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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도원 방문에 부쳐

 

2012.10.16

 

 

2012년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거의 3시간이나 되는 긴 상영시간 동안 자연적인 음향 외에는 거의 대화가 없는 영화라는 면에서 한국 영화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그로노블 지방의 알프스 산 깊은 계곡에 있는 수도원을 무대로 하고 있는 데, 그 수도원에서 침묵 가운데 수행하는 수도자들의 반복되는 일상과 자연의 소리,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소음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침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더불어 바쁘고 쉼 없이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손짓하는 영화다. 영화의 포스터가 암시하듯 언어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소가 11월 17일(3번째 토요일) 종교문화탐방으로 방문 예정인 마산의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도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가장 엄격한 수도규칙을 가지고 있는 엄률수도회(봉쇄수도원)중의 하나이며 기도 외에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일종의 가톨릭 무문관(無門關)이다.


수도원/승원(monastic dimension) 현상은 인류 문화의 보편적 현상가운데 하나이다. 그리스도교 수도원 현상도 서기 3세기경부터 이집트와 중동의 사막에서 홀로 수행하는 독수자(eremite)와 은수자(hermit)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후일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일정한 수도원 규칙에 따라 수행하는 수도원(coenobium)을 형성하게 된다. 초기에는 공동체 수도원뿐만 아니라 일정한 수도원에 정주하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승 (i.e. xnitia, gyrovagi, remoboth)도 있었지만 일하지 않고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며 수도원의 환대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많아지자 6세기경 베네딕트가 "수도원의 규칙" (Rule of St. Benedict)을 만들고 청빈. 정결. 순명의 3대 서원 외에 “정주서원” (vow of stability)을 추가한 후 방랑승들은 서구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사라졌다.


서구 수도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트가 남긴 수도원 규칙은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 수도원의 형성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도원은 원장(Abbot)의 지도아래 공동체를 이루고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지침아래서 수행을 하여왔으며 한 지역에 정주하면서 그 지역의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도원은 교회가 권력과 부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끊임없이 복음적 가난으로 되돌아가라고 경고함으로서 가톨릭교회의 영적 자양분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가톨릭교회가 수많은 분열과 혼란 속 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수도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의 수도원 제도는 통상적으로 관상수도회(contemplative order)와 활동수도회 (active order)로 나누이며 활동 수도원들이 사회에서 교육, 각종 복지 및 문화 분야에서 일하는데 반해 관상수도원은 일상의 대부분이 기도와 명상으로 채워지며 자급자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을 하지만 명상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는 단순 노동으로 생계를 이끌어간다.


교회가 끊임없이 개혁을 해야 하듯(Ecclesia semper reformanda) 수도원도 규칙이 느슨해지고 세속화될 때마다 부단히 개혁을 거듭해왔다. 시토(Citeaux) 수도회는 1098년에 베네딕트회 몰렘 수도원 원장 로베르투스(Robertus)가 수도회의 느슨해진 수도회 회칙 에 불만을 품고 보다 더 엄격한 수도 회칙을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수사 20명과 함께 분가했으며 1664년에 시토회에서 보다 더 엄격한 수행을 강조하는 개혁수도회인 트라피스트회(Trappist)가 생겼다. 마산의 수정의 트라피스트 수녀원도 새벽 3시30분에 기상하여 저녁 8시에 일과가 끝나며 기도. 침묵. 묵상. 노동으로 이어지고 육식을 하지 않는 등 불가의 선방생활과 비슷하다. 늦가을 이 수녀원 방문을 통해 아마 전국에서 가장 정결한 음식을 맛보게 될 것이며 기도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그레고리안 성가의 천상적인 화음은 우리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침묵의 세계에로 인도할 것이다.


*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시토회에 속하며, 은둔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러 갔던 사막의 은수자 전통과 서방 수도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베네딕토의정주 공동생활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관상수도원이다. 1098년 '새 수도원'이라는 뜻의'시토'수도원이 창립되면서, 단순함과 엄격함, 노동과 끊임없는 기도생활과 공동생활, 친교, 인간성에 대한 이해 등을 추구해 왔다. 이후 시토수도원은 사랑의 배움터가 되어왔다. 그후 유럽에 수도원운동이 융성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였고, 이에 1665년에 라 트라프수도원의 드 랑세 아빠스가 기도하는 삶, 엄격하고 가난한 삶을 회복하고자엄률시토회를 창립했다. 한국에 있는 유일한 트라피스트수도원인 수정의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은 1898년에 일본 홋가이도에 창립한 시토회 천사의 성모수도원을 모원으로 해서, 수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에 1987년에 마산시 수정리에서 정식 창립되었다.



문영석_

 

강남대학교 국제학대학 학장


smoon@kangnam.ac.kr


주요저서로 <<Korean and American Monastic Practices>>
,<<북미주 한인의 역사 (상)>>(공저)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미국사회의 근본주의와 종교권력〉,〈Sociological Implications of Roman Catholic Conversion

Boom in Korea〉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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