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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종교 - 비인간이 인간에게 말을 걸다...

 

news letter No.726 2022/4/19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서구에서 물질문화와 시각문화 연구의 학문 분야가 성장하면서 종교연구 또한 물질종교 연구에 필요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때까지 종교연구는 믿음이나 의미체계 중심의 시각에서 텍스트나 문헌을 연구 대상으로 선호하는 동시에 제도화된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새 물질문화는 종교연구에 있어 중요한 연구 영역이자 이론적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 학계의 경우 종교학 내에 ‘물질종교’라는 하나의 뚜렷한 하위 분과는 결성되지 않았으며, 단지 ‘물질종교’ 연구에 관심을 가진 작은 그룹의 종교학자들이 비정기적으로 –특히 관련 주제로 학술대회가 기획되면– 모여 자신들의 학문적 관심사와 고민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학계에서 물질종교 연구가 생각보다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여기에는 종교의 물질문화에 대한 탐구가 종교학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다소 냉소적인 태도와 이를 지나갈 하나의 학문적 유행으로 간주하는 기류도 한몫 한다. 그 결과 물질적 전회(material turn) 혹은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 2000년대 초부터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 걸쳐 새로운 학문적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고, 무엇보다 작금의 팬데믹 현상과 기후/생태 위기와 맞닥뜨리면서 인간 중심적 사고를 반성하는 사회적 움직임과 맞물려 새롭게 대두되고 있으나, 한국의 종교학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소수 학자에게 머물러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호에 실린 4편의 특집 논문이 정체되어있는 한국학계의 물질종교 연구에 하나의 새로운 자극이 되길 바란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2014년 ‘감각의 종교학’이라는 표제하에 후반기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여기서 ‘물질종교’와 관련된 일련의 연구가 발표된 이후 지난해 2021년 11월 “물질종교: ‘물질’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면서 다시 물질종교에 대한 논의를 재개하였다. 이번 호에 실린 특집 논문들은 지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대폭 보완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 심포지엄 사이에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적 공백이 생기면서, 물질종교 연구도 그사이 방법론이나 주제에서 더욱 다변화하였으며, 이에 상응하여 지난 심포지엄은 연구자들의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관심 분야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물론 물질종교라는 연구 영역이 매우 넓고 그 방법론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이들 심포지엄 발표의 대부분은 최근 사회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에 기반한 신유물론, 특히 라투르(Bruno Latour)의 인간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의 수평적 상호관계에 주목하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actors-network theory)’이나, -물질/사물을 능동적 주체로 상정하는- 비인간의 행위성(행위능력) 이론 등에 주목하면서, 이들 이론과의 접목을 시도하거나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함은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4편의 특집 논문 중 <물질종교의 관점으로 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염(Holy Salt)>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자들에게 의례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성별(聖別)을 위해 항시 사용하거나 지참하는 소금인 성염(聖塩)을 다루고 있다. 성염이 가정연합의 실천행위에서 매우 중요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교학 중심의 연구 경향으로 그동안 학문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것을 처음으로 논의의 중심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해당 논문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종교적 물질로서 성염의 행위성에 주목하여 신자들의 종교 생활을 보다 입체적으로 기술하고자 했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봉헌물과 ‘물질종교’: 엑스-보토(ex-voto)와 사물의 행위성>은 신체 일부나 내부 장기의 모습을 본뜬 봉헌물인 엑스-보토를 사례로 물질의 행위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논문으로, 이를 통해 인간중심의 봉헌 의례로부터 봉헌물 자체로 시선을 옮기면서 봉헌물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작동하고 상호작용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엑스-보토 혹은 특정 사물의 주술적 성격을 단지 유사성과 인접성의 원리로 작동하는 힘으로 보지 말고 다른 행위자들과의 연결망(network) 혹은 배치(assemblage)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물의 능동적 행위성과 연결하여 새롭게 고찰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논문 <‘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는 유출된 체액(피, 젖, 땀, 눈물 등)에 초점을 맞추어 일반적으로 혐오와 기피의 대상 즉 아브젝트인 이들 물질이 어떻게 기독교(가톨릭) 전통에서 성혈(聖血)과 성유(聖乳)로 공경의 대상이 되고 순례의 동기가 되어 궁극적으로 구원을 약속하는 물질로 작동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특히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아브젝시옹 이론의 재해석 그리고 중세 후기 일련의 종교 미술작품을 사례로 이들 체액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와 함께 일상에 균열을 가져오는 종교적/전복적 힘이 강조되고 있다. 마지막 특집 논문인 <신령과 신위: 한국종교에서의 신위에 대한 물질적 접근>은 신위에 대한 기존의 논의가 주로 교의적, 제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에 반하여, 신위를 일차적으로 물질적 대상으로 다루면서 그 원형으로 간주된 대상과의 관계(‘닮음’)에 주목하여 어떤 조건에서 특정 물체가 신위가 되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형적 신위인 소상(塑像)과 비정형적 신위인 신주(神主)와 지방(紙榜)을 사례로 신위의 물질적 형태에 따라 그에 대한 태도와 인식, 실천에 어떤 차이가 발생하였는지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신위에 대한 논의는 아시아 유교권을 넘어 ‘성상 파괴(iconoclasm)’라는 보다 보편적인 주제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관련 담론을 교차문화적 시각에서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에도 많은 기대를 하게 한다.

