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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신앙대상(信仰對象)에 대한 단상
2013.4.23
때로 불교는 다양한 잡신들이 군웅할거하는 마당(도량)으로 묘사되곤 한다. 때로 불교는 깨달은 이(여래, 부처)만이 있을 뿐 다른 잡신은 없고, 있어도 그를 숭배하는 짓거리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맞지 않는 말이다. 앞의 대표적인 사례는 구한말 이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전략, 인식과 그를 오늘에까지 이어가고 있는 개신교계의 주장이다. 뒤의 대표적인 사례는 만해 한용운 시인(선사)의 불교유신론과 그를 변주한 선승(禪僧, 성철 등) 및 초기불교 회귀론자들의 주장이다. 두 극단적인 주장에는 묘한 공명이 있다. 이 두 극단의 주장 배경에는 근대(근대주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한반도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투적 해외선교의 소임(미션)을 안고 식민지(혹은 가능성 있는 지역)에 파송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 구한말 대중들의 복잡한 신앙대상과 우둔한 신앙행태는 다름 아닌 우상숭배였다. 대표적인 표적은 백성들의 마을, 가정신앙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사찰의 만신전(萬神殿)이었다. 장승과 솟대, 당산, 산신, 사천왕, 열시왕, 수많은 불보살과 신중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대중 신앙의 대상들이 모두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미개 지역 대중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그들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야 할 선교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선교사는 문명, 과학기술, 군사력, 즉 힘을 지닌 근대의 표상이었다. 신앙대상으로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쟁은 한국종교사에서 매우 낯선(보기에 따라서는 처음 보는) 풍경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에게 이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당연히 각종 잡신들은 우선적인 타도의 대상이었고, 이에 대한 집요한 공격은 한국근현대 종교사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선교사들은 보수적 기독교신학(복음 근본주의)과 서구적 근대화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다른 한편 불교 내부에서도 다양한 신중(神衆)에 대한 신앙이나 산신각, 칠성각 등의 존재를 비불교적인 것으로 매도하며, 이에 대한 신앙행위를 금하자는 견해가 있어왔다. 그중 가장 격렬한 비난은 만해선사의 조선불교유신론 중의 논불가지각양의식(論佛家之各樣儀式)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만해선사는 의식의 간소화, 염불당 폐지, 소회(塑繪)의 폐지 등을 주장하였는데, 특히 사찰 안에 봉안된 각종 불상과 탱화 등을 모두 철거하고 석가모니불만 모시자는 주장을 펼쳤다.
다른 한편 강도가 조금 낮은 견해로는 현대 한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성철 선사 등(봉암결사 共住規約) 수행자들에 의한 신중단(神衆壇) 불공의 폐지와 반야심경 봉독으로의 간소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 대다수 사찰에서 의식의 간소화 경향에 따라 실행되고 있다. 이는 신중들이 불법과 법회도량을 옹호하는 신장(장군)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불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이 부처에 준하는 예경(神衆佛供)을 드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또한 최근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초기불교운동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심지어 대승비불설(대승은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다) 등 대승불교 성립 전후 형성된 다양한 불보살 신앙이나 신중신앙 등을 부정하고 사성제와 팔정도, 십이인연법, 업설 등 석가모니 부처의 핵심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불교의 본연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같이 근현대 한국불교에서 스스로 그 다양한 불보살과 신중 신앙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주장이 펼쳐지는 것은 매우 이색적이다. 그것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투사이자 민족문학시인인 만해선사, 그리고 해방 후 한국 선수행 가풍을 대표하는 선사, 그리고 현대 한국불교의 혁신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그러한 주장이 강력하게 개진된 것은 아주 특이하다 하겠다. 왜 그럴까? 일제 이전 교학이든 선수행이든 어느 쪽에서든 다양한 불보살과 신중신앙을 거부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들 근현대의 불교인들에게서 개항기 이후 밀어닥친 근대주의의 세례와 영향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조선 패망 후 서구문명의 유입, 일제강점 등 변화된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불교의 전근대성을 혁파하자는 불교유신론에는 강한 근대주의의 기저가 깔려 있다. 또한 해방 후 수행가풍의 지킴이를 자처하며 봉암사 결사(結社)를 주도한 성철 등 선사들의 주장에는 근대의 세속화에 대항하며 수행가풍의 회복과 보존을 열망하는 반세속화, 반근대의 메시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근현대에 수행불교를 자리 잡게 하려는 강한 근대주의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이들 주장에 또한 공통되는 것은 몰역사성과 반대중주의의다. 이들은 불교 신앙의 형성과정과 역사적 변화에 대해 아예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불교신앙의 대상들은 부처 당시에 한순간 생긴 것이 아니다. 부처 당시의 상황에 대해 굳이 언급할 것은 없다. 그러나 불교 발생 이후 인도에서의 1500여 년 불교의 흥륭과 소멸, 그리고 불교가 퍼져나간 전파의 경로와 그 과정에서의 다양한 문화적 접변에 대해서는 주목을 해야 한다.
불교의 경우 그 전파과정과 경로에서의 문화적 변용은 세계종교사상 매우 특이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바로 그 신앙대상과 내용의 다양성으로 표현되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 그 기나긴 세월 축적된 종교유산에 대해 근대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대중에 대한 편견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경우 모든 대중이 선교의 대상이지만 현재 그들의 신앙이나 행태는 지극히 야만적이고 미신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불신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가혹한 지옥불의 징계를 내린다. 불교의 경우도 대중 신앙의 대상에 대한
폄하나 무시는 기나긴 세월 대중이 의지하고 신앙하던 불교문화의 정화를 스스로 폐기하는 것이다. 양자 공히 대중은 선교의 대상이거나 구제의 대상이지만, 그들의 ‘현재’ 신앙과 그 행위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것이다.
2500여 년에 걸쳐 성립된 불교적 신앙세계는 때로 미신으로, 때로는 비불교적인 신행으로 비난받거나 매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삼세불과 시방불을 비롯하여 불교와 민간신앙의 만남이라 할 다양한 신중 신앙은 그 자체로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대중의 일상적인 고통과 아픔은 근원적으로 치유되기 어려우며, 죽음의 공포 또한 사라질 수 없다. 다양한 불보살신앙과 신중신앙은 역사 과정 속에서, 그리고 다양한 지역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고, 그 나름의 역할을 다해왔다. 오늘날 몇몇 불보살과 신중 외에는 더 이상 일상적 신앙대상으로 모셔지고 있지는 않다. 현대의 문화적 변동과 대중의 높아진 인지(人智)는 예전과 같은 무조건적인 신앙을 더 이상 지속시키기 힘들게 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전개된 불교신앙의 대상에 대한 몰역사적인, 그리고 반대중적인 매도는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역사 속에 대중의 처지와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던 지극한 정성, 그리고 그에 대응하여 다양한 신앙세계를 창작해냈던 불교계의 노력은 근현대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역사라는 기준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진철승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jcs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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