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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33호-이것도 종교학일까: 내가 해온 공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6. 30. 19:30

이것도 종교학일까: 내가 해온 공부



newsletter No.633 2020/6/30

 




 

 



나는 올 2월 보훈교육연구원의 원장으로 부임했다. 국가보훈처 산하이면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속해 있는 공공기관이다. 연구자라기보다는 기관장이기에 ‘앞으로 공부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한종연’ 뉴스레터 원고 요청을 받은 김에 그간 해온 공부, 지금 하는 일이 종교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새삼 되돌아보았다.

나는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종교학과로 진학했다.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을 주제로 두 번의 석사논문을 썼고, 같은 학과 신학 분야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사상을 비교하며 박사논문을 썼다. 신학 분야였지만, 기본 성향과 관심사는 종교비교론 내지 종교철학에 가까웠다. 학위논문을 통해 밝히고 싶었던 것은 불교와 기독교 사상의 심층적 상통성이었다. 특정 종교의 편협한 종교성을 넘어 인간의 종교적 보편성 또는 보편적 종교성을 확산시키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적지 않았다.

1989년에 선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종교문화연구원을 창립했고 –한국종교문화연구소도 그 즈음 한국종교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종교 관련 과목들을 두루두루 강의했다. 학생들보다 내가 더 공부를 많이 하던 시기였다. 1997년 박사논문을 끝내고 1999년에 강남대 교양학부에 자리 잡아 2012년 사직할 때까지는 수천 명의 학생에게 기독교 교양과목을 강의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종교학 강의를 종종 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신학도, 불교학도, 그리고 종교학도이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이들 모두에 통하는 학문을 한다는, 아니 해야겠다는 자의식이 더 컸다.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인이었지만 -아니 어쩌면 기독교인이었기에 더-, 여러 종교현상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심층적 이론이 궁금했다. 보편성이 있어야 진짜 신학이라 생각했고, 다소 규범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종교학도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동서양 종교의 사상적 심층을 비교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간단한 문장 같지만 나름대로는 오래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의 일이 달라야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런 생각은 죽음학으로도 이어졌다. 개인의 종교적 배경 탓이기도 했겠지만,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물음을 늘 품어왔다. 그러던 차에 2005년도에는 한국죽음학회를 공동 창립했고, 관련 공동 연구서도 몇 권 출판했다. 요사이는 손 놓고 있지만, 죽음 자체 및 그 이후의 문제는 내 실존적 관심의 근간에 있었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무신론자든 다신론자든, 죽음 이후 겪는 방식은 결국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이 역시 돌이켜보면 내 종교적 경험에 입각한 심층적 상통성의 표현이었다. 기독교적 언어로 해석하면, 그것이 진짜 신학이고 바른 신앙이며 유일신 신앙을 오늘 살려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좁은 의미의 교회 교육을 요구하던 대학에서의 교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불상에 절했다는 이유로 재직하던 강남대에서 ‘짤렸다’. 내게는 기독교적 신앙의 실천이자, 내 사상적 은사나 다름없던 불교에 대한 예의 표현이었지만, 대학은 일종의 우상숭배죄로 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나는 한편에서는 법정에 호소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학교 밖으로 생활 반경이 확대되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서 벌이는 가칭 ‘세계종교센터’ 설립 준비 및 종교간 협력 운동을 함께 했고, 강남대 해직 시절 내게 큰 힘이었던 인권연대의 운영위원으로 지금까지 13년여 봉사하면서 시민 사회와 정치 현실을 생생하게 배워왔다. 대화문화아카데미의 기획연구위원으로 4년여 일하면서 생명 지향적 시민운동, 평화 지향적 대화운동을 조직하고 운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민과 사회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럴수록 종교 언어는 사회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는 그 접점을 ‘생명과 평화’로 요약했다. 내 활동도 그쪽을 지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눈으로 보니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는 수많은 ‘비종교인’들이 내게는 더 ‘종교인’으로 보였다. ‘생명들의 협력체계로서의 상생(相生)’, ‘상생의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평화’를 내 학문 및 사회적 활동의 요지로 자리매김했다. 생명과 평화 운동은 그 자체로 종교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속화한 시대의 종교언어를 사회적 수준에 맞게 나름대로 재구성해나갔다.

