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을 향한 꿈, 또 하나의 신화
news letter No.703 2021/11/9
“한복, 김치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체육복인가”
이 말은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속 초록색 체육복을 두고 한중간의 원조 논란이 격화되면서 나온 한 누리꾼의 비판의 목소리다. 두 나라 간의 운동복 원조 논란은 얼핏 실소를 자아내지만,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지 않는 중국에서 우리 영화가 불법 유통되는 문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신속한 대응 등이 현안으로 떠오르며 정부의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끊임없이 민족 혹은 국가 간 문화의 원류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위계질서를 의식하여 수용자보다는 증여자의 지위가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일종의 정치적 함의 때문일 것이다.
원류 추구의 원조격으로 18세기 말 유럽에서 형성된 인도–유럽어족에 관한 가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신화학의 상식으로 통하는 것으로, 인도와 유럽은 언어나 종족면에서 동일한 계통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인도-유럽어족 신화는 하나의 원형,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가지가 뻗어 나왔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와 같은 이론은 어떤 역사적 조건하에서 형성되었으며, 지금까지 당연하게 통용되는 이유와 그 영향은 무엇일까? 이러한 상식적 물음에 대한 해답은 마치 카멜레온과 같은 근대의 신화 개념을 설명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근대 학문으로서 신화학은 근대 유럽의 산물이다. 플라톤 이래 르네상스 시대까지 신화라고 일컬어지는 이야기를 중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레코로만(Greco-Roman) 문학도들이 고전 문학의 형식으로 신화에 흥미를 가졌을 뿐이다. 신화가 근대 학문의 연구 대상이 된 계기는 유럽 제국의 사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교 언어학의 계기를 마련한 존스(Sir William Jones 1746-1794)는 인도-유럽어의 공통 기원뿐 아니라 역사, 문화, 인종까지 하나의 원형을 추구하였다. 존스의 영향을 받은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 문예 운동을 주도하여 독일 낭만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신화를 집단 정체성의 결정적 원천으로서 기후와 민족 형식을 매개하는 언어적 형식으로 보았던 헤르더는 민족과 신화의 불가분의 관계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
여기서 동일한 계통, 하나의 원형이라는 가설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과 고대의 인도를 비교한 연구자들은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베다》를 현재의 인도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면서 은연중에 과거에는 위대했지만 이제는 유럽의 통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언어뿐 아니라 인종, 문화, 역사가 하나의 원형에서 뻗어 나왔다는 가설은 자국의 역사를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연동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근대의 신화 연구자들의 업적은 설령 그들이 의도치 않았더라도 현재까지도 그들의 이론이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화가 되어 때로는 집단의 구심점으로, 때로는 배타적인 기제가 되어 대립과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해오고 있음을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