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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고전 읽기”에 붙이는 글

 

 

202.10.9

 


몇 년 전부터 ‘리라이팅 클래식(rewriting classic)’ 시리즈가 인문사회 과학 분야 출판물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종교학자들이 그런 기획을 한다면 어떤 저작들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될까? 그런 의문은 “과연 어떤 책이 종교학의 고전일까?” 라는 물음을 되묻게 할 것이다.


흔히 고전은 계속해서 읽히는 책이고, 언제라도 다시 읽을 만한 책을 말한다. 예컨대, 서양철학에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우리는 현대의 유수한 철학자들도 그들의 저작물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토포스(topos: 문학에서 몇 개의 모티프들이 자주 반복되어 이루어내는 한 고정형이나 ‘진부한 문구(literally commonplace)’를 지칭하는 개념)를 재발견하고 가다듬는 예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누군가의 말처럼, 고전은 흔히 다시 읽는다고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읽지 않았을지라도 누구나 이미 읽었다고 암묵적으로 전제되곤 하는 책! 그래서 우리는 처음 읽는 고전조차도 항상 ‘다시’ 읽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읽는 고전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상식에서 다시 확인하는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발견하곤 한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고전이 환기시키는 ‘다시’는 어떤 지적 위기나 고갈의 상황에서 당면 문제의 기원과 전제를 되묻고 현재를 다시 끊임없이 재구축할 수 있는 반성적 사유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고전이란 현재가 전유하여 살려내는 과거이다. 즉 우리는 단지 과거에 완료된 지적 활동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하거나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저작을 고전이라 부른다. 만약 어떤 오래된 저작이 이제는 학술사의 서두를 장식할 뿐 더 이상 음미할 만한 것이 못되어 지금 여기에서 언급하고 비판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면 고전이라 부를 수 없다.


고전이 풍성하게 전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게 큰 복(福)이다. 지속적인 검토와 재해석의 대상이 되거나, 널리 인용되고 활용되거나, 또는 적어도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옛 저작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해당 학문 전통의 깊이와 유통기한을 짐작케 해주고 그 학문의 자양분이 되는 지적 자원의 크기와 풍요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학문의 내적 소통과 상호 비판과 검증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통의 기반, 언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닌 종교학에도 고전은 많다. 종교학의 고전이란 현대 종교학의 새로운 방향과 궤도를 모색함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정산이나 조정이 필요한 과거 종교학의 학문적 유산을 의미한다. 비록 이미 많은 비판의 표적이 되어 이론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거의 저작이 현대 종교학의 행보에 여전히 일정한 힘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고전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종교학의 고전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현재적 관점에서 재정의(redefinition)되고 재규정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공유되는 2차적 전통, 즉 해석의 역사에 대한 공유된 인식을 만들어가는 ‘고전의 재고(再考)’는 종교학이 새로운 시대적 요청 속에서 보다 넓은 세계와 학문 생태계의 일부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초기 종교학의 저작들에 주목하는 것은 결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야심찬 시도다. 종교학 고전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하고 다양한 관점과 시각들을 ‘다시’ 탐색하고 검토하는 것은 현대 종교학의 쟁점들을 더욱 선명하게 해줄 살아있는 유산을 확보하여 새롭게 전유하는 작업이다. 체계적이고 원숙한 사유와 논의를 보여주는 저작들뿐만 아니라, 때로는 거칠고 대담하게 광활한 지적 영역을 발견하고 탐험하는 과정을 통해 비판적 사유, 새로운 상상력, 관점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저작들도 대상이 된다. 종교학의 고전을 재정의하고 종교학의 범주(categories)와 개념(ideas)의 유통기한과 적합성을 재검토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사회 문화적 상황이 제기하는 시대적 요청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학 고전읽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걸쳐 여러 분과학문이 고착화된 폐해를 인식하고 경계 넘기와 통섭의 인식론을 요청하고 있는 최근 학계의 생태와 지향 역시 초기 종교학의 문제의식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종교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진화론적, 비교언어학적, 신화학적, 인류학적, 사회학적, 민족지학적 문제의식들의 미분화된 지적 연결망 속에서 태동했다. 그런 점에서 초기 종교학의 작업은 다양한 층위의 학문적 관심들이 상호 고찰과 참조를 통해 이루어낸 인식론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같은 사실은 태동기 이후 종교학에서 견지되어온 반환원주의적 태도가 ‘종교 그 자체’를 종교학의 고유한 인식 대상으로서 확보하게 해준 반면, 종교학으로부터 근원적으로 박탈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그 되돌아봄은 현대 종교학이 더 이상 자폐적인 동어반복을 그만두게 하고 동시대의 폭넓은 담론과 소통하며 지적 활력을 얻기 위해 고전 종교학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게 해줄 수 있다. 진정한 동시대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시대적 고찰’이 필요한 것처럼, 초기 종교학의 고전에 대한 고찰은 종교학의 현재 자리를 반성하고 향후 종교학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


‘고전 읽기’의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학 연구자들에게 초기 고전들은 여전히 낯선 책들이다. 특히 19세기 종교학 태동기의 고전적 저작들 중에는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읽혀지지 않은 채 종교학사에 언급되는 짧은 소개를 통해서만 기억되는 책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종교학도로서 읽어야 하는 당위와 읽기 어려운 현실의 거리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몇몇 연구자들이 지난 몇 년간 ‘종교학 고전 연구회’라는 소규모의 독서 모임을 꾸려왔다. 이 모임에서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고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19세기 종교학 고전들 중 주요한 몇 줄기를 탐험해왔다. 느리고 더딘 과정이었지만 그 속에서 낯설음과 낯익음의 충돌, 예기치 않은 발견의 놀라움, 더불어 새로운 시야가 펼쳐지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다. 또한 종교와 종교들을 사유하고 서술하기 위해 여러 범주들을 만들어내고 유통시켰던 종교학 태동기 학자들의 사유와 학문적 활동에 비추어 우리 시대의 종교학을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태동기 종교학자들의 작업이 19세기 서구 유럽의 사회 문화적 상황과 지성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당대의 다른 학문 활동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또 그것이 현대 종교학자들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를 ‘지금, 여기’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언어로 조금씩이나마 발언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모임을 꾸려나가고 있다.



종교학 고전연구회_

종교학 고전연구회에서는 <Manual of the Science of Religion>(Saussaye), <The Lectures on the Religion of the Semites>(Robertson Smith), <Sacrifice>,<A General Theory of Magic>(Marcel Mauss)등의 고전을 읽어오고 있습니다.
* 종교학 고전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chjang12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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