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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35호-아이누사람들의 기도(이연숙)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2. 3. 21:54

                   아이누사람들의 기도 

                

                       
                              

 2014.10.7

 

 

        스나자와 비키(1931년-1989년)는 홋카이도(北海道) 출신의 아이누 조각가이다. 1988년 늦가을 나는 이분을 동경에서 만났다. 그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누민족에 대한 지식은 얄팍한 사전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조각가와 그의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누민족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의 작품의 모티브는 주로 바람, 대지, 나무, 빛 그리고 연어와 곰인데, 통쾌함, 자유로움, 관대함이 절절 넘쳐나 많은 사람들에게 해방감과 신바람을 느끼게 한다. 스나자와 비키의 풍모 역시 광활한 대지를 방불케 하는 자유로움과 당당함이 있었다.

 

 

        일본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누사람들은 스나자와 비키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나타내지 못한다. 아이누민족은 일본에서 관광명소로 알려진 홋카이도, 사할린, 캄차카 등 일본 북쪽 지방과 러시아를 잇는 넓은 대지에 거주하는 선주민족이다. 근대 이후에는 홋카이도 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의 대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누사람들의 정확한 숫자와 실태를 파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2006년의 통계에 의하면 홋카이도에는 약 2만 4천명 정도의 아이누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통계 자체도 신빙성이 높지 않으며 홋카이도 이외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누 사람들은 더욱이 그 실태를 파악할 수 없다.

 

 

        근대 일본은 아이누민족에게 철저한 동화정책을 시행했다. 1899년에 이른바 <북해도구토인보호법 (北海道舊土人保護法)>이란 법을 근간으로 아이누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야만으로 규정하였고 수렵생활을 하던 그들의 생활조차 농경생활로 전환할 것을 강요했다. 이와 같은 근대화과정에서 아이누민족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떳떳하지 못한 걸로 생각하게 되었고, 와진(和人, 아이누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틈새에서 숨을 죽이며 살아가게 되었다.

 

 

        아이누민족에게는 풍요로운 문화와 신들의 세계가 있었다. 이들의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아이누 모시리」즉 인간이 사는 세계와 「카무이 모시리」 즉 신들이 사는 세계다. 신들이 「카무이 모시리」에 있을 때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항상 인간을 지켜 주는데, 신들이 인간세계에 내려 올 때에는 여러 의상을 몸에 걸치고 온다. 예를 들면 곰 카무이는 곰의 모습으로, 나무 카무이는 나무 모습으로 변신해서 인간 세상에 온다고 믿는다. 때문에 아이누민족에게는 인간을 둘러싼 모든 동식물, 불, 심지어는 일상도구 등에도 「영」이 머물고 있으므로 삼라만상이 경배의 대상이 된다. 아이누민족의 일상은 신들과의 대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근대일본에 강제 편입되면서 신들과 인간들의 풍요로운 대화는 저 세상 밖으로 축출당하고 말았다.

 

 

        스나자와 비키의 작품세계는 이렇게 부서진 신들의 세계를 재현하고 위령하는 소리 없는 기도와 같다. 그의 작품을 보면 바람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고, 빛을 우러러보며, 대지를 끌어안는 아이누민족의 정성스런 혼이 느껴진다. 내가 이 조각가를 만난 몇 달 뒤에 그는 카무이 세계로 먼 여행을 떠났다. 향년 68세였다.

 

 

        일부 정치가들은 <아이누민족은 머지않아 일본에서 그 존재를 감출 것이다> 혹은 <일본에 소수민족은 없다>라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근래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아이누 레벨스(Ainu rebels)」 즉 아이누 반역자라는 이름의 스트리트 컬처 형식의 음악밴드 이야기다. 이 밴드는 2006년 여름에 동경 근처에 살고 있는 아이누 젊은이 15명이 결성했는데, 이들은 아이누의 전통적인 음악과 춤에 힙합과 랩을 가미해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흥겹게 퍼포먼스를 펼친다.

 

 

        「아이누 레벨스」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밴드활동을 <멋진 혁명>이라고 선언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누민족에 대한 수치심, 그것을 감추고 싶은 마음 등으로 쪼그라들고 어두어진 그들의 자존감이 음악과 춤을 통해 회복된 것이다. 이들은 <아이누로 태어났음이 가장 서러웠고, 동시에 가장 행복했노라>고 노래한다. 절규처럼 들리는 이들의 노래와 춤사위는 아이누 신들에게 바치는 정성어린 기도와 같다. 「카무이 모시리」에 살고 있는 아이누민족의 모든 신들도 이들 젊은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흐뭇하게 그리고 즐거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이연숙_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 언어사회학과 교수
ys.lee@r.hit-u.ac.jp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저서로 《국어라는 사상-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國語」といら思想-近代日本の言語認識》, 《이방의 기억-고향ㆍ국가ㆍ자유 異邦記憶-故鄕ㆍ國歌ㆍ自由》, 《말이라는 환영-근대 일본의 언어 이데올로기 ことばといら幻影-近代日本の言語イデオロギ-》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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