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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전통과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발은 언제나 가능할까
2008.6.17
수도권은 물론이고 각 지방에서도 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개발이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대운하 건설 때문에도 그렇고, 총선 때 서울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강북지역 주민들에게 약속한 뉴타운 건설 공약 때문에도 그렇다.
지역 발전이란 명분하에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진행되는 요즘의 개발은 기존의 삶의 조건이나 생활방식 등을 깡그리 무시한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개발론자들에게 한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같은 이른바 \'이전의 것\'들은 전혀 고려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개발논리 밑에 전제된 것은 \'이전의 것\', 즉 \'과거의 부정\'으로,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것들은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마을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전통적인 공동체적 삶의 문화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개발은 기존 자연마을의 경계나 삶의 방식, 자연조건에 대한 고려가 거의 배제된 채로 진행된다. 자연마을의 생활권과 경계를 무시하는 행정구역의 개편과 개발, 이와 함께 추진되는 새로운 도로와 대단위 아파트 단지 등의 조성은 수백 년 내려 온 마을공동체와 문화를 한순간에 지워버린다.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 조성은 지역 삶의 문화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고 이해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외부 이주민들이 다수가 되게 함으로써, 그 지역의 전통문화 유지의 기초인 인적기반을 무너뜨린다. 삶의 성향과 스타일이 다른 다수의 외부 주민이 유입되어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지역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고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3년 전 쯤 수원지역 마을신앙을 현지조사한 적이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전통적인 마을신앙이 유지되고 있는 곳은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개발이 이뤄졌더라도 대단위 아파트 단지나 주택단지가 형성되지 않아서 외부 이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토박이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들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개발이 이른바 ‘전통적인’ 마을 단위의 공동체 문화를 파괴해서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우리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마을 중심의 지역문화는 각각 그 나름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주거양식, 생활방식, 먹거리, 놀이, 음악, 의례생활, 말투 등등에 있어서 각 마을은 독특한 지역색을 지닌 나름의 자족적인 삶의 방식과 문화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기존 생활경계나 삶의 방식, 문화 등에 대한 아무런 배려없이 진행되는 개발은 이러한 자족성과 개성을 지닌 마을단위의 전통적인 지역문화를 손쉽게 허물어버린다. 예컨대 새로 건설된 도로는 사람들을 마을에서 도시로 이동시킨다. 마을단위의 삶을 도시에 종속시켜 나름의 자족적이고 완결된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색을 유지하는 독특한 지역문화를 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전반적으로 문화의 표준화와 획일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연계에서 \'생물종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핵심이듯이,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문화를 위해서도 \'문화의 종 다양성\'유지가 요구된다. 이런 점 에서 지역의 다양한 전통적인 삶과 문화를 파괴하고 어느 지역에서나 천편일률식으로 진행되는 개발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을 내세워 우리 삶의 변화 자체를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행해지는 개발이 한 지역이나 마을의 자연환경, 삶의 모습, 문화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이른바 “친 전통문화, 친 지역문화적”인 개발은 될 수 없는지 안타깝다. 개발로 인해 오랜 시간 의 깊이를 가진 우리의 삶 하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 숨쉬는 그런 삶의 문화는 언제나 가능해 질지,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는다는 요즘에도 왜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무속과 같은 민간신앙이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살아있는 종교, 또 하나의 현재적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용범(한국종교문화연구소연구원, yybhum@kg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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