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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2호-무덤과 사당(박규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4:46

무덤과 사당

2008.12.9



일본 전국의 신사들을 찾아다닌 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현재 약 12만여 개소의 신사가 있다는데, 그 중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명신사나 역사가 오래 된 유서 깊은 신사는 웬만큼 다 돌아본 것 같다. 처음 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단순해 보인다. “일본을 타자로 보기.” 그러니까 내게 일본의 신사는 무척 이국적인 풍경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타자로서의 일본을 연구하기에 적절한 대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신사 연구를 하다 보니 그 신사의 뿌리가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으레 모든 것이 풍화되기 마련이지만, 한반도와 관련된 일본 내 도래계 신사(한반도 도래인이 세웠거나 한국신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들은 고대 헤이안 시대의 국풍(일본적 문화)이라든가 메이지유신의 신불분리정책 및 특히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대부분 일본식으로 변형되거나 형해화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고학적 유물이라든가 신화 혹은 지명이나 제사 신관의 성씨 등에 의해 도래계로 확인 내지 추정되는 신사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미국의 한 신사 연구자는 현재 일본신사의 3분의 2 정도가 한반도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도래계 신사의 존재감을 더해 주는 근거로서 일본에 무수히 산재해 있는 고분들을 들 수 있다. 한반도 도래계로 추정되는 신사들은 원래 고분 위에 세워졌거나 근처에 고분이 있는 경우가 무척 많다. 이런 신사는 고대 한반도에서 시조묘를 제사지내기 위해 세웠던 무덤 위의 사당을 연상케 한다. 가령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 사후 시조묘 위에 사당을 세워 역대 왕들이 매년 제사를 지냈고 후대에 이르러 그 사당을 ‘신궁’이라 불렀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 때의 ‘신궁’이 일본 천황가의 황조신 아마테라스를 제사지내는 이세신궁이라든가 메이지천황을 신으로 제사지내는 메이지신궁 따위의 ‘신궁’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일본의 신사가 보여주는 일본의 얼굴 그 자체일 것이다. 예컨대 우리에게는 근대일본이 새로 창안해 낸 야스쿠니신사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더 시급한 과제임에 분명하다. 요컨대 지금의 일본 그 자체를 알고 싶어서 선택했던 타자의 신사가 나의 의도와는 달리 어느 새인가 도래계 신사라는 옛 자화상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지만, 우리는 모든 자화상이란 결국 넘어서야 할 어떤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자화상 또한 언젠가 무덤에 묻힐 것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세워지면 시간의 흐름은 그 무덤 주인의 이름조차 지워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름에 연연하는 대신, 이제부터는 신사 대신 고분을 찾아 떠나는 여로의 예감으로 여행자의 시간이 채워지게 하자.

박규태(한양대학교 , chat0113@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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