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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호- 삼보일배의 진화(진철승)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3. 14:45

삼보일배의 진화

2008.6.26

2003년 새만금 공사를 반대하며 수경스님과 도법스님, 그리고 문규현신부, 김경일교무, 이희운목사가 함께한 두 달여의 三步一拜 행진은 한국사회에 ‘우리 시대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커다란 물음을 던졌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반성과 참회를 요구하는 이 기나긴 행진이 끝난지도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이들 종교지도자들의 외침은 잠시 사회적 화제가 되었을 뿐 끝내 여의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새만금 공사는 끝이 났고, 북한산과 천성산은 뚫리고, 곳곳의 무책임한 개발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운하계획으로 한바탕 난리를 겪기도 했다.

이 삼보일배라는 낯선 종교행위는 어디서 갑작스레 나타난 것일까?

한국에서 삼보일배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이 새만금 반대운동이 처음이었다. 한국불교에서 삼보일배 같은 巡禮와 禮敬이 결합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순례 자체가 불교계에서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례는 중동이나 기독교권에서 발달한 종교적 실천행위이다. 불교권에서 유일하게 순례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가 티벳이다. 티벳의 불자들에게 수도인 라사의 포탈라궁 참배는 평생의 소원이다. 그들의 순례행은 일보일배, 삼보일배, 혹은 ‘키만큼 걷고 일배’ 등으로 행해진다. 극고의 인내와 절대적 신앙심을 전제로 한 수행법이다. 티벳 각지에서 혹은 장족 자치구 등에서 수백 킬로의 길을 五體投地하며 수년에 걸쳐 성지를 순례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순례가 발달한 기독교나 이슬람에서도 볼 수 없는 철저한 수행법이다. 단순한 신앙심이나 기복의 마음가짐으로는 해낼 수 없다. 티벳 불자들의 순례행은 최근 각종 다큐멘터리나 책자 등을 통해 소개되어 우리에게 지극한 감동을 던지고 있다. 최근의 삼보일배는 이 티벳불교의 修行懺法을 우리 사회에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새로이 등장한 삼보일배는 종교행위이자 동시에 사회적 실천행이기도 했다. 더구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동참하여 종교 간의 연대와 대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다만 새만금에 동참한 이목사는 차마 절을 할 수 없어 三步一禱를 했 는데, 두고두고 기독계의 질시와 모멸을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삼보일배는 대학가, 노동계, 시민사회의 각종 행사나 시위에서 주요한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지순례의 예경법이 한국사회에서 변화(진화와 변질의 아우름?)한 것이다. 애초 삼보일배의 도입과 실천이 당면의 생명파괴와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고발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기에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순례와 예경과 참회의 종교적 실천은 어느새 새로이 현대 한국사회의 사회문화적 실천 행위로 자리잡은 것이다.

종교행위는 순수한 종교적 실천으로만 존속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 속에 자리잡으며 본래의 종교적 의미는 밑으로 가라앉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나가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서 삼보일배의 종교 실천이 사회적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변화한 것은 그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기나긴 세월을 요하는 이 변화과정이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종교사상에서도 매우 특이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종교-사회적 실천행위가 언제까지 이 사회에 존속할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진철승(한국종교문화연구소연구원, jcs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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