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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32호-코로나 질병에 대한 잔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6. 23. 23:18

코로나 질병에 대한 잔상


newsletter No.632 2020/6/23

 

 




하늘을 나는 새가 내려다본 지상의 모습이나 사물 전체의 형태를 볼 수 있는 모습을 일컬어 조감도(鳥瞰圖)라 한다. 영어로 “Bird’s Eye View”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어느 조어가 먼저 형성되었는지는 얼른 확인할 수가 없다. 한문 성어가 되었건 영어 표현이 되었건 사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설정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사물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물을 인지(認知)할 때에는 인간의 키 높이와 시력이 고작이므로 이 한계를 넘어선 시각이 필요해서 이러한 말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 말에 연원을 둔 것이겠지만 “Cat’s Eye View” 곧 묘감도(猫瞰圖)라는 작위적인 말도 나오고 있다. 아마 고양이처럼 어느 한 부분을 세심히 관찰하고 음미한다는 말일 게다. 평상시에 보고 느끼지 못했던 사물의 또 다른 측면을 보고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차원에 대한 요청일까? 흥미로운 조어로 생각된다.

언젠가 영문판 종교 서적을 읽다가 “God’s Eye View”라는 말을 접하고는 얼른 우리의 전통적 성어로 신감도(神瞰圖)를 상상해 보았다. 절대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모습, 기독교 전통이라면 세상을 창조하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각이다. 불교의 경우라면 온 세상이 불국토이고 모든 사람이 부처님으로 보이는 시각 곧 “불안(佛眼)”일 것이다. 어떤 시각이 되었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관점에 대한 요청이다. 한계를 벗어나는 이러한 초월적 시각을 기독교에서는 구원관이라 할 터이고 불교에서는 해탈관이라 할 터이다. 요즈음 나는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에 대해 새삼스러운 강박에 빠져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생활은 물론 우리가 이제껏 그 틀 속에서 살아온 모든 체계를 흔들어 놓고 있다. 하나의 전염병이 이토록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고는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더구나 그에 대한 해결책이 겨우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씻기라는 점에서 어처구니가 없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곳 미주의 상황은 최악이다. 그렇지만 세계 일등국을 자부하는 미국의 질병 현황을 두고 이 나라의 방역 실패를 비웃거나 한국의 대응정책 성공을 상찬하거나, 지역간 비교우위를 따질 단계는 이미 지난듯하다. 이차 확산이 진행 중이고, 삼차 확산, 아니 끝날까지 이 병을 껴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견마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CNN은 매일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보도한다.(6월 22일 월요일 현재; 미국의 확진자 229만 명, 사망자 12만 명으로 전 세계 확진자 900만 명, 사망자 47만 명의 약 4/1을 차지하고, 미국에서만 하루 평균 2-3만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발표는 “현황과 우려(Fact and Fear)”라는 표제로 방영되고 있다. 현황은 사실확인이니 뉴스 미디어로서는 당연한 발표가 되겠지만 현 사태에 근거한 전망이 따라야 할 터인데 그것이 “우려(Fear)”로 제시되고 있다. “피어(Fear)”라는 말 자체가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표현한다. 치료제인 백신의 사용마저 요원하게 들리고 병균은 계속 변형되고 있는 작금의 난감한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 같다.

미래를 진단하는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충격을 우리의 삶의 방식에 내재한 허점, 곧 아무런 방책 없이 앞으로만 달려간 탐욕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마치 이 질병이 일정한 의도를 갖고 인간사회의 모순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로 절묘하게 우리가 운영한 제도, 기구, 행태의 모순을 폭로한다. 그러면서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 소박한 삶의 설계, 인간/사회 관계망의 변화 등 수많은 방안을 제시한다.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는 타당한 전망이라 생각한다.

나의 강박감은 바로 이점에 있다. 구체적 현실을 보면 미래에 대한 이러한 비전이나 전망이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곧 대선을 치러야 하는 이곳 미국의 대통령은 대중을 모아놓고 선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유일한 처방법인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도 없이 말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은 약속한다. 식당, 미용실, 커피숍, 술집 등이 곧 문을 열고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러나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질병은 이미 병균의 단계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문화, 정치, 의식구조에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반응을 하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내 시각의 변화, 나의 생각의 변이를 생각한다. 새가 내려다보는 인간의 모습이 되었건, 고양이처럼 미시적으로 관찰하건, 이 모든 관점을 통괄할 수 있는 절대자의 이해의 폭과 관점을 지니기를 바란다. 옷깃 한번 스쳐도 인연이 된다는 인연법의 거리두기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주요 논문으로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불교에서의 인권이란무엇인가?>, <백교회통-교상판석의 근대적 적용> 등이 있고, 역서로《성스러움의 해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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