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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의 과제와 전망
-종교연구 관련 학술지 분석을 중심으로-
2013.4.16
종교연구에서 ‘이론연구’와 ‘전통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이론과 전통에 대한 연구만큼 중요한 분야가 바로 ‘주제연구’이다. 이론과 전통이 온전히 만날 때 주제연구의 길이 열린다. 필자는 종교연구 관련 학술지가 다루어 온 특집·기획 논문들의 주제를 분석한 바 있는데, 그 분석을 토대로 우리가 함께 풀어야할 종교연구의 과제들을 몇 가지만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과제는 주제연구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먼저 이론연구와 전통연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론 없는 전통연구’는 종교학의 관점을 상실하고 ‘전통 없는 이론연구’는 철학담론처럼 그저 공허하다. 보편적 구조를 탐색하던 종교현상학의 논의가 차이를 강조하는 종교인류학의 도움을 받아 보완되는 최근의 흐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종교학회의 종교연구는 전통연구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한국종교에 대한 연구가 집중되어 있어서 폭넓은 연구 주제와 연관된 공동연구를 기대하기 어렵다. 1990년대에만 해도 한국종교학회 내에서 학문적 논의를 활발히 진행할 수 있었던 주제들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른 학회들과 학술지들의 범람으로 인하여 사실상 주도적인 논의의 자리를 상실하였다.
흥미로운 주제의 논의가 부재하는 곳에 학자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이슬람 관련 논문은 이슬람학회와 중동학회에서, 기독교 관련 논문은 기독교학회와 그 산하 학회들에서, 역사학, 현상학, 심리학, 사회학 등 종교이론에 관련된 논문은 역사학, 철학, 사회과학과 관련된 유관학회에서, 아프리카종교와 관련된 논문은 아프리카학회에서 발표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기의 논문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키려는 연구자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실질적인 조언과 좋은 논평을 얻어 보기 위해 종교학회보다는 관련 전문가들이 있는 다른 학회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이다. 따라서 우선 종교학 이론연구에 대한 보강과 함께 한국종교 외에도 다양한 종교전통들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도록 하고, 나아가 학회의 주제별 공동연구의 기회를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종교학회는 한국종교만을 연구하는 학회가 아니라 명실상부 세계종교를 포함한 종교현상(religious phenomena)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구자의 장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국내외학자들과 학문적 교류를 위하여 효과적인 네트워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종교학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조건이다. 연구 인력의 규모가 작은 종교학의 국내사정을 고려한다면 지나친 만용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겠지만 지금도 국내외학자들과 연구자들은 한국종교와 그 연구결과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문의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네트워크형성을 위하여 국내의 유관학회와 교류하고 국외에서 활동하는 종교학자와 최근에 해외에서 박사나 박사 후 과정을 마친 신진학자들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종교학회가 과거 1970년대의 오랜 공백기를 깨고 1980년대에 진입과 함께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2세대 종교연구자들이 해외 유학을 마치고 잇따라 귀국하면서 본격적인 학술활동을 펼쳐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쇄신의 기회와 시너지효과를 오늘날에도 다시 기대하며 한국종교학의 ‘제 2의 도약기’를 앞당겼으면 바람이다. 학회는 후학의 연구를 격려한다는 차원에서도 작더라도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학회비나 논문발표를 지원하고, 앞으로 종교학계를 이끌어 갈 대학원생들의 학회참여와 논문발표를 권장하며, 박사학위를 마친 신진학자들이 학회의 주제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공동 연구의 장을 마련하는데 보다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셋째로 매 년 두 차례 이루어지는 한국종교학회의 학술대회와 별도로 주제연구를 전제로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 한신대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종교학자들 간의 정기적 교류와 연합심포지엄을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벤치마킹만한 가용 모델로서 예일에딘버러학회(Yale-Edinburgh Conference Group)를 들 수 있다. 이 학회는 영미의 역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선교역사와 세계기독교’라는 중심테마를 가지고 매년 구체적인 주제로 바꾸어가며 예일대학교와 에딘버러대학교에서 교대로 모임을 개최해 왔다. 그리하여 미국종교학회 산하에 세계기독교(world Christianity)분과로 자리를 잡았고 1995년부터는 저널 세계기독교연구(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1995-2012)와 1998년부터 세계기독교저널(Journal of World Christianity, 1998-2012)을 출판하고 있다. 매년 대서양을 넘나드는 그들의 꾸준한 열정과 학문적 끈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21세기 종교에 대한 주제연구는 전통연구와 이론연구를 토대로 역동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종교학의 독점적 중심은 이제 사라졌다. 대신에 다양한 학문의 중심들이 곳곳에 생겨났고, 여러 중진학자와 신진학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형태의 종교학들’(new forms of religious studies)이 과감히 시도되고 있다. 이렇게 흩어진 중심들이 주제를 정하여 공동연구나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상호 교류와 건설적 대화를 이루어나가도록 앞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 그 지점과 자리에서는 주제연구가 한층 더 큰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한국종교학회는 활발한 주제연구를 통하여 종교학이 한국 사회 안에서 그 정체성과 필요성을 제대로 구현하고 한국 사회에 건설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였으면 한다. 최근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서 종교학을 새롭게 요청하고 있다. 당사자인 종교학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날 이미 ‘제 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수도권에 종교(학)연구자들이 한정되어 활동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학자의 연구 공간들도 지역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속에 흩어져 다양한 종교현상들을 연구하고 교수하는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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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론과 전통이 만났을 때 - 주제별 종교연구의 과제와 전망”,『종교연구』제70집 한국종교학회, 2013에 실린 글의 결론부분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안신_
배재대학교 주시경대학 교양교육부 종교학 교수
shinahn@pcu.ac.kr
최근 논문으로는 <이론과 전통이 만났을 때: 주제별 종교연구의 과제와 전망>, <영화에 나타난 자살과 종교치유에 대한 연구: 도가니, 내 이름은 칸, 세 얼간이를 중심으로>, <한국 신종교의 창조성과 중층성에 대한 연구: 수운교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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