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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에서 과학과 종교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2013.4.30


 

 

현대 한국사회에서 과학이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또 종교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도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종교 두 영역을 함께 논한다고 하면, 이 두 영역을 서로 대립하는 상반된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전혀 무관한 영역으로 이해하여, 이 둘을 함께 논하는 일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가 서로 구별되는 범주이지만 이 둘을 떼어놓고 어느 한 쪽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종교와 과학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날 과학과 종교의 두 영역을 대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태도를 보면, 종교의 입장에 서서 자기 종교의 교리와 배치되는 과학의 논리를 배척하는 태도, 과학의 입장에 서서 현대 과학의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 종교의 설명체계를 부정하는 태도, 그리고 과학의 입장에서든 종교의 입장에서든 중립적 입장에서든 양자의 서로 다른 논리를 일치 내지 조화시키려는 태도 등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는 곧 과학과 종교가 서로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상호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종교사의 영역과 과학사의 영역에서 공히 매우 중요한 주제의 하나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했으며, 드물게 나온 연구 성과 또한 피상적, 단편적 접근에 그쳤던 한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의 상호작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면서도 포괄적, 심층적 연구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과학과 종교 두 영역의 상호 관계에서 오늘날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쪽은 분명히 과학이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과학에 끼치는 영향에 비해, 과학이 종교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모든 인식의 준거가 되는 과학이 각 종교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어떻게 변용되는지 또는 어떻게 거부되는지를, 그 논리적 기반에 대한 분석과 구체적 사례 연구를 통해 살펴보는 작업은 현대 한국사회의 종교-개별 종교 및 제반 종교현상들-를 이해함에 있어 의미가 있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학사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작업이다. 이와 함께 종교가 과학에 행사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자연, 우주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두고 특정 종교의 교리나 세계관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고, 과학자 자신이 자신의 과학적 성취에 대해 특정 종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하는 사례도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서구 근대과학이 수용되기 이전 전통 사회에서는 종교가 과학에 미친 영향이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의 상호작용에 대한 균형 있는 연구는 한국 과학사 및 종교사의 면모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내용의 과학과 종교의 상호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과학과 종교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현한 것이라는 점이다. 두 가지 개념이 한국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약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이 팽창하여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두 개념이 한국에 등장하였고, 흥미로운 과정을 거쳐서 정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라는 중요한 개념이 출현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념적-역사적 맥락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연구가 바탕이 된 다음에 비로소 현재 과학과 종교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내용이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묶여서 서술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점을 강조해야 하는 것은 결코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두 개념이 출현하기 전의 역사적 자료를 해석할 때, 개념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카이스트의 <한국과학문명사총서>의 일환으로, 본 연구소가 담당하는 <한국사에 있어서의 과학과 종교> 서술에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과학과 종교 개념이 한국에 등장하고 정착하는 과정 및 그 맥락을 우선적으로 파악한다. 그런 다음에 이런 개념들이 한국에 정착함으로써 이전 시기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이런 순서로 연구가 진행되면, 그동안 이루어졌던 과학사 및 종교사의 논저에 관해 자연스럽게 비판이 행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시대의 여러 종교들의 과학기술에 연관된 내용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접근방법은 기존 해석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점들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근대서구의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 결과물로 등장하는 이른바 “문명의 이기(利器)”가 한국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종교 영역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는 예컨대 철도(기차), 전신, 전화, 녹음기 등의 “문명의 利器”가 한국사회에서 주요한 동인(動因:agent)으로 작용하는 측면에 대한 탐구이다. 종교 영역이 이 같은 문명의 산물을 단지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영향력을 한 차원 더 널리 확장하는 능동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이런 과학기술의 산물이 종교 영역 자체에 변화를 일으키는 측면도 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과학과 종교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진행되었던 논저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이 연구가 학계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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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카이스트(KAIST)의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가 <한국과학문명사총서>의 일환으로, 본 연구소에 <한국사에 있어서의 과학과 종교>이라는 연구저술을 의뢰해와 2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과학과 종교 연구팀’(팀장 장석만)이 제안한 연구제안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KAIST 부설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의 <한국과학문명사총서>는 한국의 전통과학사와 현대과학사의 전개 과정과 그 특성을 탐구하여 알림으로써 동아시아과학사, 세계과학사 이해에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목표로 기획되었다. 10년 동안 37권의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김호덕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과학과 종교 연구팀’ 간사
serkha12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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