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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letter No.486 2017/9/5
상왕조(기원전 17세기 ~ 11세기 경)의 갑골문을 보면 인간희생제의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많다. 현재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통해서 확보된 상왕조의 갑골문은 600여 년에 이르는 왕조의 전 역사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중 후기에 해당하는 약 200여년에 걸쳐 기록된 자료에 불과하다. 이러한 갑골문을 토대로 상왕조 후기 인간희생제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는지를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거의 1만 5천여 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왕조에서 인간희생제의는 동물 희생제의와 비교할 때 빈도나 규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하지 못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왕조에서 인간과 동물을 희생제의의 공물로 함께 사용한 현상을 보면 동물희생이 인간희생을 대체하면서 나온 산물이라는 일종의 진화론적 견해는 별반 타당성을 얻지 못한다. 희생제의 과정에서 인간을 처리하는 방식도 동물과 다르지 않았다. 자르고, 묻고, 태우고, 빠뜨리는 것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방식이었다. 동물을 공물로 바쳤던 신들에게는 어김없이 인간도 희생으로 사용되었다. 희생제의에 동원된 인간들은 왕조 밖에서 들어온 외부인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주로 전쟁을 통해서 사로잡힌 포로들이 희생제의의 공물로 이용되었다.
상왕조는 고대 청동기문명 국가로서 무엇보다 거대한 제사 공동체였다. 왕조의 신성 공간인 도시에서는 거의 매일 다양한 신들에게 대규모의 희생제의가 거행되었다. 상왕조의 구성 주체들은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이면서 호모 네칸스(Homo Necans)였다. 그만큼 성스러움과 죽음(혹은 죽임)의 거리는 근접해 있었다. 인간희생은 양자의 거리를 더욱 좁히는 촉매였을 것이다.
오늘도 원근에서 들려오는 폭력과 죽음의 현실은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희생제의를 바라보는 심경마저 무디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감수성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현상이 여전히 불편하고 당혹스럽게 느껴질 것이라 믿고 싶다. 상왕조에서 거행되었던 인간희생제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간희생제의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일련의 조건들은 무엇일까. 또한 그것이 의도한 목적은 무엇이고 실제 성취한 효과와 기능은 무엇인가. 도대체 인간희생제의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세계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스페인 군대가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던 인간희생제의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즈텍의 인간희생제의가 지닌 야만성을 드러내고 자신들이 자행한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 제의에 관해 과장된 묘사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번의 인간희생제의에서 8만 여명이 희생되었다는 언급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것의 허구성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아즈텍의 인간희생제의를 연구한 다비드 카라스코(Davíd Carrasco)는 뭇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단 한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유럽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아즈텍 제국의 정복 과정에서 2년 동안 살해한 원주민들의 수가 인간희생제의에서 죽은 사람들의 10배에 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비드 카라스코의 발언은 아즈텍인들을 향하여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자처했던 서구인들의 야만적 이면을 폭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아즈텍 후예들 중에는 여전히 인간희생제의를 거북해하고 심지어는 그러한 사실마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희생제의에 부착된 반문명성의 딱지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다비드 카라스코는 사실을 덮는다고 능사는 아니며, 아즈텍이 지닌 모순적 이중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희생제의는 아즈텍인들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룩한 문화적인 성취 및 정치사회적인 표현 방식들과 겉으로는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인간희생제의는 그것 이외의 다른 삶의 차원들과 포괄적인 연관성 속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아즈텍의 인간희생제의에 담긴 의미가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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