연구논문으로 이번 호에 채택된 두 편의 논문은 <중국 고대 도시의 종교적 성격에 관한 연구: 대읍상(大邑商) 은허(殷墟)를 중심으로>와 <한국 개신교계 신종교 연구를 위한 방법론 제언: ‘뿌리 찾기’를 통한 ‘이해’ 방식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이다. 전자는 상 왕조의 후기 도읍지였던 은허(殷墟)를 둘러싼 20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와 갑골문을 비롯한 많은 문헌 자료의 분석 결과, 그리고 종교(도시) 지리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한 논문과 자료를 총동원하면서 하나의 논문을 저술하는 데 요구되는 철저한 사전작업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논문의 후반에서는 고대 도시의 기능과 내부 배치에 주목하여 은허의 종묘와 무덤 등의 의례 중심지를 자세히 분석한 기존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은허의 종교도시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 더 나아가 중국 고대에 종교가 정치의 중심에서 질서와 권력을 창출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와 비교해서 후자는 배타적 종교 담론의 분석과 그 해체에 대한 시도로 우선 한국 개신교의 ‘이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개신교계 신종교를 타자화하기 위해 구축된 ‘이단의 뿌리-계보’ 담론을 분석하고 그 특징을 도출하고 있다. 이어서 이러한 기존의 담론에 개입하기 위해서 다른 형태의 ‘뿌리/줄기’들의 연결, 즉 뿌리나 줄기가 특정한 중심이나 위계없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며 무정형하게 확장되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의 뿌리 형태를 제시한다. 그 결과 이 논문은 기존의 이단 담론을 비틀면서 자신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동시에 이단 담론을 해체할 수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하는 등 새로운 사고와 글쓰기의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번 호에 실린 특별대담 <한국 민족종교와 한국 기독교>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주체가 되어 윤승용이 총괄 기획하고 편찬위원장으로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집대성한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이하 대사전)의 2021년 발간을 계기로, 2021년부터 1년여에 걸쳐 이호재(자하원 원장)와 윤승용(《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 편집위원장) 사이에 진행된 대담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윤승용은 1984년 한국의 ‘민족종교’가 모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창립 과정에도 기여한 바가 있다는 점에서 그가 편집한 대사전 또한 일정 부분 이들 종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으며, 같은 맥락에서 한국 근대 종교사에서 민족종교의 종교적·사회적 의미와 역할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대사전이 한국종교사의 큰 기틀을 만들었다는 자체평가는 민족종교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한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같이 모아 하나의 민족종교문화 지식체계를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하여 대사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 한다. 바라건대 이 대사전이 디지털화되어 연구자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함으로써 ‘민족종교문화’에 대한 토론이 풍성해지길 기대해본다.

이번 호 설림(說林) <나의 종교학: 삶의 화두>는 원광대학교의 박광수 교수가 맡았다. 그가 단순히 종교학자가 아니라 종교 간 대화와 협력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의 ‘영성적 문명’의 사회적 치유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긴 시간 활발한 대외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설림은 그의 ‘버라이어티한’ 삶의 여정을 보여주면서 독자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참여하는’ 종교학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 근·현대 종교 데이터베이스의 부재, 특히 신종교 관련 역사적 자료의 집성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지속적인 신종교 실태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어김없이 신종교 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끝으로 주제서평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대지에 서서 본 풍경: 브뤼노 라투르의 최근 10년간 작업>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물질종교 연구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신물질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라투르의 학문적 업적 중 지난 10년간 발표한 책, 논문, 기고문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어 그의 최근 학문 동향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라투르가 인간의 재앙이자 전지구적인 문제인 기후위기에 주목하여 이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며, 이는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연결망을 중요시하는 라투르에게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이번 호는 물질종교라는 종교연구에서 비교적 새로운 연구 영역을 어떻게 연구자들이 다양한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지 소개하는 한편, 오랜 기간 종교연구의 한 축을 형성해온 신종교 연구가 민족종교 담론을 통해 ‘원형’이 재생산되거나 아니면 어떻게 기존 이단 담론의 틈새에 진입하여 이에 대한 해체를 유도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등 다양한 신·구 주제와 서로 다른 접근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연구의 혼성성 때문에 종교연구는 계속 흥미로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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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종교문화비평> 41호(2022년 3월 31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 입니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현대사회 성물(聖物)의 유통방식에 대하여>, 〈한국 가톨릭 여성에게 고통과 신비체험〉, 〈한국 신종교의 조직구조〉,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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