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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1호-행복지수 유감(송현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7:01

행복지수 유감

2009.4.28


얼마 전 대학교 신입생들을 위한 수업시간. 나는 여느 때처럼 “대학에 왔다고 긴장을 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사회에 나가서 성공할 수 있다”는 진부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교실 안에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심전심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 순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아이들의 얼굴에 당혹스런 빛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눈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또?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노력해서 바로 여기에 와있는데 더 어쩌라고? 도대체 언제가 끝이야?...”

지난 3∼4월 달에도 몇 명의 중고생들이 성적을 비관해서 목숨을 끊었다. 먼 곳의 일이 아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바로 가까이 보이는 주변 학교에서도 실제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 한 통계에 따르면 자살충동을 느끼는 중고생들이 22%에 이른다고 한다.(인터넷녹두신문, 2009.01.28)

바로 이것이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까지 감탄하게 한 한국의 교육현실이다. 오늘날 대부분 고등학교 학생들은 새벽 6시 반에 나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온다. 어디 그뿐인가? 집에서 기다리던 과외선생과 공부를 더하거나 밤 11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1-2시에 끝나는 학원으로 직행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지금 한국의 사회는 어린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라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학교 밖의 현실사회 또한 같은 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무엇인가를 성취하라고, 지금 너 자신은 부족하니까 더 노력하라고 말한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도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경계하고 미래에 대비하라고 애정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그 책속의 쥐와 꼬마인간들은 쉴 새 없이 새로운 치즈를 찾아다니며 늘 동분서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이 치즈를 다 차지할 것이며, 자신이 찾아놓았다고 믿었던 과거의 치즈도 모두 부패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세상의 존재근거는 위기와 불안이다. 또 이 책에 의하면 행복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

“아니, 그래 됐어. 너희들은 이제 그만 노력해도 돼. 나에게는 너희들 그 자체가 지금 너무 예쁘고 소중해. 아마 너희들 부모님도 나처럼 생각할거야. 너희들은 지금 그 자체로 너무 완벽해! 이제 좀 쉬렴.”

그 때 나는 내 안에서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대학 신입생들에게 차마 소리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사회에 나가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 현실인데, 내가 그 현실을 잊어버리게 해서는 책임을 못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 때 한 노래구절이 생각났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이 노래는 물론 기독교 베스트 가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힘은 한 종교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진실에 있을 것이다. 이 노래가 주는 감동은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 당신 존재의 사실만으로 정말 기쁘다’고 말하는 데 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서, 혹은 무엇을 성취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 소중하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아서도, 돈을 많이 벌어서도, 특별히 F4 꽃미남이어서도 아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얼마나 상대방으로부터 이런 조건 없는 긍정에 목말라 하고 있는가?

얼마 전〈매경이코노미〉는 지령 1500호 발간기념으로 “행복과 경제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설문 중 하나가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응답을 보면 한국인이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 1순위로 꼽은 것은 ‘경제적 안정’이었으며, 다음이 개인의 신체적 건강, 가족의 화목 순이었다. 그런데 질문은 보기 문항 중 세 가지를 고르라는 것이어서, 1위부터 3위까지 응답을 모두 합쳤을 경우 무려 83%의 사람이 행복을 결정하는 제1요소로 경제적 안정을 꼽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종교활동’의 항목은 6%로 가장 응답률이 낮았다.(매경이코노미, 2009.4.8.)

한국의 종교인구는 전체 인구의 50%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그에 비해 종교를 통해 얻는 메시지는 우리 일상적 삶의 행복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다음과 같은 《숫타니파타》의 경구를 음미해보면 어떨까?

“살아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 ... 부디 행복하라.” (《숫타니파타》)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교수. notrefenetre@hanmail.net
저서로 《세계종교사입문》(공저),〈현대한국불교 예불의 성격에 관한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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