이런 태도는 종교현상 전반 및 내 기독교적 삶의 근간을 들여다보면서 형성된 것이기도 했다. 정치든 종교든, 사회든 문화든, 각종 현상의 심층을 읽고, 그 심층을 표층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인 종교 연구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을 뿐, 종교학계가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강남대에는 4년 6개월 만에 복직했지만, 내가 느끼는 교내 분위기는 대단히 무거웠고, 오래 근무하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즈음 시작되고 있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평화인문학 연구 사업에 합류하고자, 강남대 복직 2년 후 사직했다. 평화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연구한다는 취지가 맘에 들었고, 서울대에서 HK연구교수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종교학의 평화학적 확장을 꿈꾸었다.

아쉬움도 있었다. 막상 겪어보니 ‘평화인문학’이라는 말과 달리 통일평화연구원 내 인문학의 위치는 애매했고 대체로 사회과학적 분위기에 종속적이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서울대에서의 생활을 사회과학 공부의 기회로 삼기로 하고, 8년여 통일 및 평화와 관련한 공부를 했다. 정치학, 사회학 등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학의 현실을 절감했고, 급기야 북한학 강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수록 종교와 사회, 정치와 경제 등은 내 안에서 하나로 합류되어갔다.

그러다가 2019년 ‘보훈’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의 보훈을 평화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상상을 하다가 ‘보훈교육연구원’을 알게 되었고, 원장 공모에 지원해 올 2월 11일 원장으로 취임했다. 책상에서의 연구를 논문과 강의실에 한정하지 않고 공적 연구 혹은 정책과도 연결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내 삶의 방식에 다시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와는 거의 다른 삶인 듯하다. 특히 연구자가 아닌 관리자로, 때로는 경영자로 사는 삶은 아직도 낯설다. 이 낯섦을 동력 삼아 나는 지금까지 무슨 공부를 해온 것인지,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중이다.

돌아보면 내 전공 분야는 다양하게 확장되어왔다. 그런데 전공이 확장된다는 말은 제대로 된 전공이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영역에서도 주류가 되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신학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경계에 있다 보니, 개신교 안에서도 특정 교단이나 종파와 무관하게 신학을 하다 보니, 어떤 조직의 내부자 경험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대체로 경계에 있었고, 그래서 때로는 외롭기도 했다. 물론 딱히 도리는 없었다. 내심으로는 일종의 ‘심층학’을 한다 생각했고, 그 심층을 잘 알려준 종교의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마음으로 ‘내 전공은 종교학’이라는 말을 가장 오래 해왔다.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에서 상통성을 확인한 이래, 불교학, 신학을 포함한 종교학은 물론 죽음학, 평화학 등의 분야도 그 심층에서 보이는 세계는 비슷하다는 생각은 거의 습관처럼 굳어졌다. 어느 분야든 인간의 내면, 즉 욕망, 열망과 같은 정신세계가 근저에 작동하고 있으며, 어느 영역이든 인간의 원천적 열망과 기대의 표현으로 해석되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종교인이냐 비종교인이냐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영성’이라고 부를만한 내적 심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였다.

그래서 종교를 이해하려면 ‘비종교적’이라고 여겨지는 현상도 같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면과 외면, 개인과 사회, 개체들의 관계 모두를 보아야 인간이 겨우 이해되듯이, 다른 분야와 단절된 학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적 신앙과 외적 표현 전체를 보아야 종교가 보이듯이, 나는 평화 관련 논문을 쓰면서도 인간의 열망 혹은 영성의 문제와 연결 지으려 했다. 내게는 종교 밖의 학문도 종교학의 연장이었고, 그것을 ‘종교평화학’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 개인의 내적 안정감과 사회적 평화, 그리고 인류의 이상을 구분하면서도 연결 짓고자 했다.

‘보훈’이라는 다소 다른 세계, 특히 연구자로서보다는 관리자로서의 삶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여기서 얼마나 일하고 배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도 심층을 보려는 습관은 지속될 것 같다. 이것도 종교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찬수_
보훈교육연구원 원장
주요 저서로 《평화와 평화들: 평화다원주의와 평화인문학》,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세계평화개념사》(공저), 《아시아평화공동체》(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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