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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1호-신전에 모셔진 인간(이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4:32

신전에 모셔진 인간

2008.12.2



여행을 하다보면 처음 간 곳인데도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것 같아 의아해할 때가 있는 반면 사진이나 책을 통해 익히 아는 것과는 너무나 판이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얼마 전 여행이라기보다 업무상 잠시 스쳐간 미국에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이 있었다. 링컨 기념관이다. 에브라함 링컨은 한국 사람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통나무집, 구렛나루 수염, by the people, 그리고 그의 동상은 어릴 때 익히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아온 것들이고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워싱턴 디시에 도착한 첫 날 밤 동행한 사람의 지인이 데려다 준 링컨 기념관. 나는 높이10미터가 넘어 보이는 파르테논 신전 모형의 이 건물 전체가 링컨 상(像)만을 위한 집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뒤쪽부터 돌아 정문 계단을 오르자 눈 앞에 펼쳐진 6m 높이의 링컨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무지를 탓해야지. 사진 속에서 보아온 링컨상이 이렇게 큰 것이었을 줄이야!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에 세워진 우리나라 세종대왕이나 독서하는 소녀, 이승복 등의 상으로 유추하기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상상력의 한계를 탓하면서 건물 내부 벽면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링컨상 뒷면 벽에는 큼직하게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기념관이 아니라 거대한 신전(temple)이었다. 그 규모에 놀라면서 숭배는 성스러움의 경험이 아니라 기억을 봉헌한 거대한 신전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신전은 정동향이라 아침 해가 뜰 때면 동쪽의 햇살이 링컨의 얼굴에 비춘다고 한다. 그가 바라보는 동쪽에는 워싱턴 기념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고, 그 너머에 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남북으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통일한 대통령은 수십 개 주의 통일과 그들의 정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과객에게 이 웅장한 인물상은 부담스럽고 불편함을 준다. 통나무집 소년이 너무 커져 거인이나 신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런 걸 보면 미국은 모방의 대상 이전에 연구의 대상이다. 마치 이 링컨 기념관이 신전에서 신상을 제거하고 인물상으로 대처한 것처럼 근대 이후 세속 국가는 종교적 내용은 버렸지만 종교가 해오던 형식과 방식은 잘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다문화, 다인종, 다종교 상황아래 통일되고 중심적인 상징과 신화를 생산해야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대통령 기념관은 흥미로운 문화 콘텐츠 중 하나이다. 대통령은 역경의 극복이라는 신화적 플롯에 (정치) 전쟁의 극적 긴장, 타자를 위한 희생정신과 이념이 승리한다는 교훈까지 골고루 갖춘 드라마이다. 내년 1월 20일 링컨 상이 바라보고 있는 내셔널 몰에서 있을 예정인 버락 오바마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드라마를 또 한 번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공간이자 지극히 종교적인 공간, 더욱이 인간의 모습을 이토록 크게 만들어놓은 새로운 문화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그러나 미국에서 돌아와 바쁜 일상에 복귀한 나는 이내 자연과 벗하며 대지에 묻히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인디안의 꿈에 젖어들고 있다.


이욱 (한국학중앙연구원, leewk9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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