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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5호-성탄절 유감(遺憾)(신재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5:04

성탄절 유감(遺憾)

2008.12.30



성탄절 저녁 지리산 산자락에 있었습니다. 겨울산은 해가 빨리 떨어집니다. 사방이 어둑어둑 해지면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빨간 십자가였습니다. 성탄 축하 예배의 여운이 남아있었지만, 십자가 왠지 생경하고 도발적으로 보였습니다. 화엄사와 쌍계사, 천은사를 품고 있는 지리산에서 십자가를 본 까닭이 아닙니다. 그 빨간 십자가에 가슴이 무거웠던 것은, 또 다른 십자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2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정말 오랜만에 서울 시청 앞을 지났습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정말 화려하데요. 누가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인지, 서울시인지. 공들여 세운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트리를 올려다보다 무엇인가 가슴에 턱 걸렸습니다. 꼭대기에는 하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하얀색 십자가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어울리지 않는 크기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십자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늘 보아온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별이 달려 있었습니다. 주일날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본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도 별이 달려 있었습니다. 예년에도 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별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의 평소 행태로 보아 스스로 나서서 바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의지와 입김이 들어간 것이겠지요. 다소 큰 하얀색 십자가는 한국교회의 자의식과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서 씁쓸하고 답답했습니다.

예수의 생일로 지내는 성탄절, 성서에 날짜도 언급되지 않은 탓인지 정착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기념한 것은 예수의 죽음이었지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탓에 초기 교회에서 성탄절은 주요 축일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성탄절의 탄생에는 로마의 달력과 교회의 제국화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사용한 달력은 율리우스력입니다. 율리우스는 기원전 45년 11월 1일을 율리우스 달력의 기원으로 삼으면서 이전의 모든 달력을 폐지합니다. 이 달력이 16세기 말까지, 심지어 몇몇 나라는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중세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소아시아에는 이 달력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달력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교회의 축일이 이 달력에 따라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확장은 율리우스 달력의 전파를 의미합니다.

당시 교회력의 축일은 율리우스 달력이 정한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절기와 일치합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당시 춘분이었던 3월 25일은 마리아의 수태일이며 예수가 부활한 날, 하지였던 6월 24일은 세례 요한의 출생일, 추분이었던 9월 24일은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세례요한의 출생을 예고한 날, 동지였던 12월 25일은 예수의 출생일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정한 것은 당시 태양숭배의 풍습에 따른 '동지' 축일을 전용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농경신 '사투른(Saturn)'의 제일(祭日)인 12월 21일부터 31일(혹은 12월 24일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 '사투르날리아'라는 큰 축제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 태양이 소생하는 날로 기념했습니다. 또한 이날 12월 25일은 페르시아 종교의 태양신인 미트라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타 종교 전통의 축제일에 예수의 탄생을 결합시켜 성탄절을 기념한 것이지요. 로마 교회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다음 해 336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축하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동방 정교회도 이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기념합니다.

이렇게 정착된 성탄절이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교적' 배경으로 인해서 성탄절을 배격하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후 청교도와 같은 일부 개신교는 성탄절 지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영국 청교도는 정권을 잡은 뒤에 성탄절을 금지시켰고, 미국 청교도들은 이 날을 “교황의 날”로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1659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금지했고 20년 동안 지속되었고, 1870년까지도 12월 25일에 수업을 했습니다.

이런 성탄절 배격과 달리, 이교적 축제인 동지를 예수의 탄생일로 정한 사람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예수의 출생일로 채택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태양숭배일인 일요일(Sund-day)을 그리스도교의 주일로 삼았던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교의 축일 위에 그리스도교를 덧입혀 그리스도교라는 단일 종교체제를 통한 로마 제국의 통일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지리산에서 본 붉은 색 십자가가 생경하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하얀 색 십자가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는 다양한 함의를 지닌 있는 '별'보다는 훨씬 강력한 그리스도교 상징입니다. 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에 이제는 당당히 십자가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성탄절을 제정한 사람들의 자기중심주의를 한층 더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자리 잡은 예수의 생일이 이 땅에서 다시 이교도(?)를 정복하려는 계기로 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 실현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위풍당당함과 군림의 이면에는 하얀 십자가만큼이나 창백한 병자 그림자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재식(호남신학대학교, jshin@htu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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