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6호-종교학의 위기와 인지종교학(이창익)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3. 14:31

종교학의 위기와 인지종교학

2008.6.10

최근 10여 년간 인지종교학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적으로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그러한 관심은 대개 종교학 외부에서 종교학 내부로 스며들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종교 현상이 ‘인간 현상’ 가운데서도 가장 두껍게 ‘신비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현상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종교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방법적 근거를 갖춘다면, 어떤 인간 현상이라도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문적 전망도 이러한 관심의 가속화를 배가 했을 것이다.

또한 종교학 내부에서도 꾸준히 인지과학의 개념과 방법을 통해 종교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종교학 연구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학문적 위기의식’의 결과라고 말 할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해당 학문의 수준이란 그 학문의 중요 개념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노출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인지종교학은 기존의 종교학 이론이 전제하고 있던 모든 중요한 개념들을 하나씩 문제 삼으면서 자신의 학문적 의의를 주장하고 있다. 어쩌면 인지종교학에 의해 중요한 종교학 개념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지종교학은 종교학의 학문적 성숙도에 대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1월에 덴마크 오르후스(Aarhus) 대학에서 ‘종교의 기원, 인지와 문화’(Origins of Religion, Cognition and Culture)라는 주제로 국제인지종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Cognitive Science of Religion, IACSR) 창립 모임이 개최된 이후 인지종교학을 위한 학술모임이 대규모로 조직되고 있다. 2년마다 국제모임을 개최하는 IACSR은 학회의 목적을 ‘자연주의적 종교연구’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종교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인지종교학에 대한 통합적인 이론을 추구해 온 대표적인 학자인 파스칼 보이어(Pascal Boyer)는 자신의 책 『설명되는 종교: 종교적 사유의 진화론적 기원』(Religion Explained: The Evolutionary Origins of Religious Thought)에서 기존에는 ‘신비’(mysteries)로 남아 있던 것들이 이제 서서히 ‘문제’(problems)로 전환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비’와 ‘문제’의 구별은 본래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기술적 용어이다. 실제로 파스칼 보이어는 스스로 인지심리학, 인류학, 언어학,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종교라는 다루기 힘든 ‘신비’를 어렵기는 하지만 다룰 수는 있는 ‘문제’로 치환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지종교학 연구자는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나 다양한 종교현상들을 모든 곳에서 동일한 두뇌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공유한다. 이것은, 조금 덜 물리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마음’(mind)의 기능과 진화를 통해 종교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인지종교학 연구자들은 대부분 종교학이 일정한 이론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인문과학을 표방했던 종교학이 실제로는 인간을 학문의 ‘중심자리’에 놓고 사유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현재 인지종교학이 종교학 일반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지종교학은 종교현상의 중심자리뿐만 아니라, 종교연구의 중심자리에 다시 ‘인간 주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은 ‘인간학으로서의 종교학’의 회복이며, 종교현상을 인간 이해의 자료로 삼으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둘째, 인지종교학은 그 동안 종교학이 제쳐두었던 상식적인 질문을 과감하게 던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 동안 종교학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신비 취향’을 지닌 존재, 즉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라는 것을 비판 없이 전제해 왔다. 그렇다 보니 ‘종교적 인간’이라는 술어가 항상 종교현상을 설명하는 결론이 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만나게 될 때 연구자가 먼저 인간은 본래 종교적이기에 저런 일조차 가능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답이 아니라 물음의 은폐에 불과했다. 인지종교학은 인간이 ‘종교성’을 선험적으로 안고 태어난다는 설명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의 진화론적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험성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자연선택’, ‘적응’, ‘적자생존’ 등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종교 또한 유전자에 새겨진 그러한 선험성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인지종교학에서는 종교가 ‘진화의 필연적 혹은 우연적 산물’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인간 진화의 역사 속에서 종교가 그토록 승승장구하며 살아남았다는 것은, 종교가 그에 해당하는 진화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지종교학은 ‘생물학적 은유’를 과감하게 사용한다.

셋째, 인지종교학은 ‘인지’라는 중간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연구자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접점에서 작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것은 자연과학을 통한 인문과학의 이해도 아니고, 그 역도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를 통해 다른 것을 읽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인지’라는 개념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게다가 가장 극단적인 신비였던 종교를 과감하게 인지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러한 중간개념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종교학의 영역에서 인지종교학은 ‘학제간 연구’라는 기치를 구호가 아니라 실천으로 전환시켜 주는 능동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인지종교학은 그 동안 종교학 방법론과 이론이 포기해 버린 ‘이론의 통일성’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물론 ‘마음’과 ‘두뇌’를 통해 종교현상을 이론적으로 통일한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 작업으로 귀착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다듬으려는 노력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물론 인지종교학이 종교현상을 남김없이 설명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는 ‘신비’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지종교학의 이러한 흐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가 않다. 특히 ‘생물학적-심리학적 은유’의 빈번한 사용이 개념상 어휘상 인지종교학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인지종교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그저 ‘생물학적-심리학적 상상력’이라고 보는 시각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창익(한국종교문화연구소,changyick@gmail.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