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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생일을 맞아 정부의 개천절 행사를 지켜보며
2012.10.2
신규식선생(1879-1922)은 <<한국혼>>에서 단군이 태백산 단목 아래 강림했다는 한줄기 기록이 없었다면 한민족은 이미 다른 민족에게 먹히고 말았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단군은 그야말로 민족을 지켜주는 희망의 등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한말의 혼돈 속에서, ‘단군’은 등장하자마자 민족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단군은 대종교라는 하나의 종파에 갇혀있지 않고 정치와 사상, 그리고 종교의 모든 종파를 넘어서 시대를 이끄는 지도이념의 바탕이 되었다. 해방 후까지도 정부는 단군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홍익인간의 정신을 교육이념으로 정립하고 단기연호를 제정하고 국조 단군상을 승인하는 일련의 조치가 이런 배경 하에서 취해졌다.
하지만 경제개발을 시작한 60년대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기연호는 혁명정권하에서 구미 선진국과의 외교적 편리성이나 행정적·경제적 효율성이란 명분하에 급하게 폐지되었다. 1949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 일제 때 민족독립투쟁의 중심이었던 대종교의 단군영정을 대한민국 표준상으로 공인하고도, 1977년에 또 다시 현정회의 단군 영정을 정부에서 공인함으로써 단군 표준영정이 2가지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정부에서는 대종교의 것은 신앙의 대상이고, 현정회의 것은 경모의 대상이라고 했지만, 단군의 국가표준영정의 공신력이 실추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국민으로서도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85년 자라나는 세대에게 민족혼을 일깨워 주기위해 서울시에서는 사직공원에 있는 단군 신전을 크게 확충 건립하기로 결정하자 일부 종교계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쳐 백지화되었다. 특정종교의 신앙의 대상인 단군상을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은 신앙의 자유를 해치는 것으로 위헌이며, 특히 우상숭배를 반대한다는 명분이었다.
건국초 홍익인간이란 국가 교육의 이념이나 단기 연호 사용 등에서 보여지듯이 해방후 우리사회에서 국조 단군에 대한 존숭은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오면서 외교적 편리성이나 행정적 효율성이란 명분하에 단기연호를 폐지한다든지, 70년대의 단군영정을 중복해서 승인한 문제를 비롯해서 8,90년대 단군성전이나 국조 단군상 건립문제에서 불거졌던 종교성 시비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정책에서도 국조 단군에 대한 존숭의식이 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작년에는 어린이날 현충일과 함께 개천절을 요일지정제로 변경하겠다는 정부안을 발표하기도 했다.(2011년 7월 20일) 비록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정부안이 철회되기는 했지만(7월 29일), 이 정부안이 지금 정권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정부에서조차 단군 개천절이 국경일이라는 의식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공휴일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개천절은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최대의 국경일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와 한민족의 생일이다. 왜 스스로 자신의 생일을 축소 폄하하려는 것일까? 모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렸던 조선시대에서조차도 국가제사로 -箕子와 함께- 단군을 이 땅에서 천명을 받은 조선의 개국시조로 정성을 드려 제향을 올렸던 점을 정부당국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대의 서구를 모델로한 근대화와 급격한 경제개발이 진행된 이후 우리 사회는 단군에 대한 인식이 이전에 비해 점점 더 협소해질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국조로서가 아니라 일개 종파의 신앙 대상으로 점점 한정적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세계의 최빈국에서 선진 10위권의 무역대국·경제강국이 된 지금, 지구촌이란 개념이 익숙해진 이 글로벌 시대에 국조단군은 이제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해진 것일까? 국가발전과 남북통일에도 정말 그런가.
사실 일제강점기하에서는 기독교계에서도 단군을 자연스럽게 국조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간도의 조선인 기독교 교회에서는 단군을 존숭하고 있었다. 당시 기독교에서 세운 명동학교 교가에는 “흰뫼(백두산)가 우뚝솟아 은택이 호대한 한배검이 깃 차신 이 터에 그 씨앗 크신 뜻 넓히고 가르는 나의 명동”이라고 해서 단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었고, 도서관 벽에는 예수의 사진과 더불어 단군의 영정을 마주 걸어놓고 있었다고 한다. 또 기독교를 신앙했던 도산 안창호선생은 평생 단군상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해방후 ‘弘益人間’을 대한민국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정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분도 기독교인으로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백낙준박사였다.
단군숭배는 자칫 국조존숭과 단군신앙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로 인하여 정부는 종교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해 정착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고 있는 듯하다. 국조단군숭봉과 단군신앙이 겹치는 것은 국조 단군이 신앙차원에 이르기까지 널리 봉숭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정부의 국조존숭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국조숭봉을 종교적 차원에서 자주 논의되는 것은 종교집단의 자기이해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세속적인 정부가 단군숭봉을 신앙의 차원을 의식해서 국조 단군을 기리는 개천절 행사를 경시한다면 국조단군과 개천절에 대한 종교적 성격을 승인하는 결과를 초래해 종교적 분쟁을 더욱 재촉할 여지가 많아진다.
현대사회는 근대민족국가에서 엄격히 구별되었던 국가간 민족간 종교간의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다, 종교계에서도 각자의 독선적인 입장을 지양하고 타종교와의 대화와 이해를 도모하면서 상호 공존하는 종교다원화시대가 되었다. 이런 세계화의 시대에 종교계에서도 단군 국조상에 대해 종교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란 논리로 접근하기 보다는 종교적 차원이 아닌 국조에 대한 존숭이란 차원에서 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시민단체들도 본래의 순수한 국조존숭 운동이 종교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분명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별적인 종교로서 단군을 신앙하는 것은 개인에게 보장된 종교의 자유이지만, 국조를 추념하고 존숭하는 것은 국가적 사회적인 차원의 경축행사인데, 신앙의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조에 대한 인식이 왜곡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임채우_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교수
slgi660@hanmail.net
주요논문으로 〈해방 후 단군 인식의 변화와 문제 -단군영정과 단기연호를 중심으로-〉, 〈대종교 단군 영정의
기원과 전수문제〉, 〈환단고기에 나타난 곰과 범의 철학적 의미〉 등이 있고, 역서로 《周易闡眞》, 《왕필의
노자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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