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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종교학을 찾아서
2013.3.12
언제부턴지는 모르나 필자는 한국 종교학계가 사변적 담론의 장으로 점철되어가는 것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관련 개념, 이론, 교리 등에 대하여 지속적인 담론을 생산하면서 머리만 커져버린 기이한 형태의 종교학을 떠올리는 것은 단지 필자의 기발한 상상력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섹슈얼리티와 종교(경험)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에서 조차도 이 둘을 이어주는 일차적인 우리의 몸과 그 생생한 감각들은 잊혀지고 형이상학적 논의와 개념들만이 난무한 것을 보면서 학자들은 모두 관음증적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닌가하는 불순한 생각조차 들었다. 이러한 종교학계의 모습은 학문 밖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웃고, 울고, 뒹굴고, 혹은 스스로 고통을 주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종교체험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는 극렬한 대비를 이룬다. 한편 이미지가 소통, 자기표현,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정에 그 어느 때 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미디어 시대에 한국 종교학계는 동시대의 이러한 근본적인 문화적 변화를 하나의 방법론적 도전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도 않는 것 같다.
여기서 던져지는 질문은 종교학자들이 종교를 하나의 사유체계로 상정하고 그 구조와 본질을 논하면서 형이상학적 담론을 생산하는 가운데, 오히려 종교가 작동하는데 필수적인 체화된 경험이나 느낌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매체(medium)로써 몸, 감각, 이미지 등은 논의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다. 필자가 이러한 방법론적 고민으로 출구를 찾고 있을 때 전혀 우연치 않게 발견한 것은 이미 서구학계에서는 텍스트 중심의 종교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래에 뚜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문학의 패러다임이 20세기의 - (의식이 아닌) 언어가 실제를 구축/구성한다는 - '언어학적 전환'(linguistic turn)에서 21세기에는 도상적 전환(iconic/pictural turn) 혹은 미디어적 전환(medial turn)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서구 종교학계의 근래의 대표적인 두 움직임으로 'Religionsästhetik"(종교미학)과 'Material Religion'(물적 종교)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종교미학'은 독일 뮌스터 대학을 중심으로 그 논의가 시작되어 지난 20년 동안 독일어권 종교학에서 하나의 연구영역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기존의 '미학'이 철학과 예술사 분야에서 (예술작품과 연계하여) '아름다움' 혹은 해당 개념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주를 이루었다면, 보다 최근의 '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aisthesis에 대한 논의 - 지식 생산의 과정에서 지각(perception)의 역할을 강조 - 를 이론적 출발점으로 문화연구 전반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정립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미학'이란 종교를 개념/아이디어의 특정한 조합이나 사회적 제도로 상정하기보다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종교적 상징, 사인, 제스처, 실천 등이 생산, 매개, 수용되는 양상을 분석하고자 하며, 여기서 감각적, 육체적 차원에 대한 고찰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종교미학은 현재 까지 텍스트, 도그마, 인식(cognition)에 집중된 종교에 대한 시각을 보다 넓히고 첨예화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종교미학'이 미국 종교학계에서 David Morgan을 중심으로 여러 학문분과의 연구자들이 합류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Material Religion' 혹은 'Visual Religion'을 표방하고 있는 학계의 움직임과 여러 면에서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종교학이 그동안 주로 텍스트와 개념 연구에 매진하면서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종교적 의미와 경험이 생산되는데 있어 물적 기반 내지 '물적 문화'(material culture) - 이미지, 의례/예배용품, 건축, 성소, 예술품이나 일반 공예품 등 - 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종교가 추종자의 삶과 해당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연구와 함께 물체, 공간, 이미지 그리고 이들 아이템들을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실천행위들에 대한 연구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학자들의 관심사는 사람들의 대상/장소와의 (신체적, 감각적) 상호작용 방식을 통해 종교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가 언설이나 이성만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 그리고 몸이 위치하는 공간과 함께 행하는 것이고, 종교는 궁극적으로 - 걷는 것, 먹는 것, 명상하는 것, 순례하는 것, 의례를 수행하는 것 등의 - 감각적 작용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교에 접근하는 방식은 학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매우 다양할 것이며 그 나름 다 의미 있는 학문적 여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종교를 사유체계나 형이상학적 담론의 대상으로 축소시키기에 종교는 - 적어도 필자가 관찰에 의하면 - 너무나도 현란한 색채를 뽐내며, 눈물과 땀이 흐르고 탄식과 외침이 울리는 너무나도 감각적인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오감이 모두 깨어나는 종교의 살아있는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며 이는 감각의 종교학을 향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우혜란_
가톨릭대학교
woohairan@hotmail.com
최근 저서로 <<Religion in Focus>>(공저),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공저)가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는 <사이버순례에 대한 논의 - 온라인 ‘미로’와 ‘가상 하지’를 중심으로>, <한국의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에서 여성의 위치와 그 구조적 배경>, <젠더화된 카리스마>, <한국 가톨릭 여성에게 고통과 신비체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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