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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을 맞은 가톨릭교회의 진로
2013.3.19
지난 두 달간 전임 교황의 갑작스런 퇴위, 곧이어 선출된 새 교황의 즉위 모두 뜻밖의 사건이어서 세계인의 이목이 가톨릭교회에 집중된 바 있다. 교황이 생전에 퇴임하는 일이 가톨릭교회 역사상 거의 육백 년 만의 일이고, 새 교황도 유럽인이긴 하지만 유럽 경계를 벗어난 남반구 출신이라는 점이 주의를 끌었기 때문일 터이다. 이 외에도 최근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일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지만 나는 새 교황 즉위의 의미와 그의 재임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남북의 신자수 역전 이후 한 세대만의 변화
1981년 가톨릭교회에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유럽과 유럽계 백인 중심이었던 가톨릭교회의 인종 구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톨릭이 비유럽지역으로 선교를 시작한 지 오백년이 다 되어 가는 시기에 남반구 신자수가 북반구에 사는 신자수를 추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두 지역 간 신자 수 격차는 더 벌어져 현재는 남반구가 북반구 신자의 두 배를 넘었다. 이러한 신자 수 역전과 두 지역 간 격차에도 불구하고 추기경단 내 남반구 출신들의 구성비나 교황청 정치 안에서 이들 지역의 영향력은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이천년 역사를 가진 유럽이 신자 수는 현저하게 줄었음에도 교구 수는 줄지 않아 이를 기초로 선출되는 추기경과 주교들의 숫자를 통해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탓이다.
교황직은 유럽 가운데서도 이태리 중심성이 오랫동안 깨지지 않다가 요한 바오로 2세 때 동유럽으로 중심이 넘어 갔다. 이 일도 1979년에 일어났는데 역시 당시에도 신자 수 역전이 가까웠던 시점이다. 이 사건도 역사적으로 가톨릭교회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교황의 출신지역은 서유럽인 독일을 거쳐 이번에 남미로 바뀌었다. 새 교황이 이태리계 이민자의 후손이니 혈통 면에서 유럽의 경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측면은 교황을 배출한 지역이 남반구라는 사실이다. 남북의 신자 수 역전이 일어난 지 한 세대 만에 남반구 출신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특성상 많은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수도자 출신, 그리고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의 의미
유럽계가 신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 외에 설립된 교회들에는 대부분 수도회 출신들이 주교로 선임된다. 이들이 주로 교회를 설립하고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교구가 발전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들이 고위 성직자로 선임될 확률이 높다. 한국 천주교회도 외방전교회 출신 외국 선교사들에서 한국인에게 교권이 넘어온 지가 불과 반세기 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1년에 교계제도가 설정되었다.
한국 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무엇보다 내국인 사제들의 숫자가 수십 배 늘어나면서 실질적으로 교구 사제 중심의 교회로 변모하였다. 이 때문에 현직 주교 가운데 수도회 출신은 단 한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반구 소속 교회들은 수도회 출신들이 전체 사제수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수도회(혹은 사도생활단) 출신이 교황이 된 사건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먼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평신도였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가톨릭교회의 교계제도는 성직자 중심의 구조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제 중심의 가톨릭교회 구조에서 의도적으로 새 교황은 평신도를 교황명으로 선택하였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의 맨발이 상징하듯이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자 한 분이다. 성인 생전에 성인을 성직자로 만들려는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있었음에도 끝내 평신도로 머물렀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는 교황명으로는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새 교황은 그의 이름을 선택하였다. 이는 새 교황이 프란치스코의 청빈한 삶을 따르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이면서 동시에 가톨릭교회 전체에 쇄신과 ‘자기 비움(kenosis)’을 요청하는 상징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교황 선출 후에 보여준 그의 탈권위주의적 행보로 볼 때 이는 일시적인 제스처는 아닐 것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의 긴장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의 흐름을 개관할 때 지난 오십여년 간은 교황청으로 권력을 집중하려는 흐름(구심력)과 토착화를 매개로 중심을 분산시키려는 흐름(원심력)이 내적으로 갈등한 역사로 볼 수 있다. 공의회는 후자의 지향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요한 바오로 2세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자의 흐름을 대변하였다. 이 때문에 새 교황은 이러한 전 세대의 퇴행적 흐름을 거슬러 공의회 정신과 지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교리적으로는 정통주의를 고집하겠지만 교회 운영은 협의체 원리를 따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연히 그동안의 관성 때문에 이러한 방향 전환이 탄력을 받지는 않을 터이다.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큰 흐름의 물꼬는 트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번의 선택은 교황 출신지역만 남반구였지 혈통적으로는 유럽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는데, 다음 교황은 지역 · 혈통 · 신학 면에서 완전하게 남반구 출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이 건강을 이유로 퇴임하면서 종신직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었다. 수도자이고, 교황 선출 후의 행보로 볼 때 그는 전임 교황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십년 뒤에는 현 교황에서 시작된 변화의 흐름이 더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새 교황들은 동시대의 새로운 변화들에 더 민감할 것인 까닭이다. 사실 이 같은 가능성은 불과 작년 만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의 임기 중 가능한 변화
현 교황은 지역만 남반구 출신이라는 사실이 암시하듯 그동안 신학적으로 쟁점이 돼온 사안들에 대하여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그의 교회와 교황청 내 입지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을 제외하면 다른 영역들에서는 변화가 활발할 수 있다. 일각에서 전망하듯이 그가 가난하게 살았고, 또 빈민사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사회사목 영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역할들을 NGO의 역할로 간주한다. 이런 일들을 교회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로 보고 있다. 사실 전임 두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교회가 직면한 내적 위기를 해결해보고자 하였다. 이 내적 위기는 교회/신자가 세속주의에 물든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되돌리는 방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목활동이 아니라 신자들 스스로, 그리고 각 지역 교회 안에서 치열하게 복음 정신으로 무장하고 또 그렇게 사는 일이다. 아마 새로운 교황에게도 이런 점이 가장 큰 관심사일 터이다. 이런 점을 그는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과제이자 방향으로 보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바깥으로 드러내는 일보다 대내적인 과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앞에서 말한 여러 배경들이 새 교황이 전임 두 교황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나는 큰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반세기 동안 눈에 띠지 않게 가톨릭교회 안에서 일어난 큰 흐름을 보면 그의 개인적 솔선 여부를 떠나 변화는 확실히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큰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한 계기일 뿐이기에 말이다.
박문수_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franciscus0906@daum.net
논문으로 <가톨릭 사회복지와 한국의 근대화: 1784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 천주교회 활동수도회의 현황과 전망>등이 있고, 저서로 <<천주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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