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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9호-정말로 바꾸어야 할 것(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6:55

정말로 바꾸어야 할 것



*이글은 <종교문화비평>15호(3월31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

2009.4.14



얼마 전까지 “바꾸어야 산다”라는 구호가 많이 나돌았다. 윗자리에 앉은 분들은 변화 경영이니 뭐니 하면서 바꾸어야 한다고 외치고, 아랫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적자생존”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당연한 추세라고 여기게 되었다. IMF 사태는 둔감한 자들도 그런 구호를 피부로 느끼게 하였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더욱 악쓰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구호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변화의 전도사라고 해도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상황은 변화의 여부를 문제 삼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조건 바꿔라” 혹은 “송두리째 바꿔라”라는 구호는 미리 전제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 식대로”라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란 누구인가? 물론 바꾸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쪽의 “우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강요하고 있는 쪽의 “우리”이다. 그 “우리”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을 포함한 서구이다. 너희들의 삶의 방식은 이제 파탄 났으니, 미국식대로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동구권과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이라는 파천황의 사태 이후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최종적 역사의 진리라는 형태를 취하였다. 대부분 어쩔 수 없다며, 혹은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점차 그 위호 세력은 정치적으로 득세하였고, 급기야 이곳에도 이명박 정권이 그 진정한 후계자를 자처하며 등장했다.

그런데 그런 위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가 모방해야 할 모델이라는 미국에서 금융위기라는 폭탄이 터져서 세계가 대공황을 능가하는 소용돌이 속에 허덕이게 되면서 그들은 그야말로 초라한 꼴이 된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뿌리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태까지 의심치 않던 관점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근본적인 궤도 수정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말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무조건 바꾸어야 한다”는 그 생각 자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라고 하는지에 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공부가 필요한 것이라면 바로 이런 작업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학문의 주체성도 거론할 수 있다.

이번 호의 특집은 <최근 한국사회의 종교, 정치, 권력>이다.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십년”을 보상하겠다고 외치면서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과 연합할 때, 이 주제는 조만간 논의 되어야 할 것이었다. 한국의 원조 극우파와 좌익출신의 신우파가 결합한 모습은 한국현대사의 흥미로운 국면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그 배후에 개신교의 체험적 반공주의가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종교인에게 정교분리의 원칙을 들이대며 힐난하던 그들이 노골적으로 정치활동에 뛰어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정치세력화 하려는 모습은 종교학자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특집은 각각 민주화 이후의 종교의 사회 세력화 유형과 전망, 개신교 뉴라이트의 세계관, 종교정당 출현의 의미, 그리고 종교권력화에 대한 저항과 견제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이 특집은 세속화의 전형적 명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성격을 잘 보여줄 것이다.

5편의 연구 논문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의례의 문제를 다룬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중국 고대의 황제가 행한 봉선 의례의 자료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탐색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만동묘와 대보단을 둘러싸고 전개된 유교 의례와 권력의 문제를 분석한 글이다. 모두 고정된 의례보다는 의례로 만들어지는 “의례화”의 과정과 그 정치적 의미를 연구의 초점으로 삼고 있다.

두 번째는 임신중절에 관해 각각 한국의 개신교, 가톨릭, 불교 교단이 취하는 태도를 분석하고, 평가한 논문으로 생명윤리담론의 성격을 탐구하고 있다. 임신중절은 생노병사의 핵심 주제 가운데 두 가지가 중첩되어 있는 만큼 종교비평의 측면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세 번째는 최근의 종교이론을 설명하고, 평가한 논문 두 편이다. 하나는 근래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리차드 도킨스의 종교이론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인류학자 댄 스퍼버의 종교이론이 지니는 의미를 다루고 있다. 진화생물학자 도킨스가 무신론적 관점에서 전개하는 종교이론과 인지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인지를 중심으로 삼는 스퍼버의 종교이론은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우리를 사색하도록 이끌고 있다.

종교기행은 두 편으로, 각각 힌두교의 성지인 바나라시를 집중적으로 다룬 글과 네팔과 인도를 폭넓게 살펴보고 쓴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인도의 종교문화는 언제 보더라도 그 다양함과 깊이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두 편의 기행문에는 그 느낌의 흔적이 잘 묻어나있다. 숲처럼 빽빽한 “설(說)”의 무더기에서 자 롭게 거닐며 놀라는 설림의 이번호 주인공은 정진홍 선생님이다. 설림의 취지에 잘 맞는 글이다. 시원하고 흥겹다. 연륜을 쌓아 우리 모두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번호의 주제서평은 필자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실리지 못하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_장석만

skmjang@gmail.com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종교문화비평 편집장.

주요 논문으로 <민족과 인종의 경계선:최남선의 자타인식>, <인권담론의 성격과 종교적 연관성>, <한국 신화 담론의 등장>등이 있고, 저서로 ≪종교 다시읽기≫(공저), ≪한국 근대성 연구의 길을 묻는다≫(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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