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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250호-한국 개신교의 슬픈 향연饗宴(박상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3. 2. 20. 17:56

 

                  한국 개신교의 슬픈 향연饗宴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 준비와 관련하여-


 

2013.2.19

 


올해 10월 30일 11월 8일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제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이다. ‘생명’, ‘정의’, ‘평화’, 이 세 단어는 지금 이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고통과 슬픔, 상실과 절망, 추위와 굶주림 속에 있는, 그리고 죽음과 폭력의 위협에 처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위로를 담고 있다. 또한 이 단어들은 과연 기독교 교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48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조직되었다. 세계대전을 통해 겪은 인류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그리고 ‘일치’, ‘공동증언’, ‘기독교 봉사’라는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지금껏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2년 현재 140개국에서 349개의 개신교 교단과 정교회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총 회원의 수는 대략 5억 8천만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등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에큐메니칼 협의체로 참여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보수 진영의 교단 목회자들은 이 세계교회협의회 부산 총회 개최를 반대해왔다. 그 일선에는 보수 교단들의 대표적인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있다. 핵심적인 반대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1월 13일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 준비위원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이 공동으로 서명한 ‘WCC 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동선언문에는 ① 종교다원주의 배격 ②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사상의 반대 ③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 ④ 특별 계시이자 신앙 및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인 성경 66권의 무오설 천명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 선언문에는 근본주의의 성격이 짙게 드리워 있고, 한국의 보수 개신교 진영이 염려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근본주의자들의 우려는 새삼스럽지도 놀라운 것도 아니다. 그보다 말을 잃게 하는 것은 민주화운동과 에큐메니칼운동의 보루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스스로 자기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에 서명하게 될 만큼 한국 개신교의 토양이 생명력을 상실한 데 있다.

생명력이란 살리는 것이다. 《주역》의 생생지리(生生之理)는 만물을 키워내는 하늘의 이치, 곧 하늘의 마음(天心)을 가리킨다. 그리고 주자는 그 마음을 가리켜 어짊(仁)이라고 했다. 만물을 낳고 기르는 하늘의 마음에서 소외되는 존재는 없다. 모든 생명체에서 하늘의 마음을 볼 수 있고, 하늘의 마음은 모든 생명체를 향해 있다. 과연 그러한 하늘의 마음을 도그마(독단)에 사로잡혀 이웃의 종교를 폄하하고 진리의 독점을 주장하는 배타주의적인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후에 진보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공동선언문의 폐기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요청했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총무는 결국 선언문 폐기와 사과를 표명했다. 그에 앞서 2월 4일에 열린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 WCC 신학과 한국교회의 신학적 대응’에서는 공동선언문에 담긴 네 개의 조항이 에큐메니즘의 신학에 어떻게 대치되는지가 논의되었다.

심포지엄의 발표를 들으면서, 한국 개신교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이 전해졌다.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분열의 한 요인은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그 이전 해에 미국의 북장로교회와 북미연합장로회가 통합을 이룬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예수교장로회에서 벌어진 것이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은 당시에 세계교회협의회의 입장에 동의하는 측이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은 반대하는 측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장로교가 분열되던 당시의 상황보다 더욱 심각하다. 그 이 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보다는, 신학적 패러다임, 그리고 사회적 이슈와 현실 참여와 관련해서 근본주의적인 관점이 한국 개신교를 넓고도 두텁게 덮고 있기 때문이다.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개교회주의, 무차별적인 선교 활동, 성장주의와 그에 따른 교회의 고급화와 대형화는 사회적 약자와 생태계 파괴, 그리고 변화하는 현실에 조응하는 신학적 성찰과 실천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에게는 자기 폐쇄적인 성곽에 갇혀 외부의 어떤 존재에게도 마음을 열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이렇게 한국 개신교회가 교회성장과 선교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근본주의에 한국교회가 물들게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신학교에 자리를 잡고 온전히 그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근본주의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고, 교회성장과 세계선교의 확장을 위해 신학적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원님 덕에 나팔을 분다는 속담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 개최를 통해 나팔을 불면 누가 이득을 얻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언제나 그런 부류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로부터 약 30억 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리고 근본주의자들과 야합하면서까지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려는 이유가 정말 궁금할 뿐이다. 한국 개신교의 높아진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일까? 그 높아진 위상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엄청난 교회와 신자의 숫자, 그리고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일까? 아니라면, 세계교회협의회가 추구하는 교회의 일치, 정의와 평화, 그리고 창조보전의 신학적 정당성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세계교회협의회에게 독사과와 같은 ‘공동선언문’의 작성이 필요했던 것일까?

공동선언문과 관련해서, 한신대학, 감리교신학대학, 성공회대학의 신학자와 여러 기독교 단체들이 선언문 폐기를 주장했다. 이런 폐기 주장에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를 지지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신학자와 목회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침묵의 의미가 진보와 보수의 날 선 입씨름에 말을 섞기 싫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태를 지켜보면서 총회 개최에 전념하겠다는 뜻인지 헛갈린다. 나름의 고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망자의 자세는 ‘성공적인 개최’에 눈이 팔려 정작 자기 정체성과 같은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다거나 근본주의 신학에 동조한다는 등의 오해를 사는 일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기회에 공동선언문의 4가지 조항과 관련해서 세계교회협의회에 소속된 4개 교단의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신학적 패러다임의 형성과 구체적인 입장 정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학적 패러다임이 신학 교육과 교회의 현장에서 충실히 전달했으면 좋겠다.

어느 신학자의 발언을 통해 전해들은 “이제는 해석학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한 목회자의 말이 각별하다. 과연 기독교의 신학이 무엇을 지향하고,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지를 자신이 처한 지역과 사회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실천하는 태도가 요구된다는 의미일 테다.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개최지로서 한국의 교회는 너무 부유하고, 그만큼 편협하다. 그래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는 지구적 관심과 세계교회의 도움이 절실한, 시리아와 같은 지역에서 개최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어느 신학자의 발언이 무게 있게 들려온다.

한국 기독교는 공허한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온 땅의 생명체에 담긴 하늘에 귀을 기울이고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마음을 저절로 펼쳐 보일 수 있다. 하늘의 마음, 천지에서는 널리 사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에게서는 따스하게 타인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사덕(四德, 仁·義·禮·智)을 포괄하고 사단(四端)을 관통한다는 朱子의 가르침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국 기독교의 모습에서 그 하늘의 마음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박상언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laetor@hanmail.net
논문으로<간디와 프랑켄슈타인,그리고 채식주의의 노스탤지어:19세기 영국 채식주의의 성격과 의미에 관한 고찰>,<개신교 주일예배의 변용과 특성>,<신자유주의와 종교의 불안한 동거: IMF이후 개신교 자본주의화 현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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