 봄날, 나 자신의 죽음부터 죽음과 공동체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_박승옥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 대표.
1982년 돌베개 출판사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대표,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2005년부터는‘시민발전’대표를 맡아 농업 및 에너지의 자립·자치와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풀뿌리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2007년에는 『잔치가 끝나면 무엇으로 먹고 살까』를 출간하며 한국사회의 환경과 생태적 전환을 위한 고찰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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