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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31호-상처 입은 세상의 선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6. 16. 18:55

상처 입은 세상의 선물

 

 news letter No.631 2020/6/16  

 

미개 또는 태고 유형의 사회에서 선물을 받았을 경우, 의무적으로 답례를 하게 하는 법이나 이해관계의 규칙은 무엇인가? 받은 물건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수증자는 답례를 하는 것인가?
(마르셀 모스, 《증여론》, 이상률 옮김, 한길사, 2002)

선물 경제에서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선물의 본질은 관계들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19)

 

 

1. 마늘과 비파

아침에 서둘러 나가려는데 대문 앞에 뭔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햇마늘 한 묶음과 햇양파 한 망. 알고 보니 맨 아랫집 할머니가 놓고 가신 것이다. “대문 앞에 마늘이랑 양파 갖다 놨응께, 햇빛에 더 말려서 묵어.” 엊그제는 시골 와서 알게 된 친구가 맛 좀 보라면서 방금 수확한 햇감자와 비파를 한 상자씩 갖다 주었다.

시골생활 5년차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처음에 참으로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이렇게 갑자기 받는 선물이었다. 마을 할머니들, 여기 와서 처음 만난 분들, 많은 분들이 뭔가를 막 나눠주셨다. 갓 잡은 생선과 해물, 수확한 채소와 곡식, 금방 짠 참기름과 들기름, 기막히게 맛있는 김장김치... 당황스럽고 당혹스럽고 어찌할 바 몰라 괴롭기까지 했던 까닭은, 땅과 바다와 인간의 노동과 시간과 햇빛과 바람이 어우러진 이러한 선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도 그에 상당하는 답례를 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물을 거절할 수도 없다. 어설프게 금전적인 –혹은 해당하는 금액을 어림잡은 공산품으로- 답례를 시도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며 관계를 파탄시킬 수도 있다. 하여 나름대로 비오는 날엔 호박을 썰어 부침개를 부쳐 할머니들 갖다드리고, 더운 날엔 식혜를 만들어 돌리고, 쑥설기도 만들어 드리곤 했지만, 그래봤자 받은 선물에 상응하는 답례는 되지 못한다. 나는 농사짓는 것도 없고 바다에 나가 잡아오는 것도 없고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해도 해도 안 되는 게임이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선물을 받고 그에 대한 정당한 답례를 못하는 –그래서 결국엔 염치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듯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시골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들 중 하나였다.

받은 만큼 되갚아야 한다는 도시적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당황스럽고 난처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곧바로 되갚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것임을. 이러한 종류의 선물은 결코 준 사람에게 곧바로 되갚을 수 없다. 오히려 흘러가고, 확장하며, 선순환한다. 베풂을 받았기에 나도 베풀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가령 마을의 길냥이들에게 음식을 주기도 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환대하고 대접한다. 각종 열매와 약초로 담금주를 만들어 도시의 친구들과 나눈다. 나아가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게 된다. 또한 선물 받은 미역을 쌀가루를 들고 온 친구에게 나누고, 그 쌀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동네 할머니에게 나누는 등, 나는 종종 선물이 흐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한편, 내게 음식을 받아먹은 고양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쥐를 쫓아준다. 그리고 또...

북미 포타와토미족 출신의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의 말대로, 선물은 “진행형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비완결형이기에, 선물의 기본 속성은 상품과 달리 열린 나선형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확장되는 관계 속에서 느슨한 감정적 유대도 형성된다. 선물의 흐름은 그렇게 크게 호혜성의 원을 그리며 흘러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2. ‘사람들’ 사이의 선물과 답례

어떤 이들은 이러한 선물의 선순환의 범위를 단지 인간 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인간 이외의 생명, 나아가 인간 이외의 자연과의 관계까지 확장해서 바라본다. 대지나 바다에 직접적으로 생계를 의지하며 살아온 세계 각지의 원주민 사회에서 그러한 시각이 종종 나타난다. 잠깐 생각해봐도, 친구가 갖다 준 비파는 그 친구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땅이 준 선물, 나무가 준 선물이기도 하다.

근래에 회자되는 생태계서비스(Ecosystem Service: ES) 개념도 비인간 자연이 베풀어준 선물로 이해할 수 있다. 생태계서비스란 개념은 1980년대 초반에 처음 등장했고, 2005년 UN 주도로 발표된 새천년생태계평가(Millennium Ecosystem Assessment: MA)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된 개념이다. MA에서 생태계서비스란 간단히 말해서 생태계가 인간에게 서비스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금껏 주로 인간이 자연에서 받는 혜택을 부각시키면서 생태계서비스 논의가 진행되어 왔지만, 비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공존을 위해서는 인간도 어떤 식으로든 답례를 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즉각적인 등가 교환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답례, 돌봄과 나눔을 통해 비인간 자연의 선물은 어디론가 흐르게 된다. 사실 인간과 비인간 자연이 공존해온 많은 원주민 사회에서 주민들과 지역생태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왔다. 지역민들과 지역생태계는 서로 선물과 답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먹이는 되먹임 회로를 구성해왔던 것이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선물과 답례라는 교환 체계가 마오리족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 메커니즘이며, 거기서 ‘하우’, 곧 물체의 영적인 힘에 대한 관념이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호혜적 교환 체계, 선물과 답례로 이루어진 관계가 생명 시스템의 핵심이라는 모스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그러한 관계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하우’, 물질의 영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비인간을 포함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참고:
https://crrc.tistory.com/2386). 마오리족을 비롯한 수많은 원주민 사회의 교환체계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물건의 교환에 대한 신비적 해석이 아니며, 오히려 호혜적 교환 체계 속에서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비인간 자연)가 주체로서, 증여자로서, 그리고 답례를 수령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세상을 선물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가혹한 ‘헬(hell)’로 경험한다. 선물과 답례로 서로를 먹이는 되먹임의 고리는 곳곳에서 진즉에 끊어졌고 파국이 임박한 듯하다. 그렇지만 인간만이 아닌,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로 시야를 확장할 경우, 상처 입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선물을 베푸는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3. 돌고 도는 주고받음의 세계

시골에 와서 첫해부터 과일나무를 많이 심었다. 5년이 지나니 이제 제법 열매가 열린다. 제때 따지 못한 열매들이 처음엔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괜찮다. 미처 따지 못한 자두와 복숭아는 새들이 또 벌레들이 먹을 것이다. 혹은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도 마당의 흙과 섞여 양분이 된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우리는 이미 돌고 도는 거대한 주고받음의 세계 속에 있다.


상처 입은 세상조차도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상처 입은 세상조차도 우리를 떠받치고
우리에게 놀라움과 기쁨의 순간을 선사한다. 나는 절망이 아니라 기쁨을 선택한다.
그것은 내가 현실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기쁨이야말로 대지가 매일같이 내게 주는 것이며
나는 그 선물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19)




 

 



 


유기쁨_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역서로《원시문화 1권, 2권》(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아카넷, 2018),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권~3권》(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아카넷, 2012), 《문화로 본 종교학》(맬러리 나이, 논형,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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